쎈 선배의 편지
돌발 상황이 아니라면 어떤 경우든 우리는 생각 먼저 하고 이후에 행동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생각의 결과, 즉 판단에 따라 행동하게 되죠. 하지만 생각과 행동이 일대일로 대응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으로 이어지고 각자의 생각 회로가 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각 회로는 사람마다 나름의 특성을 갖는데, 이걸 성격 유형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는 생각 회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는 성격과 부정적인 방향으로 돌리는 성격으로 나눌 수 있겠죠.
제 생각 회로는 예전에는 걱정과 근심이 많은 부정 회로가 작동했었다면, 지금은 가능한 한 좋게 생각하자는 긍정 회로를 작동하는 것으로 변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생각 회로가 만든 결과치에서 얻었던 경험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저를 변화시킨 경험 하나를 꺼내보겠습니다.
오래전 수학 전문 이러닝 사업의 책임을 맡았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풀고 있는 쎈 수학을 기반으로 문항별 해설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사업을 하자고 회사에 제안했습니다. 사장님은 이 제안을 검토한 후 회사의 모든 수학 교재를 서비스하는 이러닝 사업을 하기로 결정하고, 그 책임을 저에게 맡겼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이러닝 사업이라 구성원을 채용하여 조직부터 만들어야 했는데 오픈까지 주어진 시간은 딱 일 년이었습니다.
교재만 개발하다 이러닝 사업을 하자니 모든 과정이 새로웠고, 그 과정에서 결정해야 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겁이 많은 성격이라 결정의 순간마다 여러 경우의 수를 셈하며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마음 졸였습니다.
이런 와중에 사장님은 하루에 몇 번씩 전화해서 “망하면 안 된다.”라고 했습니다. 회사로서는 큰 투자를 하는 것이니 이 사업의 성패에 대한 걱정은 사장님이 저보다 더 크게 했을 겁니다. 그런데 듣기 좋은 소리도 한두 번이라고 하는데 ‘망한다’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계속 들으니 초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장님의 걱정은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응원받아도 시원찮을 상황인데 망하면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니 망한 상황을 상상하게 되고, 지레 그 상황이 되면 어떡하냐는 걱정을 앞서 하게 되었습니다. 절대 실패하면 안 되는데 내가 지금 잘못하는 건 없는지, 내가 내리는 결정들이 틀린 건 아닌지, 실패하면 조직과 사람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머릿속에 생각이 가득 차 복잡해진 겁니다.
이렇게 걱정이 쌓여가는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은 사장님의 전화를 받은 후 제가 이 사업을 망하게 하는 요인을 찾고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 사업을 하기로 했던 목적과 가치가 뒷전으로 밀려나 버리고, 성공하기 위한 매력을 만들기보단 실패 요인들을 제거하는 데 시간을 쓰고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사장님을 뵙고 부탁드렸어요.
“사장님, 앞으로 저에게 망하면 안 된다는 말씀 대신, 꼭 성공하라고 말씀해 주세요. 지금 저희 조직에 필요한 것은 응원입니다.”
이 부탁에 이은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실패하면 안 된다’와 ‘성공해야 한다’는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두 문장에 이어지는 행동은 다릅니다. 앞서 말했듯이 ‘실패하면 안 된다’라고 하면 실패할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에 집중하게 되지만, ‘성공해야 한다’라고 하면 성공의 요인을 만들어 가게 되죠. 생각이 행동을 만드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동안 여러 제품을 론칭했던 제 경험을 돌이켜보면 오류를 제거한 평범한 제품보다 오류가 있더라도 확실한 매력을 가진 제품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생각 회로를 긍정적으로 돌리는 건 회사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유리한 자세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소극적 행동을 만들다 극단적으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게 하니까요.
생각 회로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생각의 힘은 긍정적일 때가 부정적일 때를 압도할 만큼 크기에, 그 노력은 충분히 가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