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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내일 Feb 13. 2019

30대에 맞는 여행

나이의 틀에 맞춰 사는 우리들에게

터키는 매력적인 나라였다.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며,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또한 ‘형제의 나라’라는 이름으로 받는 친절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이었다. 유럽에서 “중국인이세요?”가 아닌 “한국인이세요?”라는 말을 먼저 들은 유일한 나라였다. 터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을 제외하고도 수도인 앙카라, 벌룬 투어로 유명한 카파도키아, 석회암 야외 온천을 경험할 수 있는 파묵칼레 등 유명 관광지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에서 머무는 9일 동안 나는 그저 이스탄불에서만 지냈다. 장기 여행자들이 말하는 여행 권태기였다.


9일 동안 이스탄불에서 머물렀던 호스텔

     

장기여행을 하려면 일상을 잠시 놓고 오거나 포기해야 했다. 몇 개월이 지나면 여행이 일상이 되었으며, 한국에서 비슷한 삶을 살아가던 친구들과는 완전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여행 권태기는 이로 인해 생긴 혼란과 괴리감이 만들어낸 결과물인 듯했다. 하루는 자고 일어났더니 5명의 지인으로부터 각각 문자를 받았다.

   

“다음 달에 결혼한다. 못 오겠지?”

“집 산다. 대출이 절반이다.”

“아이 생겼다. 돌에는 와라.”

“첫째 아이의 돌이다.”

“얘랑 못 살겠다. 아마 이혼할 것 같다.”    


그들에게 답장을 보내고 나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터키에 있는 호스텔에 묵고 있는 것일까? 친구들이 달려가는 동안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내 선택이 과연 옳았을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나는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점심 즈음까지 침대에 누워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다, 배가 고파질 때쯤 간단히 씻고 집 앞 식당에서 케밥을 먹었다. 그리고 탁심 Taksim 거리를 걸었다. 걷다가 다리 아프면 벤치에 앉고, 걷다가 길거리 공연을 하면 잠시 멈췄다가 다시 걸었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면 해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멍하니 석양을 바라보다 가게에서 맥주 한 캔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터키를 떠나기 전까지 며칠 동안 이런 일상을 반복했다. 지금에서야 저런 생각들 때문에 유명 관광지에 가지 못했던 것이 아쉽지만, 당시에는 정말 혼란스러웠다. ‘여행을 선택하지 않았다면?’이란 가정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집을 사는 시기가 빨라졌거나 대출금액이 적어졌을 것이다. 일은 힘들지만, 술 한 잔으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렸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30대 남자의 삶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술탄 지구를 바라볼 수 있는 탁심 지구


사람들은 사회가 만들어놓은 ‘나이’의 틀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나이는 살아온 햇수에 불과하지만 ‘나이에 맞게 고민하고 행동해라.’라는 말의 뜻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각 세대는 ‘틀’에 속한 고민이 있다고 한다. 보통, 10대는 공부, 20대는 취업, 30대는 돈, 결혼, 40대는 가족, 50대 이후는 노후 준비 및 건강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고민하는 모두가 복잡하고 어렵겠지만, 그중에 20, 30대는 더욱 힘든 것 같다.


하루의 절반을 아르바이트로 일해도 학자금 대출을 갚을 수 없는 시기, 공모전/인턴 없이는 이력서 제출하기도 힘든 시기, 공무원 시험을 위해 명절도 없이 학원에서 공부하는 시기, 바늘구멍을 뚫고 취직했는데 이직하고 싶은 시기,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현실을 알게 되는 시기, 돈은 모아야 하는데 이자율이 낮아 적금으로는 턱도 없는 시기, 그렇다고 투자하기에는 목돈이 없는 시기, 집값은 계속 올라가는데 내 집은 없는 시기, 친척을 만나면 결혼에 대한 잔소리부터 듣고 시작하는 시기, 부모의 명의로 된 집에서 함께 사는 것이 죄송한 시기, 홑벌이로 살고 싶지만 아이 교육비 때문에 맞벌이해야 하는 시기, 다른 사람은 행복한 것 같은데 나만 행복하지 않은 것 같은 시기


그래서인지 세계 일주를 시작할 때 단순히 관광지를 보고 즐기기 위한 여행은 하고 싶지 않았다. 사회가 생각하는 30대에게 맞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여행 이후 나에게 도움될 만한 무언가를 찾으려 했고, 찾아야만 할 것 같았다.


각 나라의 주요 도시 물가를 파악하고 트렌드를 확인했다. 사업할 수 있는 아이템을 찾거나 재취업 시 이득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실제로 1번의 취업기회가 있었고, 2번의 사업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투자비용과 외국에서 과연 오랫동안 지낼 수 있겠느냔 의구심에 확신이 들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강박관념은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다. 내가 하는 것이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세계 일주인지 아니면 사업 아이템 발굴 탐방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혼란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생각이 터키에서 발단되어, 유럽에서 전개되었고, 모로코에 들어가기 전 절정이 되었다. 게다가 유럽에 머물 때 안 좋은 일이 연거푸 생기면서 우울증 증세까지 오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어떻게 반응하고 대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러한 감정을 가진 채 스페인에서 모로코로 이동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모로코의 메르주가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막인 사하라 사막 투어를 할 수 있었다. 두바이에서 이미 사막을 접했지만, 그곳과는 달리 ‘광활한 사막’이었다.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보름달 때문에 사막의 별이 그다지 밝지 않은 것이었다. 별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함께 온 사람들과 새벽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막까지 왔는데 이야기하며 밤을 새울까, 잠을 조금이라도 잘까 생각하다가 무심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내가 보고 싶었던 만큼의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을 뒤로한 채 텐트 구역 바깥으로 나왔다.


모래 위에 팔짱을 끼고 살포시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에는 무수한 별이 반짝이고 있었고, 내가 기대한 사막의 밤이었다. 순간, 사막에 누워 별을 보고 있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취해버렸다. 내 옆에는 알게 된 지 몇 시간밖에 되지 않은 이름은 모르지만 나보다 나이가 많음을 알고 있던 한 사람이 누워있었다. 그에게 뜬금없이 말을 건넸다. “정말 아름답지 않아요?”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고, 안 자고 왜 나왔느냐고 물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나서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잠이 오지 않네요. 지금 세계 일주 중인데 이 선택이 맞는 것인가 싶어요. 이렇게 비현실적인 상황에 취해있다 현실로 가게 될 텐데. 한국에 가면 나는 과연 무엇이 변해있을까요? 돈과 시간을 쓴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경험밖에 없을 텐데. 친구들은 저만치 멀리 나아가 있을 텐데. 사회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 텐데. 선택을 잘못한 것 같아요.”    


갑작스럽게 눈물이 흘렀다. 눈물을 닦고 내 이야기를 계속해서 꺼냈다. 왜 회사를 그만뒀고, 왜 여행을 시작했고, 왜 우울증까지 느껴졌고, 왜 눈물이 났는지를. 깊숙이 눌러져 있던 우울한 감정을 2시간가량 그에게 쏟아냈다. 나중에서야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정말 살 것 같았다. 만약 그날 그에게 속에 쌓여있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계획보다 일찍 한국에 돌아왔거나 아무 의미 없이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을 했을 것이다.


사하라 사막의 moon rise(월출)


그날 이후 그를 형이라 불렀다. 나에게는 생명의 은인과 크게 다를 바 없었고, 오글거리지만 내가 형의 손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형을 만났다. 가벼운 술 한 잔을 하며 사막에서의 그날을 안주 삼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쯤 형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30대는 왜 이렇게 힘들까요? 형도 이렇게 힘들었어요?”

“30대는 아무것도 아니야. 40대는 너무 힘들어. 빚만 갚다가 죽을 것 같아. 죽어서 남는 것이 집 한 채라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야. 그래서 내가 아쉽고 네가 부러워. 나는 30대 때 너처럼 나이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못했거든. 좋은 직장을 가지고, 좋은 사람과 결혼해서 사랑하는 아이를 가졌어도 아쉬운 거지. 한 번쯤은 너와 같은 누군가에게는 미쳐 보이는 짓을 해보고 싶었거든.”

“지금이라도 하시면 되잖아요?”

“안 돼. 집에서 쫓겨나.”    


이제껏 나는 사회가 정해놓은 나이의 틀 안에서 고민하고 행동했다. 틀의 경계선을 넘어 한 발자국 넘어가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선을 넘어서지 않은 채 보이지 않는 미래를 잡으려고 하니 허공에 헛손질만 했고, 잡히지 않으니 불안했다. 그래서 가끔은 선을 넘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 주변에서 “재는 왜 저런 걸 하는 거지? 나이에 안 맞게”와 같은 한심함과 질투심이 반반 담긴 행동 말이다. 30대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세계 일주는 그에 딱 맞는 행동이었다. 세계 일주를 하면서도 나이의 틀에 갇혀있었고, 끝이 난 지금도 벗어나지는 못했다. 다만, 이전과는 달리 선을 넘을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는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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