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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내일 Mar 13. 2019

5 디르함이 가르쳐준 가치

나눔의 가치를 깨닫는 순간

모로코 페즈 Fez에서 메르주가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에 탑승하려고 할 때였다. 모로코에서는 버스에 짐을 실을 때 기사에게 암묵적으로 5 디르함(약 700원)을 지급해야 했는데 수중에는 100 디르함(약 13,000원) 단위의 돈밖에 없었다. 잔돈을 바꿀 곳이 없었던 나는 거스름돈을 줄 수 없었던 기사와 약간의 문제가 있었다. 그는 내가 예의 없다는 식의 언짢은 말투로 짜증 내고 있었다. 다행히 상황을 지켜보던 한 외국인 여성이 금액을 대신 지급함으로써 문제는 해결되었다. 크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고마운 마음에 연거푸 인사를 건넸다. 신기하게도 버스에서 내 옆자리에 앉게 되어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했다. 독일 친구인 실비아는 여행을 좋아하는 중학교 선생님이었다. 여행이 취미라고 했지만, 세계 일주하는 나보다 방문한 국가 수가 더 많았다. 우리는 마치 친한 친구였던 것처럼 이동하는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전에 너와 똑같은 경험을 당한 적이 있어. 그때 프랑스인 친구가 도와줬어. 700원이면 독일이나 한국에서 비싼 돈은 아니잖아. 그런데 너무 감사했어. 천사처럼 보였어.”

“나도 똑같았어. 네가 천사처럼 보였어.”

“아마, 너에게 크지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을 줄 기회가 있을 거야. 그러면 너의 도움을 받은 사람도 누군가를 돕게 될 수 있을 테고. 그럴 수 있음을 믿어.”    


며칠 뒤 마라케시 Marrakesh에서 그녀가 말한 일이 발생했다. 10 디르함으로 택시비를 대신 지급함으로써 누군가에게 감사 인사를 받았다. 비록 영어를 못 하는 현지인이어서 실비아가 한 말을 전해주지는 못했으나, 그녀도 누군가를 도울 것이라고 믿고 있다.     


700원으로 삶의 가치 하나를 배웠다


어릴 적부터 부모님은 “주는 만큼 돌려받는다. 그러니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라.”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그런데 살다 보니 부모님이나 실비아의 말처럼 세상이 다 그렇지는 않았다. 주니까 그냥 받기만 하고 다시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부끄럽지만 나도 가끔 그랬다. 현실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돈을 제외하고는 돌려받는 크기가 상관없는 경우가 많았다. 수치로 나타낼 수도 없었다. 하지만 사람 기분이라는 것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기브 앤 테이크처럼 딱 잘라 50:50은 아니더라도 60:40, 적어도 80:20은 준 만큼 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모든 걸 다 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랑도 다르지 않았다. 당신보다 내가 더 사랑하며 주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다고 말했던 나도 어느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이런 행동을 하는 내가 잘못된 것인가 생각 들기도 했지만, ‘동의한다.’라는 뜻을 내비치는 주변의 많은 사람을 볼 때면 나만의 문제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그런데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들에게 주고, 받음은 의미 없는 것이었다. 그저 가진 것을 주려고 했고, 받은 것도 나눠주려고 했다. 자신이 무엇을 가지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무엇을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었다. 가지고 있지 않아 줄 수 없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일이었다.


살면서 가진 것을 걱정하지 않고 베풀려고 하는 사람을 종종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들이 특별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행동이 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람은 살아있는 존재만으로도 특별하지만, 그들을 특별하다고 하는 이유는 몹시 어려운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들처럼 특별해 보이지 않아도 베푸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게도 가진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여행하면서 금전적인 부분부터 환경적인 부분까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 대부분은 도울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이었고, 나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아프리카는 달랐다. 그들은 내가 도와야 하는 처지를 가진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게 더 베풀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세네갈에서 호스트의 집에 머물 때였다. 다 쓰러질 것 같은 집에는 17명이 살고 있었다. 콘크리트로 된 방은 두 개였고, 노인 두 분을 제외한 한 방에는 15명이 머물렀다. 6명이 돈을 벌고 있었으나, 6개월 동안 그들이 벌어들인 수입의 합이 내가 한국에서 받았던 한 달 월급과 비슷했다. 외적인 모든 것이 불편했다. 잘 때는 모기 때문에 모든 문을 닫아야 했다. 그런데 모기도 엄청나게 물렸다.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은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모기보다 무서웠던 것은 더위였다. 더워서 잠을 잘 수 없었고, 5시간 자면서 50번은 깬 듯했다. 땀이 너무 흘러 물 위에서 자는 느낌이었다. 얼른 아침이 오기를 바랐다. 결국, 마지막 날에는 밖에서 침낭을 깔고 잤다. 수도, 전기, 화장실 등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도 일주일 동안 머물렀던 이유는 그들이 베풀었던 사랑과 정 때문이었다. 귀한 사신 대접하듯 하는 그들의 배려에 처음에는 죄송할 정도였고, 불편한 마음마저 들었다. 큰돈은 결례될 수 있으므로 작은 성의라도 표시하고자 했으나 그들은 손사래 쳤다. 삼 일째 되는 날 그들에게 민폐가 된 듯해서 일찍 떠나려 했다. 그러나 울고불고 늘어지는 아이들과 더 있으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며칠 더 머물렀다. 결국은 그들의 행동으로 인해 한 가지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아프리카에 오기 전, 봉사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경험상 짧은 시간을 할 바에는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었다. 콜카타에 있을 때는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최소 이 주일은 봉사하려 했다. 그러나 아프리카에 머무는 일정상 긴 시간을 낼 수 없었고, 나에게 혹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활동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배려로 인해 봉사와 나눔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어렵지 않았다. 마음이 당기면 하는 것이었다. 이리저리 재지 말고 그냥 하는 것이었다.


머무는 둘째 날부터 호스트의 친구들과 함께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타국에서 넘어와 부모를 잃고 치료의 개념 자체를 모를 정도로 가난한 이들이 대상자였다. 잔 상처가 곪아 터지거나 다리를 잘라내야 하는 상황이 와도 그들은 치료받을 수 없었다. 돈도 없었고, 갈 곳도 없었다. 우리 중에 아무도 의료 전문 지식 및 의료 자격증이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한 치료밖에 없었으나, 그것만으로도 그들은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세네갈을 떠나고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했다. 아프리카의 각 도시에서 머물렀던 집에는 아이들이 있었고 대부분 상처가 있었다. 그들은 소독약과 붕대조차 사는 것이 부담스러워 치료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간단한 치료를 해주고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것이 전부였다. 내가 그들에게 받은 것을 현지에서 보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방법이었다.    


우리가 가진 전부


아프리카에서 도움받은 친구들에게 한국으로 여행 오라고 이야기한다. 받은 도움만큼 혹은 그 이상을 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려운 것을 알고 있다. 비행기 타는 것 자체가 꿈인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실비아가 말해줬던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인이 관광 가이드를 요청하면 무보수로 임하고 있으며,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도 7개월째 진행 중이다. 일주일의 모든 스케줄에서 가장 우선순위이다. 또한, 다음 준비하는 책의 인세를 아프리카에 후원하는 방향으로 기획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잘 팔려야 한다. 베스트셀러가 되면 다음 책도 몇 부라도 좀 더 팔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단체를 통해 후원금을 보내고 있지는 않다. 내 마음이 끌리지 않아서가 맞는 것 같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적은 돈에 나 자신이 옹졸해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누군가를 도우면서 내 마음이 불편해지고 싶지는 않다. 나는 아직도 여러모로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주변에서 왜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묻는 한글 수업 자원봉사


요즘 들어 들어오고 나가기 Input-Output 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음식이 들어오면 배출해야 하고, 감정을 느끼면 표출해야 한다. 책을 읽어 지식이 들어오면, 글을 써서 지식을 꺼내야 한다. 살아가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면, 다른 이들을 도와야 한다. 덜해도 되고, 더해도 된다. 그것을 선택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얼마나 많이 주느냐보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담느냐가 중요하다.”라는 마더 테레사의 말처럼 무엇을 주거나 도움을 줄 때 돈이 아닌 진심의 가치를 준다면, 분명 나에게 그 이상의 가치가 돌아올 것을 확신한다.





책 <답은 '나'였다>와는 달리 사진 몇 장을 첨가하였습니다.

(기존 책에는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위클리 매거진 목차가 총 12개밖에 안 되기 때문에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맥락을 이해해야 하다 보니 사진 몇 장을 넣는 것이 좀 더 공감하기 쉽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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