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지만 먹어야 하는
아버지가 술을 한잔 걸치고서는 말씀하셨다. 이 말의 의미를 회사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원하지 않아도 나이를 먹고 나이만큼 책임감이라는 것도 늘어난다. 책임감이 커질수록 인내의 횟수와 강도 또한 늘어난다. 그리고 사회가 당신을 그렇게 만들어간다.
회사 입사 1주년 기념으로 회식이 있었다. 그때 지점장과 과장이 말했다.
“우리 둘은 너를 두고 내기했었다. 네가 1개월 만에 퇴사할지, 3개월 만에 퇴사할지를 두고 말이다. 너는 영업이 안 맞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1주년 기념 회식을 함으로써 우리가 틀렸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영업을 10년 하고 15년 했는데도 아직 사람을 잘 모르나 보다”
사실 1주년 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수 없이 퇴사를 생각했다. 철 없이 몰랐던 1주년 전보다 영업과 직장에 대해서 알게 된 그 이후 더 잦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록 취업 전부터 여러 경험들을 통해 판매라는 것에 재미가 있어 영업을 선택 하긴 했지만 회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뽑는 것 또한 영업이었기에 선택 한 부분도 있었다. 나는 분명 마케팅이나 기획으로 가고 싶었다.
영업은 신규영업과 기존 고객을 관리하는 영업관리로 나뉜다. 나는 후자에는 100% 이상의 자신감이 있었지만 전자는 50% 정도만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신규 영업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한 압박 또한 상당했다. 사실 영업은 영업관리가 훨씬 중요하지만 회사가 성장하려면 결국은 신규 영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회의실의 언어와 분위기는 내가 상상을 초월하는 이상이었으며 스트레스 또한 상상을 초월했다. 잦은 야근은 부가적인 것이었다.
그래도 버텼다. 버틴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부산에서는 나쁘지 않음을 넘어선 괜찮은 월급이었고, 다른 한 가지는 다른 회사도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매일 인내하며 견디다 보니 어느새 대리라는 직급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위치에 맞게 책임감도 늘어갔다. 내 밑의 후배들은 나를 보며 따라왔고 선배들은 나의 뒷받침을 바탕으로 더 높이 올라가려고 했다. 힘들어도 인내했고 나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다.
만약 내가 인내하지 못하고 훨씬 이전에 그만두었다면 이직을 했을지 혹은 세계일주를 더 빨리 나왔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무성의하게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언제나 책임을 중요시했다.
나는 영리한 여우가 되고 싶은 우직한 곰이었다.
장기여행은 정말 인내와 책임의 연속이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더위, 말도안되는 이동수단과 숙박시설은 항상 나의 인내를 시험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직장생활과는 달리 내가 직접 선택한 것들이기에 후회가 없어야 했다.
있어도 없는 척하려고 나에게 최면을 걸었다.
모리타니 국경과 맞닿아 있는 세인트 루이스라는 도시에서 지낼 때였다. 세네갈 최초의 수도이기도 했고 자연환경도 나쁘지 않아 매력적인 곳이었다. 당연히 사람들도 너무 좋았다.
문제는 부족한 잠이었다. 집은 시멘트로 발라진 그냥 네모난 공간이 방의 역할을 했다. 방이 여러 개 나눠져 있지만 선풍기는 한 대이고 당연히 제일 큰 어른의 몫이었다.
모기와 벌레들 때문에 문을 닫고 자야 하며 모기장도 별도로 쳐야 한다. 낮의 더위가 40도에 육박할 만큼 더운 날씨인데 열대야 또한 엄청났다. 과장 조금 보태서 5시간 동안 거의 50번은 잠을 깼다. 그렇게 4일을 지내다 보니 컨디션은 엉망에 면역력은 떨어질 대로 떨어져서 잔 상처들 또한 낫지 않고 더 심해져 갔다.
그럼에도 내가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의 가족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5일 동안 그들과 함께 의료봉사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내 말에 대한 책임이 있었기에 겪고 있는 힘듦 조차도 견뎌내야 했다.
사실 나의 힘듦은 현지인 중 누군가가 겪고 있는 것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니 라베에서 수도인 코나키리로 이동할 때였다. 택시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프랑스인이 인사를 했다. 라베에서 영어 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그의 영어 인사가 반가워 잠시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 문제가 생겼다. 누군가 그의 작은 가방을 소매치기한 것이다. 그 가방에는 분명 핸드폰 및 여권 등 중요한 물품 등이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나에게 급하게 한 마디를 던지고 그를 쫓았다.
“Kei, Keep my bag”
나는 그가 범인을 잡던 못 잡던 이른 시간 내에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2시간 뒤에 출발할 예정이었던 차는 나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기사는 나에게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고 나는 내 가방과 지불한 돈을 환불 받음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어느새 8시간이 지났고 해는 땅과 가까워지려 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그의 가방을 맡기고 가면 그만이었다. 가방이 분실되든 안 되든 나에 대한 법적인 책임은 없었다. 단지 도의적인 책임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그를 기다렸다.
만약 내가 그의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그와 나에 대한 책임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그를 본 것은 30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의 여행이 조금은 순탄해지기를 바라는 책임이었고, 나도 나중에는 이와 같은 일이 생기면 보상받기를 바라는 책임이었다.
다행히도 떠난 지 8시간 30분 만에 그는 작은 가방과 함께 돌아왔다. 그는 연신 감사해했으나 그는 세네갈로, 나는 코나키리로 가는 마지막 차량이 바로 출발해야 하는 현실을 얼른 받아들이기로 하고 아쉽게 그 순간을 마무리했다.
세상이란 음식은 달기도 하고 쓰기도 하다.
어릴 때는 인내와 책임이라는 맛을 모른다. 부모가 쓰다 싶으면 먼저 먹어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인내와 책임이라는 맛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써서 맛이 없지만 코를 잡은 채 눈을 감고 꿀꺽 삼키기도 한다.
그렇게 맛을 알아가며 우리는 어른이 되어간다.
올해까지는 아프리카에 머물 예정입니다.
지금은 기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