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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내일 Mar 20. 2019

배움의 끝은 없다

배움을 멈추면 안 되는 이유

하루는 집 앞에 있는 카페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연세가 족히 80세가 되어 보이시는 어르신 두 분이 옆 테이블에 앉으셨다. 처음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다가, 어느 순간부터 한 분이 이해 안 된다는 식의 말투로 다른 한 분을 타박하듯 몰아붙이는 목소리에 귀가 열리게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카페에 있는 사람은 우리가 전부였다.  


“아니, 왜 계속 가지 않겠다는 건가. 아들놈이 해외여행 보내준다는데.”

“그러게 말이네. 그런데 자네는 알지 않는가. 내가 못 가는 이유.”

“참, 나, 아니까 더 답답한 거 아닌가. 그깟 컴퓨터 수업 조금 빠진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닌데. 내 아들놈이 그랬으면 나는 내일 당장 갈 거야.”

“알지. 그런데 이건 나와의 약속이네. 이게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무엇인가를 배우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두 분의 말을 순화해서 담았지만, 실제로 타박하는 분은 진심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투와 억양으로 말씀하셨다. 나 또한 “할아버지, 아들의 마음을 생각해주셔서 여행 가시는 것이 어떠세요? 친구분 말씀처럼 컴퓨터 수업이야 여행 이후에도 들을 수 있으실 텐데요.”라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누군가에게는 아들의 효도를 거부하는 매정한 아버지의 모습처럼 보일 수 있다.


그에게 컴퓨터 수업은 무엇이었고, 배움이란 무엇이었을까?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얼마 전 미술 전시회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미국의 샤갈이라고 불리는 해리 리버만Harry Lieberman 이었다. 그는 폴란드 출신이며 26살의 나이에 미국에 이민 왔고, 과자 도매상을 통해 나름의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은퇴 이후에는 노인학교에서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는 삶을 살았다. 하루는 체스를 둘 상대가 없자 벤치에 앉아 멍하니 있었다. 그를 본 한 자원봉사자가 해리에게 이야기했다.


“할아버지, 그냥 앉아 계시지 말고 미술실에 가서 그림이나 그려 보시는 것이 어때요?”

“내가 그림을 그려? 붓 잡을 줄도 모르는데”

“그거야 배우면 되지요.”

“그러기엔 너무 늦었어. 내 나이가 77세야”

“제가 보기에는 연세보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더 문제인 것 같은데요.”


새로운 배움이 두려웠던 해리는 그 후 매일 거르지 않고 미술실에 찾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34년 뒤인 101세에 22회 전시회를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해리 리버만(Harry Lieberman) 1880~1983


요즘은 인생은 80세부터라고 한다. 아직 한국인 평균수명이 78.6세라는 것을 봤을 때 말로써는 이상하지만, 어느 정도 의미는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두 인물을 보면 나이는 정말 숫자에 불과하며, 배움을 가로막는 절대적인 요인은 아님을 알 것 같다. 좋아하는 말 중에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말한 “항상 갈망하라. 끝없이 배우고 도전하라”가 있다. 그의 말처럼 배움이란 항상 갈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단순 정보의 축적만이 아닌 ‘나’라는 존재를 찾게 해주는 성찰과도 같다. 배움 없이는 ‘나’라는 존재를 찾는다는 명제조차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배움은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존재해야 하는 ‘주요’가 아닌 ‘필수’ 가치인 것 같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 숨 쉬는 법을 제외하고, 걷고 말하는 법을 부모로부터 배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학교와 같은 교육기관에서 선생님으로부터 수학공식과 외국어를 배우게 된다. 성인이 되어서도 학교, 직장, 사회에서 계속해서 배우려 노력한다. 이렇듯 대부분의 배움은 타인으로부터 배워지는 경우가 많으며, 배움의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그중에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예전과는 조금 다른 한 가지이다.


어릴 적에 ‘누구 친구가 많은가?’라는 내용으로 친구와 온종일 열을 낸 적이 있었다. 100명 있다고 하면 상대는 1,000명 있다는 식의 꼬리물기가 계속되었다. 결국, 승자는 가리지 못했지만, 친구가 많은 것이 좋았다. 친구란 평생에 있어 내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존재이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만 바뀔 뿐이었다. 그런데 이전까지는 친구라는 단어 앞에 ‘한국’이라는 단어가 빠져있었다. 사용해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붙여서 사용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는 몰타에서 두 달 동안 머물렀던 숙소 룸메이트이자, 생에 첫 콜롬비아 친구였다. 그는 프리랜서 기자이며 4개 국가 언어를 유창하게 할 만큼 머리가 좋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성실하다. 콜롬비아 보디빌딩 대회 우승자일 정도로 몸 관리도 뛰어나다. 처음에는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보통의 남미 친구들과는 달리 소극적으로 보여 친해질 요소를 찾지 못했으나, 운동과 영어라는 공통점을 통해 친해지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이 클럽에서 대부분 시간을 보낼 때 우리는 헬스클럽을 가거나 숙소에서 머물며 온갖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가벼운 일상적인 대화만 나누다가 어느새 결혼, 문화, 이민에 관한 서로의 의견을 나누게 되었다. 영어 실력이 늘어가는 것보다 그의 생각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던 것이 더 좋았다.


하루는 금가루가 들어있는 20유로쯤 하던 와인 한 병과 과자 한 봉지를 두고 오랜 시간 동안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래, 삶 그리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주변의 친구와도 나눠본 적 없었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과 이러한 대화를 해볼 거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이야기였다. 우리는 그 순간의 무거움을 즐겼고, 진실함을 받아들였다. 나에게는 깊은 영감을 준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도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그렇게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평생 그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두 달 동안 그에게 배운 것들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나도 그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의 자랑스러운 친구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콜롬비아로 돌아가지 않고 노르웨이에 머물며 자신의 새로운 삶을 그려가고 있다. 내가 다시 노르웨이로 간다면, 그가 한국으로 온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서로가 장담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음을 확신한다. 적어도 나는 확신한다. 그에게 배우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찾는 법이다.


그날, 나는 소중한 친구 한 명이 생겼다


크리스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외국 친구를 만나며 다양한 배움을 습득할 수 있었다. 그들에게 배운 것을 한국에서 얻으려면 일정 금액 이상의 돈을 지급하고 강의에 참석하여야 한다. 2시간 혹은 3시간의 배움과 동시에 수료증이라는 명목의 종이 한 장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단 한 번도 돈을 주고 배운 적이 없었다. 그저 걸어가는 길에 심심하지 않게 말동무만 되면 되는 것이었다. 맥주 한 병이 있다면 금상첨화였다.


다행히도 외국을 나가지 않아도 나와 같은 경험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성장에 맞춰 다양한 국가의 외국인들이 방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상반기 외국인 관광객 년 간 방문자 수가 720만 명이라고 한다. 기회는 언제나 존재한다.


움의 끝은 없다. 내가 평생 배울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배울 것의 1%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렇다면, 배움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배우는 것도 피곤한 행위인데.”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데도 내가 계속해서 무언가를 배우고자 하는 이유는 앞서 말했던 ‘나’를 찾게 해주는 하나의 필수요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의 배움 중 하나가 나의 가치를 깨닫게 해 주거나 나를 완성해 줄 수도 있다. 


배움은 학문만이 아니다. 무형의 모든 가치가 배움에 속할 수 있다. 어쩌면 카페에서의 할아버지가 자식을 불효자로 만들고, 친구에게 타박받으면서도 컴퓨터 수업을 들으려 했던 이유가 이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책 <답은 '나'였다>와는 달리 사진 몇 장을 첨가하였습니다.

(기존 책에는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위클리 매거진 목차가 총 12개밖에 안 되기 때문에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맥락을 이해해야 하다 보니 사진 몇 장을 넣는 것이 좀 더 공감하기 쉽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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