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내일 Mar 27. 2019

리스본이 만들어준 기회

편견을 깨야 하는 이유

편견이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말한다. 직접 경험한 것에 대한 생각과 트라우마가 발전하여 생기기도 하지만, TV, 인터넷, 주변 이야기 등 간접경험을 통해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편견을 깨면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짐으로써 시대를 앞서가거나,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준다는 것을 대부분 알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편견을 깨려고 노력하지만, “편견을 깨는 것보다 원자를 깨는 게 더 쉽다.”라는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깨면 좋은 것을 알지만 쉽지 않으니 포기해버리거나 그냥 살아가는 것이다. 꼭 깨야만 하는 이유를 스스로 느끼지 못하면 꼭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래도 어떻게 깨야 할까 궁금하다면 내가 아는 방법은 직접 부딪히는 것뿐이다. 이로 인해 또 다른 편견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는 것 같다.    


로마와 런던은 수많은 여행자가 방문하는 만큼 매력 있는 도시지만, 나에게는 사람 많고, 비싸고, 더럽고, 소매치기가 많다는 이미지가 더 컸으므로 원래 계획에는 없었다. 나보다 먼저 여행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보지도 못한 곳에 대한 편견이 미리 만들어져 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유럽까지 왔는데’라는 생각에 두 도시를 방문했다. 역시나 사람은 많았고 거리는 더러웠다. 모든 것이 비쌌고 소매치기도 많았다. 그러나 콜로세움 을 비롯한 수많은 고대 유적지는 생각 이상으로 웅장하고 근사했다. 로마에서 비싸기만 한 젤라토를 왜 먹는지도 알게 되었다. 정말 맛있었다. 비 오는 날의 런던은 다른 도시에서 비 올 때와는 다른 운치가 있었고, 인생 뮤지컬이 된 레미제라블을 만나기도 했다. 또한, 유명 도시이다 보니 다른 어떤 곳보다 다양한 국가의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즐겁게 지냈다. 누군가 “어땠어?”라고 물으면 좋았다고 답할 것이고, “가야 할까?”라고 물어본다면 가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고 나서야 일차원적인 편협한 생각은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직접 경험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직접 부딪히며 깨는 동안에도 여러 요인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다른 편견이 생길 수 있다. 처음에 말했듯이, 직접보다는 누군가로부터 정보를 얻게 되는 간접경험으로 인해 편견이 더 많이 생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정보의 홍수라고 불리는 요즘 시대에는 만들어지는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최근 이슈화되는 가짜 뉴스 같은 경우,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는 정보가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있다. 나 같은 경우에도 “에이, 이런 걸 누가 믿어.”라고 했던 것이 진짜가 되었고, “이거, 진짜야?” 했던 것이 거짓이었다. 어떻게든 진실 유무를 파악하려고 노력하면 알 수 도 있지만, 꼭 해야 할 이유가 없었으므로 자연스레 무언가에 대한 편견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빈곤 포르노는 빈곤 혹은 질병으로 곤경에 처한 이들의 상황을 자극적으로 묘사해 동정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오래전부터 구호단체에서 쓰이고 있는 마케팅 방법의 하나이며, TV 광고 및 지하철 모금 행사에는 내일이라도 생을 마감할 것 같은 비슷한 모습의 아이들이 전면에 나온다. 분명히 개발도상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기에 거짓은 아니며, 해야 하는 이유도 존재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기부금 모금과 같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인권침해와 더불어 사진과 영상으로 보이는 모습이 그 나라의 전부라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세네갈 수도인 다카르에 도착했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알고 있는 세네갈은 아프리카의 다른 국가와 다르지 않은 가난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물가가 높아서 놀랐다. 외국인의 안전 및 위생상 가격 차이가 다른 것을 고려하더라도 생활 물가는 부산과 크게 다르지 않게 느껴졌다. 분명, 수도에 한정된 것이긴 했다. 하지만 기존에 인지하고 있던 것과는 많이 다른 것도 사실이었다.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가난과 질병의 프레임을 벗어나니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중산층 이하 삶의 어려움이 더 깊숙이 느껴졌으나, 반대로 사업할 수 있는 아이템도 보이기 시작했다. 시장조사를 했을 때는 생각보다 많은 기회가 존재하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가장 중요했던 것은 사람을 우위로 따질 수는 없지만, 그들은 내가 도와줘야 하는 수동자로서의 처지가 아닌 동등자의 상황에서 바라보고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Abidjan


하루는 머물고 있던 호스트와 앞서 말한 아프리카의 현실, 편견 등과 더불어 사진 찍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에게 “이슬람 국가 특성상 영혼이 빠져나간다고 생각해서 사진을 안 찍는 건 존중하는데, 왜 찍으려면 항상 돈을 달라고 하는지 모르겠어.”란 질문을 했는데, 그가 내놓은 답변은 또 다른 편견을 벗겨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전의 나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관점이었다.    


“너희 외국인들은 우리의 힘들고 안 좋은 모습만 사진 찍으려고 해. 유명한 건축물보다 가난으로 허덕이며 내일이라도 굶어 죽을 것 같은 사람을 찍기에 바쁘지. 누군가는 네가 말한 것처럼 돈을 요구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달려들어 사진 한 장에 목을 매지만, 우리는 기분이 좋지 않아. 적어도 나와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해. 예전에 프랑스 기자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했더니, 이렇게 찍어야 사람들의 동정심이 생기고 모금을 잘할 수 있다고 했어. 그래야 우리를 도울 수 있다고 했어. 그런데 가끔 그들은 우리가 인간임을 잊어버리는 것 같아. 가난하다고 수치심이 없는 것은 아니거든. 사실, 모금액이 우리한테 전부 오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부터 사진 찍는 것을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인물 사진을 찍을 때면 양해를 구하려고 노력했고, 카메라 줌을 통해 멀리서 몰래 찍는 경우는 최대한 자제했다. 나는 그의 말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 내가 그럴 자격은 없어 보였다. 그들을 찍은 사진들로 돈을 벌 목적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이득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서로 다를 것 없는 같은 인간이었다.     


이처럼 상대를 향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깨는 순간, 좀 더 넓고 뚜렷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친구 말을 빌리자면 라식수술을 하고 나서 며칠 뒤 세상을 바라볼 때라고 했다. 안경만 쓰고 있는 나로서는 어떤 기분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예상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면서 꼭 해야 할 것은 ‘나’에 대한 편견을 인지하고 깨는 것이다. 오랜 시간 축적해온 실패와 두려움이 만들어 낸 ‘나는 할 수 없어.’라는 두텁고 단단한 편견을 말한다. 이것은 자신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상대에 대한 편견을 깨기보다 훨씬 어렵지만, 생각 외로 단순하게 깨지기도 한다.    


포르투갈 수도인 리스본에 머물 때였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가는 길에 로시오 광장에서 사람들이 댄스 공연을 하고 있었다. 평소처럼 철저한 관람자로서 공연을 즐기고 있었는데, 공연자들이 다음 공연을 위해 나를 포함해 몇 명의 사람에게 잠시 도와달라고 했다. 한 커플이 프러포즈하는 시간이었고, 그들 옆에서 간단히 몸을 흔들며(?) 손뼉 치는 역할을 맡았다. 프러포즈 공연은 성황리에 끝이 났지만, 그들은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모여 있는 500여 명 중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던 나는 그들에게 최고의 먹잇감이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계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계획임이 확실했다. 심장이 두근거림을 넘어 터질 것 같았다. ‘어떻게 티 나지 않게 대충 마무리할 수 있을까?’란 생각과 더불어 이 기회에 내가 가지고 있는 ‘나는 이렇게 많은 대중 앞에서 무언가를 뽐내지 못한다.’라는 철저한 나만의 편견을 깨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나는 나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부끄럽고 싫었다. 정확히는 내가 잘하는 것보다는 잘하지 못할 때 벌어지는 다음 상황을 생각하기 싫은 것이었다. 가끔 깰 기회가 있었지만, 강철보다 두껍고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하여 부서지지 않았다.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던 중에 선글라스와 검은 벙거지를 건네받았다. 왠지 전장에 나가기 전 최상급 무기를 받은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나’를 깰 수 있을 것 같았다.


뒤편에 있는 스테레오 장비에서 강남스타일이 흘러나왔다. 친한 친구들과 술 마시고 나서 노래방에서 춰본 기억밖에 없었으나, 상관없었다. 하늘이 내려준 것이 아닌 리스본이 만들어준 기회였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관객들은 우렁찬 박수와 환호성을 보냈다. 음악에 몸을 맡겼고, 4분은 금방 흘러갔다. 음악은 끝이 났지만, 관객들의 환호는 끝나지 않았다. 짜릿함을 넘어 뭉클한 감정마저 들었다. 그들에 대한 고마움과 내 안에 있던 두껍고 단단한 벽 하나를 부쉈다는 스스로의 만족감이었다. 춤이 엉망진창이었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완벽한 순간이었다. 이날을 계기로 아프리카에서 음악이 흘러나올 때마다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신나게 몸을 흔들 수 있었다. 현지인들과 빠르게 친해질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안타깝게도 춤 실력은 늘지 않았다.    



상대와 나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것은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필수에 가까운 행위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어려운 일이지만, 쉬운 일이었다면 필수라는 말조차 붙이지 않았을 것이다. ‘틀림’과 ‘다름’은 전혀 다른 단어이기 때문이다. 내가 1개의 ‘다름’을 인정할 동안 몇 개의 ‘틀림’이 생길지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어둠으로 둘러싸인 1평 남짓한 방의 문을 열어 그 좁은 방이 세상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는 그 순간을 얼핏 보았기에 계속해서 ‘다름’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책 <답은 '나'였다>와는 달리 사진 몇 장을 첨가하였습니다.

(기존 책에는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위클리 매거진 목차가 총 12개밖에 안 되기 때문에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맥락을 이해해야 하다 보니 사진 몇 장을 넣는 것이 좀 더 공감하기 쉽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이전 06화 배움의 끝은 없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