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 선배의 편지
지난주 미사 때 신부님이 다음 일화로 강론을 시작하였습니다.
한 스승이 제자들을 운동장에 모아놓고 큰 원을 하나 그린 후 말했습니다.
“잠시 출타했다 올 터이니 너희들은 그동안 이 원 안에 있어서도 안 되고 원 밖에도 있어서도 안 된다.”
제자들은 머리를 모아 이런저런 궁리를 했습니다. 원 위에 서보기도 하고, 한 다리는 원 안에 다른 한 다리는 원 밖에 놓아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스승의 뜻에 맞는지는 도통 알 수 없었습니다.
얼마 후 출타를 마치고 돌아온 스승은 제자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고는 빗자루를 들고 오더니, 빗자루로 운동장에 그린 원을 쓸어버렸습니다. 원이 사라지니 원의 안도 원의 밖도 없어져 버렸지요.
당신은 이 이야기에서 어떤 메시지를 얻었나요? 신부님은 미사에 참례하여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신자들에게 신앙심에 관한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매사에 한계를 두지 말자‘라는 평소 제 다짐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수학책을 개발하는 것으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맡았던 과업이었던 교과서 개발은 참고서를 개발로 이어졌고, 중고등 영역에서 초등 영역으로 개발 경험을 넓혔습니다. 책을 개발하다 보니 열정을 쏟아부어 개발한 책을 어떡하면 더 많은 학생에게 사랑을 받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 고민은 마케팅과 영업에로의 관심으로 연결되어 제 업무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니 어느새 큰 조직의 관리자가 되어 수학을 포함한 전 과목으로 교육 출판 시장을 아우르며 일하게 되었고, 나아가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제가 다루었던 콘텐츠를 서책이 아닌 디지털로 제공하는 사업 영역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익숙하던 직무에서 낯선 영역으로 직무를 확장할 때마다 당연히 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를 만났지만, 새롭게 도전하지 않으면 지금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느낌표가 저를 새로운 직무에 도전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일하다 보니 ’한계는 없다‘라는 확고한 믿음이 생겼고, 도전할 기회가 있다면 하자는 다짐을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낯섦은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실제로 함께 일한 많은 후배가 새로운 기회 앞에 섰을 때, 익숙한 자신의 울타리를 열고 다른 세계로 발을 내딛는 것을 망설이다 포기하는 걸 보아왔습니다. 호기심 많고 매사에 열정적인 후배에게 새로운 일을 함께하자고 제안했을 때, 제 기대와는 다른 결정을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익숙함을 내려놓고 낯섦에 도전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선배로서 조금 더 세상을 경험한 저로서는 한계에 도전하는 행복과 한계를 넘어섰을 때의 희열을 포기하는 후배가 안타깝기만 합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어 미래를 예측하는 게 무의미해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저희 부모님 세대에는 한 직장에서 정년을 맞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정년은 고사하고 지금 다니는 회사에 언제까지 다닐지 가늠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명은 늘어나니 노후를 위해서라도 가능한 한 오래 일해야 합니다.
이런 세상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는 빗자루를 들고 스스로 마음에 그려놓은 원을 쓱쓱 쓸어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은 다릅니다. 미사가 끝나고 신부님의 강론을 되새기며 저는 제 능력의 한계에 비질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못 해도 되지만 안 하지는 말자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도전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충분히 가치 있음을 아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