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 선배의 편지
저는 <생활의 달인>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좋아합니다. TV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별로 없지만 어쩌다 보는 TV에서 <생활의 달인>이 방영되면 넋을 놓고 봅니다.
이 프로그램의 누리집은 ‘수십 년간 한 분야에 종사하며 부단한 열정과 노력으로 달인의 경지에 이르게 된 사람들을 소개하는 삶의 스토리와 리얼리티가 담겨있는 프로그램’이라고 이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2005년부터 방영을 시작하였으니 20년을 넘어선 장수 프로그램이네요.
이 프로그램이 이처럼 꾸준히 방영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프로그램의 설명처럼 한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분들에 대한 존경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은 TV 안에서만이 아니라 주변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제가 만난 구두 수선의 달인 이야기입니다.
주변에서 오래 신은 구두가 밑창이 벌어졌습니다.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뒷굽을 갈았고, 오래되어서 걸을 때마다 나는 소리도 수선해서 신었기에 이번에는 버려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워낙 편하게 신던 구두이고 얼마 전 새로 산 구두에 발이 아직 적응되지 않아 고생하고 있던 터라 수선을 하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습니다.
퇴근길에 아파트 입구 구두 수선소에 들렀더니 마침 아저씨는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아저씨 지금 구두 수선되나요?"
"그럼요, 안으로 들어오세요."
"구두 앞 밑창이 벌어졌거든요. 붙일 수 있나요?"
구두를 꼼꼼히 살펴보던 아저씨는
"참 알뜰하게도 신으셨네요. 그런데 이 구두는 앞부분이 유광 처리되어 있어서 본드만 칠해서는 금방 다시 떨어져요."
"그럼 버려야 하나요?"
"수선하면 아직 새것인데 버리기는요. 앞부분을 실로 꿰매고 밑창을 다시 덧대면 됩니다. 좋은 구두인데 수선해서 신으세요. 버리기엔 아깝잖아요."
"네, 수선해 주세요."
마음을 정하고는 일어설 높이도 안 되는 작은 공간 안에 앉아서 아저씨가 구두를 수선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나에게 늦게 퇴근하니 시장하겠다면서 요구르트 하나를 건네준 후, 아저씨는 장갑을 끼지 않은 손으로 구두를 정성스럽게 수선했습니다. 아저씨의 손은 세월의 무게와 경력을 느끼게 할 만큼 굳은살이 박여 투박했습니다. 그런데 그 투박한 손으로 힘주어 구두 밑창을 꿰매다 손이 삐끗하는 바람에 바늘에 손을 찔렸습니다. 상처에서 피가 나오는 걸 본 저는 당황했는데, 아저씨는 흔히 있는 일인 양 헝겊으로 손가락을 힘주어 잡아 지혈한 후 상처 부위에 본드를 발랐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는 아저씨가 다쳤을 때보다 더 당황했습니다. 독한 공업용 본드를 다친 속살에 대면 매우 아플 텐데 저러다 덧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밀려왔습니다. 그러나 아저씨는 상처 따위는 아랑곳없이 다시 구두 수선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세심하게 구두 수선을 마친 아저씨는 저에게 구두를 건네며 말했습니다.
"구두 밑창이 많이 닳아서 그동안 걸으면 발바닥이 아팠을 텐데 이제 편할 거예요. 그리고 미끄러운 바닥을 걸어도 미끄러지지 않을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아니요, 저한테 구두 수선을 맡겨주신 게 고맙죠."
어느 분야에서 달인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려면 그 분야에 통달하여 남달리 뛰어난 역량을 가져야만 합니다. 제가 달인을 보고 존경심을 넘어 경외심까지 갖는 이유는 달인의 칭호를 얻기까지의 시간 때문입니다.
우리는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일의 의미를 배웁니다. 그리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며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정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한 지식을 쌓아갑니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하게 되면 어느 순간 일은 자신을 나타내는 상징이 되죠.
일을 하면서 달인의 수준에 다다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 수준에 다다르는 이가 많지 않으니, 달인이라는 특별한 칭호를 붙이는 것이겠죠.
저도 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 일했지만 달인은 아닙니다. 달인의 칭호를 받기에는 능력도 부족합니다. 그러나 달인이 되고는 싶습니다. 그래서 달인이 못 되더라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 보려고 합니다.
최고보다는 최선에 가치를 두는 삶을 지향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