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 선배의 편지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신자라고 특별한 신앙생활을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매주 주말마다 미사 참례를 꼭 하며 머리를 비우는 시간을 갖는 게 제 신앙생활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미사에서 신부님 강론을 통해 마음에 새기게 되는 말씀이 종종 있습니다. 지난 미사에서도 신부님이 강론 도입부에 말씀해 주신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눠볼까요?
한 선비가 깊은 산을 넘다 호랑이를 만났습니다. 호랑이가 선비를 잡아먹으려고 하자 선비는 하느님께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한 번만 살려주세요. 한 번만 살려만 주시면 앞으로는 절대 나쁜 짓 안 하고 착하게 살겠습니다.”
그러자 호랑이도 하느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하느님은 선비와 호랑이의 기도 중에서 어떤 기도를 들어주셨을까요?
하느님께는 우리의 기도를 듣고 전하는 천사들이 있는데, 그중에는 청원(請願) 기도를 전하는 천사와 감사(感謝) 기도를 전하는 천사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하느님께 청원 기도를 많이 드려서 청원 기도의 천사는 바쁜 데 반해 감사 기도는 드물어서 감사 기도의 천사는 한가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호랑이의 감사 기도를 들은 천사가, 선비의 청원 기도를 들은 천사보다 더 빨리 하느님께 호랑이의 기도를 전했다고 하네요. 우리의 모든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느님은 호랑이의 기도를 먼저 들으셨고, 결국 선비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고 말았습니다.
청원은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고 감사는 받은 것을 고맙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선비와 호랑이의 이야기에서 우리의 마음속에는 받은 것에 대한 감사보다는 새로운 것을 바라는 청원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자연스레 조직 생활에서의 우리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조직 생활에서 각자가 받고 누리는 것은 많습니다. 일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고, 함께하는 여러 조력자가 있으며, 무엇보다 유무형으로 삶을 지탱하게 하는 ‘일할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어느 순간 공기처럼 당연해집니다. 꼭 필요하지만, 마치 처음부터 주어진 권리인 양 여기게 되는 것이죠. 그러다 보니 감사의 마음은 서서히 사라지고, 그 자리를 새로운 청원이 대신하게 됩니다. 청원이 충족되지 않으면 불만과 불평이 마음을 점령하고, 결국 표정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저는 완벽한 조직 생활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조직 생활에는 부족한 점이 있기 마련입니다. 만약 조직 생활에서 가진 것과 부족한 걸 양팔 저울에 올려 비교한다면 어느 쪽 저울이 더 아래로 내려갈까요? 저는 주저 없이 가진 것 쪽이 내려갈 거라 확신합니다. 그런데 왜 감사의 마음보다 청원의 마음이 더 앞설까요? 감사가 앞설 때 마음이 더 평안해짐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저는 이 질문에 ‘사람이니까’라고 답하겠습니다. 사람이기에 욕심을 내고, 더 바라고, 또 실망한다고요. 하지만 사람이기에, 욕심이 채워지지 않을 때보다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할 때 진짜 행복을 느낄 수도 있다고 믿습니다.
감사는 현실을 미화하는 감정이 아니라, 지금의 자리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입니다. 바라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불만도 커지지만, 받은 것을 헤아릴 줄 알면 마음은 한결 단단해집니다.
결국 일에서도 삶에서도 중요한 건 ‘무엇을 더 얻느냐’보다 ‘지금 가진 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 아닐까요.
받은 것을 헤아릴 줄 안다면, 우리는 이미 충분히 행복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