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 선배의 편지
저는 세례명이 글라라인 가톨릭 신자입니다. 천주교 집안이라 어렸을 때부터 종교를 가까이 접했고 종교의 순기능을 알고 있었지만, 세례를 받은 건 8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였습니다. 스스로는 물론이고 타인에게도 이성과 논리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 저는 종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느님을 가슴에 받아들여 세례를 받은 후부터 세상과 삶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있습니다.
가톨릭에는 '미래의 기억(memoria futuri)'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기억이란 지난 일을 잊지 않고 떠올림을 뜻하는 단어인데, 과거의 기억이 아닌 미래의 기억이라니 논리적으로 모순인 것 같죠?
가톨릭에서 말하는 미래의 기억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삶, 즉 구원을 약속하였기에 미래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희망과 믿음이 있으면 영원한 삶은 약속되어 있고 때가 되면 구원이 내게 다가온다는 의미입니다.
‘미래의 기억’이라는 개념을 만났을 때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저도 삶의 경험을 통해 미래가 정해져 있다고 믿으며 그걸 ‘오래된 미래’라고 표현하곤 했거든요.
내 바람과 꿈이 가닿을 미래가 있고, 지금의 생각, 행동, 노력으로 현재와 미래 사이의 시간을 촘촘히 메울 때 마침내 오래전부터 만들어 온 미래가 나에게 다가온다고 생각한 거예요.
오래전에 읽었던 <일취월장 (신영준, 고영성 지음, 로크미디어)>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일을 잘하기 위한 8가지 원리를 제시하고 있는데, 8가지 중 첫 번째 원리가 ‘운’이었습니다. 운이라고 하면 노력이 아닌 요행인 것 같지만, 이 책에서는 준비하여 실력을 갖춘 사람만이 운이 다가옴을 알고 그 운을 잡을 수 있기에 운을 나머지 7가지 원리(사고, 선택, 혁신, 전략, 조직, 미래, 성장)에 앞서 첫 번째 원리로 제시한다고 강조합니다.
‘미래의 기억’, ‘오래된 미래’, ‘운’은 저에게 모두 같은 메시지를 전합니다.
첫째, 현재에 최선을 다하자는 것입니다.
미래는 현재에 의해 결정됩니다. 현재 또한 과거가 만들어 놓은 미래였으며 그 미래가 다가와 현재가 된 것이고, 현재는 과거가 되며 또 다른 미래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렇듯 과거, 현재, 미래는 연결되어 있지만 우리는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현재뿐입니다. 따라서 오늘 이 순간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간임을 깨달으며, 지난 과거 또는 오지 않은 미래에 연연해하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둘째,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미래는 현재가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좋든 나쁘든 결과는 수용해야 합니다. 현재인 과정이 좋으면 미래인 결과도 좋은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과정에 충실했다면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경험이 근육이 되어 성장하고,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언젠가 읽은 책에, 오지 않은 미래를 갈망하는 것과 지나가 버린 시간을 갈망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미래보다 중요한 현재에 대한 갈망은 동전의 옆면일까요?
수학적으로 따져보면 동전을 던져 앞면과 뒷면 즉 양면이 나올 확률은 1이고, 이것은 동전을 던졌을 때 옆면이 나올 확률이 0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과거나 미래만 갈망하며 현재는 소홀히 여긴다는 의미이죠.
동전을 던졌을 때 옆면이 나올 가능성이 낮은 만큼 현재에 집중하는 건 어렵습니다. 하지만 동전의 양면인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건 과거, 미래가 아닌 현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