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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자 그리고 쓰자

쎈 선배의 편지

by 쎈 바람

몇 년 전 한 후배가 회사를 퇴사하기로 마음먹고 저에게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초등학생 두 명을 자녀로 두고 있는 엄마로서 아이들 교육을 위해 시간을 갖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여성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많은 저는 누구의 엄마라는 타이틀보다 본인 이름 석 자를 타이틀로 하여 살기를 권하는 선배라서 이런 퇴사는 늘 아쉽습니다.

퇴사일을 앞두고 교육 문제를 상담하고 싶다는 후배와 식사를 함께했습니다.

"그래, 아이들 교육은 어떻게 하려고?"

"특별한 계획은 없어요. 그냥 옆에서 같이 공부하려고요."

"같이 공부한다고?"

"네, 제가 옆에서 공부하면 아이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겠지 싶어서요."

"어휴, 아이가 얼마나 답답할까? 공부도 싫은데 엄마까지 옆에 있으면."

"설마요."

"내가 아이라면 그럴 것 같은데."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 많은 학부모를 만나는데, 대부분의 학부모가 아이의 실력을 본인이 계획해서 실행하면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는 누가 대신해 줄 수 없고, 계획대로 되지도 않습니다. 아이가 호기심을 가지고 스스로 궁금증을 해결하면서 깨달아야 진정한 실력이 되고, 다음 단계의 학습으로 연결됩니다. 교육에 대한 이런 제 생각은 확고한데 학부모들의 공감은 얻지 못합니다. 아이를 키운 경험이 없는 사람의 이상적인 생각일 뿐이라는 것이 한결같은 반응입니다.

하지만 저는 직업상 많은 아이를 만났고, 아이가 없으니 오히려 더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 생각에 대해서 학부모들이 곰곰이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제 생각이 이러니 후배가 생각하는 방향과 각을 이룰 수밖에 없었고, 본인 생각이 확고한 채로 저에게서 확인받고 싶어 했던 후배와의 대화가 매끄러울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후배는 질문의 방향을 바꿨습니다.

"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나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읽고 쓰는 거."


저는 나이와 상관없이 읽고 쓰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다양한 책을 읽는 것과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표현하는 건 삶에서 큰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죠. 어느 하나 특별히 뛰어나지 않은 제가 후배들에게 한 마디라도 확신을 가지고 건넬 수 있는 이유는 읽고 쓰면서 무형의 자산을 쌓은 덕분입니다.

10대일 때부터 저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책을 읽었고, 짧게라도 글을 썼습니다. 그때의 독서 습관은 지금까지 이어지며 제 지식의 기반이 되었고, 수십 년째 쓰고 있는 일기 덕분에 어떤 주제를 줘도 A4 한 장 분량 정도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읽고 쓰기는 게 중요하다는 건 저 한 사람의 경험을 일반화한 게 아닙니다. 읽고 쓰는 게 중요하다는 확신은 지금까지 만나온 많은 사람을 관찰하고 얻은 결과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읽고 쓰는 것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제가 사는 아파트의 동대표 당선자가 엘리베이터에 당선 사례를 붙였습니다. 투표에 필요한 정족수 부족으로 세 번이나 무산되었다가 네 번째 당선된 기쁨 때문이었는지 당선자는 입주민을 임금으로 격상시켜

'성은에 감사드립니다!'

라고 썼고, 누군가 빨간색 펜으로 '성은'에 곱표를 하고 그 위에 '성원'이라 다시 써 놓았습니다. 이 종이를 본 사람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저는 씁쓸했습니다.

이 한 장의 종이가 읽고 쓰는 것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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