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 선배의 편지
요즘 저는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새로 취임한 대통령의 영상을 찾아보곤 합니다. 대통령의 언행을 통해 리더십에 대해 생각하고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대통령이 예비 공무원들과 나눈 문답 영상에서 그는 공직자의 책무를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이 마귀입니다. 이 마귀는 절대로 마귀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지 않아요. 가장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을 하고 나타나죠.”
이 영상을 보니, 예전에 제가 겪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꽤 오래전 일입니다. 협력 업체 사장이 회사 앞으로 찾아와 전화로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평소 협력 업체하고는 일정한 거리를 두던 터라 용건이 무엇인지를 물었지만, 재차 잠깐이면 된다며 나와달라고 했습니다. 미팅을 원하면 사무실로 오라고 했지만, 그 사장은 카페 이름을 말하며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불편한 용건일 게 뻔했지만 결국 뭔지 들어나 보자는 마음으로 나갔습니다.
예상대로였습니다. 그 사장은 본인 회사로 일거리를 몰아주면 거래금액의 일정 비율만큼을 저에게 돌려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몹시 불쾌했습니다. 저를 뒷거래에 응할 사람으로 보았다는 사실 자체가 모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말했습니다. 우리 회사와의 거래에서 이익이 많이 남는 것 같으니, 지금 제안한 금액만큼 거래 단가를 낮추겠다고요. 그리고 바로 거래를 끊었습니다. 오염의 위험은 제거하는 것이 최선이니까요.
이런 부정한 유혹은 누구에게나 언제든 전혀 예상치 못한 얼굴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돈이 천사의 모습으로 다가와 마귀처럼 작동한다는 대통령의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특히 권한과 책임이 주어진 자리에 있을수록 그 유혹은 더욱 교묘하고 집요하게 찾아옵니다.
그렇다면 부정한 거래를 성사시키는 최종 결정권자는 누구일까요? 그것은 거래를 제안한 쪽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쪽입니다. 바로 나 자신이죠.
처음엔 ‘한 번쯤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됩니다. 그 생각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다들 그렇게 한대.’, ‘하는 일에 비해 보수가 너무 적어.’, ‘회사가 나를 챙겨주지 않잖아.’와 같은 자기 정당화로 이어지고 스스로 합리화하죠. 이러한 합리화는 외부 유혹이 없어도 스스로와 타협하게 만들고, 결국 자신의 신념을 갉아먹게 됩니다.
지금까지 이 글을 읽으며 ‘설마 그럴까?’하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직 생활을 하며, 자의든 타의든 부정한 유혹에 굴복해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을 적지 않게 보아왔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한 일이 결코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그런 믿음이 없다면 애초에 그런 선택을 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절대적인 비밀이란 없습니다. 두 사람 이상이 알고 있는 일은 언제든 드러날 수 있고, 대개는 자신의 입이 아닌 타인의 입을 통해 알려지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부정한 거래는, 제안을 했든 받았든 상대가 쥔 칼에 내 목을 내어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 칼이 언제 내 목을 파고들어 피를 흘리게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습니다. 손바닥으로 가린 건 하늘이 아니라, 자신의 두 눈입니다. 무엇보다 부끄럽지 않게 사는 사람은 애초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함께 일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신뢰’입니다. 그리고 신뢰는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비롯됩니다. 작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태도, 스스로를 지키는 자세가 사람 사이의 믿음을 쌓습니다. 한 번 믿음을 잃으면 다시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타인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내 양심에 떳떳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내가 하는 선택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그 선택들이 쌓여 결국 내 평판이 되고, 내 인생의 얼굴이 됩니다.
세상은 완벽한 사람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