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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내일 Mar 06. 2019

어쩌면 '나'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조각

우리가 '사랑'을 하는 이유

사랑은 스트레스 감소, 면역력 향상을 포함한 익히 알려진 긍정적인 효능이 십여 가지가 넘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효능은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사랑하면 서로 간에 다투기도 하며, 이별을 선택하기도 한다. 생각지도 못한 스트레스를 받아 밥이 넘어가지 않으며, 탈모가 생기기도 한다. 술은 얼마나 많이 마셔야 상대를 잊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면 한 번에 마셔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감정이 심하게 널뛰기할 때면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을 하는 이유는 행복한 순간이 더 많기 때문이다. 힘들고 아픈 순간이 더 많다면 사랑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는데, 잠깐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수많은 고통을 감내할 이유는 없다. 이렇게만 따진다면 삶에서 행복해지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점점 사랑이 어려워지는 것 같다. 사랑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데 그것이 어렵다. 나와 상대에 대한 기대와 욕심이 점점 늘어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른 영화와 조금 다른 부분은 남자 주인공인 우진의 얼굴이 어떠한 이유로 인해 매일 바뀌는 것이다. 우진은 자신의 특별한 문제 때문에 진실한 사랑을 하지 못했지만, 여자 주인공인 이수를 만나고 나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매일 얼굴이 바뀐다. 과연 어떨까? 결국 그들은 이별을 선택한다. 그러나 시간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다시 사랑을 선택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 영화처럼 순수하면서 진실한 사랑을 원할지도 모른다. 상대의 배경이 아닌 사람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 어떤 역경과 고난이 와도 사랑 하나만 믿고 상대와 함께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면 이런 생각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나’라는 존재가 예전에 비해 나아지는 만큼 상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며 욕심도 많아진다.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수없이 듣고 보게 되는 ‘현실’ 앞에 타협하게 되는 것이다. 가끔은 사랑이 더 나은 ‘선택’을 하는 행위가 되며, 자신보다 주위가 인정해야 사랑할 수 있는 경우도 생긴다.    


같은 위치를 찾기 위해 얼마나 셔터를 눌러댔던지...


20대에 연애할 때는 사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대에게 거짓 없는 좋아함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내 시간보다 함께 하는 시간이 더 중요했고, 상대가 밥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이 부모와 자식 간에만 쓰는 말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서른에 가까울 때쯤부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이미 주위에서는 막장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를 직접 겪고 있었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상대에 대한 기대와 욕심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사랑에 또 다른 이유를 찾기 시작했고, 이유가 보이지 않으면 사랑은 삶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물러났다. 함께하는 시간보다 내 시간이 중요했고, 배는 내가 불러야 했다. 생각은 많아지고, 행동은 느려지는 내 모습은 이미 상대에게 다른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새로운 사랑을 하려 해도 빨갛게 익은 사과만을 찾게 되었다. 풋사과는 사과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랑도 타협하는 ‘현실적인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가끔 여행은 어른을 아이로 만드는 마법을 부리는 것 같다. 사람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여행하기 전에 친구들이 “혼자 여행가지만, 올 때는 둘이서 와라.”라는 장난스러운 이야기를 건네면 “그럴 일은 없다.”라고 못을 박았다. 내 계획에 사랑은 없었고 사치라고도 생각했다. 여행하며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는 그냥 영화일 뿐이었다. 


그런데 베트남 하노이에서 한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첫눈에 반하는 확률보다 벼락 맞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던 현실인 어른인 나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여행을 계속하기로 했고, 그녀는 얼마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뻔히 미래가 보이는 그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을 건넬 수 있었던 것은 한 가지 생각 때문이었다.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아름다운 순간들을 그녀와 함께 보고 싶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하고 싶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


얼마 후 그녀는 내 마음을 받아들였다. 나를 지켜보면서 진심을 확인하고 싶어 했고, 그 모습을 느꼈다고 했다. 그녀도 잠시나마 ‘사람’만을 보던 20대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라 생각한다. 여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을 그녀와 함께했다. 힘든 순간도 있었지만, 그건 잠시였다. 내 시간은 중요하지 않았고, 그녀가 밥 먹는 모습을 보면 배가 불렀다. 친구들은 비포 선라이즈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축하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비포 시리즈의 마지막은 해피엔딩 일지라도 비포 선라이즈는 아니었다. 4개월 뒤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갔고 얼마 후 <뷰티 인사이드> 주인공과 같은 예상했던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혔다. 그런데 나와 그녀는 영화 주인공이 아니었다. 나는 그녀를 위해 무언가를 해결해 줄 수 없었다. 우리는 현실을 선택했다.    


그저 현실일 뿐


사람들은 여행하면서 로맨스 적인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다. 한국에서 따질 것 다 따지고 만나는 것이 아닌 운명 같은 끌림을 느끼길 원하는 것이다. 실제로 빈 Wien에서 만나 7년째 여행 중인 커플, 라오스에서 만나 3년째 각 도시에서 웨딩 촬영을 하는 커플, 독일에서 만나 4년째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는 커플을 만났다. 


그러나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여행은 지독한 현실이었다. 비용 문제로 저렴한 숙박을 찾아야 했고, 영양소를 따져가며 음식을 푸짐하게 먹기 어려웠다. 20kg의 가방을 메고 오랜 시간 걸어 몸이 성할 날이 없었고, 소매치기나 범죄에 항상 긴장해야 했다. 통장에는 플러스가 아닌 마이너스 거래 내용만 가득했고, 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가득했다. 이러한 이유로 3년 동안 여행하다가 헤어진 지 일주일 된 남자, 6년을 여행하고 전날 헤어진 여자, 5년을 여행하고 헤어져서 자살까지 마음먹은 여자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중에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Abidjan에서 만난 한 프랑스 남자는 나에게 사랑에 대한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아비장의 지독한 황사는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걷다가 지쳐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했다. 잠시 뒤 예순은 되어 보이는 한 남성이 오더니 옆에 앉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벤치에 앉은 뒤 가방에서 사진액자 하나를 꺼내 옆자리에 놓아두었다. 얼마 후, 눈물을 한두 방울 흘리더니 펑펑 울기 시작했다. 일어날까 생각했지만, 머리가 너무 아팠다. 5분 뒤 눈물을 그친 그는 나에게 “혹시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후회하지 말고 잘해주세요.”라는 말을 툭 하고 던졌다. 순간, 둔탁한 무언가에 머리를 맞은 듯했다. 그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사진 속 주인공은 그의 아내였고, 둘은 30년 동안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부터 가장 더러운 곳까지 장소에 상관없이 서로의 사랑을 굳건히 했다. 우리가 앉은 벤치는 둘이 처음 만났던 장소로써 결혼 30주년 기념으로 같이 오기로 한 곳이었다. 전년이 30주년이었는데 남성이 항암 치료를 받느라 오지 못했다. 다행히 그는 병이 완치되었다. 다행이지 않은 것은 그녀 또한 암에 걸렸고 얼마 후 세상을 먼저 떠나버린 것이었다.    


“우리는 30년 동안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고 행복했어요. 그런데 한 번의 약속을 못 지킨 거죠. 위험한 일이 있었다 해도 작년에 이곳에 왔었어야 했어요. 그녀가 떠나가고 나니 후회만 남아요. 그려왔던 미래가 이제 모두 과거가 되었어요. 혹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후회가 남지 않게 잘해줘요. 어차피 후회는 남겠지만 덜 남을 수 있도록.”    


잠시 뒤 그는 자리를 떠났다. 그가 떠나고 그녀와 완전히 이별하던 날이 떠올랐다. 나는 그녀에게 “내가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도 바뀌는 것은 없어?”라고 물었고, 그녀는 “없을 거야.”라고 대답했다. 순간, 나는 안심해버렸다. 돌아가도 잡을 수 있을지, 돌아가면 다시 여행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던 나에게 답을 내려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말을 핑계로 나 자신에게 ‘그래, 내가 할 건 다했어.’라는 이유를 만들어 위안 삼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녀에게 갔었어야 했다. 그녀를 잡지 못하든, 여행을 다시 못하든 갔었어야 했다. 갔다고 해도 다른 형태의 후회가 남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했어야 나에게 후회가 덜 남을 수 있었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큰 후회가 남게 되었다.     


그들은 진정한 사랑을 했을까?


사랑을 이야기할 때 상대에게 기대하고 욕심을 가진다는 것은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본능일 뿐이며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내면을 보려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면을 보지 않으면 허상과 사랑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보내버리지 않을까 한다. 결국은 큰 후회만 남는 것이다.


나도 순수하고 사람의 내면만을 보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지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덜 후회할 수 있는 사랑을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상대에게 내 진심을 보여주되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려 할 것이다. 행동 없는 기대와 욕심은 공허함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비포 선라이즈의 남자 주인공인 제시는 “우리가 인생에서 하는 모든 행동은 더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닐까?”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나’를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조각이 사랑은 아닐까?    






책 <답은 '나'였다>와는 달리 사진 몇 장을 첨가하였습니다.

(기존 책에는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위클리 매거진 목차가 총 12개밖에 안 되기 때문에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맥락을 이해해야 하다 보니 사진 몇 장을 넣는 것이 좀 더 공감하기 쉽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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