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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내일 Feb 27. 2019

사람이 싫은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

어쩌면 당신에게

시에라리온의 도시 보는 수도인 프리타운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것을 제외하고는 여행객의 눈길을 끌 만한 무언가는 없었다. 하지만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도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이상理想으로 생각했던 한 가족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독일인인 얀은 아내 몰리를 따라 시에라리온에서 3년째 의료봉사를 하고 있었고, 그의 아이들은 독일보다 모든 것이 불편하고 위험한 이곳이 더 좋다고 하는 이상한 가족이었다. 그의 집 마당에는 개 5마리, 닭 3마리, 돼지 1마리를 키웠고 아이들을 위해 만든 천연 놀이터가 있었다. 집안에는 갓 구운 빵 냄새가 곳곳에 배겨 있어 가끔 돼지가 영역을 침범하려고도 했다. 저녁 식사를 시작할 때면 얀은 돼지, 몰리는 오리 소리를 냈고, 유모와 아이들 선생님은 화음을 넣었다. 동물농장 멜로디에 아이들의 주기도문이 얹히자 완벽한 노래가 되었다. 식사하면서 어른들은 일과를 공유하면서도 아이들이 가볍게 던지는 말조차 흘려듣지 않았으며,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식사를 마친 후 얀은 진지한 눈빛으로 가장 성스러운 의식이 남아 있다고 했다. 이미 거실에는 의식이 준비된 듯이 각자 원래 자기의 자리인 듯한 곳을 차지한 뒤였다. 불이 꺼지고 벽에 설치된 스크린에는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오프닝 영상이 비쳤다. 몰리는 “Kei, 진심으로 환영해요.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이 특별한 추억이 되었으면 해요.”라는 말과 함께 와인 한 잔을 건넸다. 그녀의 한 마디와 함께 의식은 시작되었고, 시리즈 3편을 연달아 보고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는 그의 말처럼 신성한 의식을 받은 듯이 몸과 마음은 상쾌해져 있었다. 여행하며 처음 느낀 상쾌함이었다. 이들과 가능한 한 오래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눈에 반하다는 말은 이성에게만 사용되는 말이 아니었다. 얀에게 진지하게 말을 건넸다.     


“얀, 당신들과 함께하고 싶어요. 전문기술은 없지만, 세네갈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잠시 했어요. 작은 도움이라도 되고 싶어요.”

“고마워요. 그런데 일단 마음만 받을게요. 다음 달에 독일로 건너가야 해요. 1년 동안 독일에서 머문 다음에 이곳으로 돌아올지, 아니면 에티오피아로 갈지 결정할 거예요. 그때도 당신의 마음이 같다면 말해줘요. 몰리랑 다시 이야기해볼게요.”    


세네갈에서 친구들과 의료 봉사하기 전까지 아프리카에서 자원봉사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봉사보다 이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내 시간을 줘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다. 비록 정중한 거절을 받았지만, 머무는 동안 아프리카의 삶과 봉사에 대한 생각을 나누었다. 서로 더 나은 방향은 무엇인지 찾으려고 노력한 것에 만족했다.     



나뿐만 아니라 세계 일주를 다녀온 사람들에게 여행 후 무엇이 남았는지 물어본다. 각자의 대답이 있겠지만, 대부분은 “사람” 이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얼마 전에 지인에게 위와 같은 대답을 했더니 그는 “15개월이라는 시간과 수천만 원을 들인 노력의 답이 사람인 거야? 한국에도 괜찮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고 말했다. 나도 거짓말은 아니고, 그도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생각의 차이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은 서로 공감하고 있었다.    


사람을 표현하는 인간은 사람 人 사이 間를 의미한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태어나는 순간 가족과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태어나자마자 사막에 버려지거나, 천지개벽 정도의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함께’ 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살아간다. 인간은 나약한 존재이다. 독수리처럼 날개가 없고, 사자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도 없다. 기나긴 시간 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생존이라는 목표로 함께 뭉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즘 시대에는 ‘함께’보다 ‘혼자’ 라는 단어를 쓰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함께하는 삶에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지쳐 버린 것이다. 누군가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고, 자신의 기분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 이상한 취급을 받는다. 몸도 마음도 피곤해진다.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의문이 든다. 그래서 자의든 타의든 혼자의 삶을 살려는 사람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혼밥, 혼술, 비혼이 사회이슈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바뀌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가 아닐까 한다.    


나에게 인생 드라마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의 아저씨>는 현재의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수년 째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는 지인이 “나보다 더한 놈들 많네.”라고 할 정도로 방영 초반에는 우울함이 가득한 사람들 투성이었다. 그들은 사회에 치여, 극단적인 사건에 치여, 자신의 꿈에 치여 삶에 지쳐버렸다. 그러나 대부분 원인은 사람에서 시작되었다. 사람이 사는 사회에 치여, 사람 때문에 극단적인 사건에 치여, 사람 때문에 자신의 꿈에 치인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술로써 공허함을 이겨내거나 허공에 내뱉는 짜증이 전부였다.


그러나 회가 지날수록 드라마는 사람으로 문제 되는 것은 사람으로 풀 수 있음을 상기시켰다. 혼자 먹는 밥보다는 함께 먹는 것이 낫고, 혼자 먹는 술은 쓰지만, 함께 먹는 술은 달았다. 혼자 내뱉는 ‘말’이 아닌 상대가 있어야 ‘대화’가 되었다. 사람에게 패인 깊은 상처는 사람이라는 약으로 치유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한 연구에 의하면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우울증이 생길 확률이 6배가 높고, 영양실조에 걸릴 확률이 2배 높다고 한다. 혼자 운동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노쇠화가 3배 빨리 온다고 한다. 건강과 관련된 측면보다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균형적인 측면에서이다. 내가 부족한 것을 누군가로부터 얻게 되고, 가진 것을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다. 또한,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건강과 균형의 두 가지 이유는 꼭 함께해야만 하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러나 마지막 이유인 ‘혼자 살려 노력해도 어떻게든 사람과는 인연을 가지며 살게 된다.’는 꼭 함께할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이왕’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거 ‘어떻게’ 해야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인간관계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어떻게’에 가장 적합한 단어라고 생각하며, 좋고 나쁨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앞서 언급한 사람이란 존재에 대해 피곤해지는 가장 일반적인 상황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노력 안 할 수도 없다. 성공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가지지 않더라도 인간관계가 좋으면 많은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된다고 되묻는다면 “모든 길이 꼭 평평하지는 않더라.”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관계를 잘하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경청하고, 먼저 관심을 두고, 먼저 다가가고, 이야기에 공감하고, 칭찬하고, 웃음을 보내고, 배려하고, 너그럽게 용서하면 된다.


이것 말고도 자신만의 비법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글만 읽고 있는데도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내가 적고도 저것을 누가 다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직장 생활할 때는 저렇게 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스트레스 덜 받으면서 인간관계를 잘할 방법은 없을까? 내가 아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았고, 다른 한 가지는 여행을 하며 알게 되었다.


한 가지는 돈이다. 돈이 많으면 사람이 모였고, 돈을 쓰면 더 모였다. 참 속물처럼 들리겠지만, 내가 본 바로는 그랬다. 다음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럼, 나는 안 되겠네.’ 일 것이다. 나도 첫 번째 조건이 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한 가지 방법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틀리다’가 아닌 ‘다르다’로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다.


사람은 개인 인격체라는 말처럼 모든 사람은 외모부터 성격까지 다 다르다. 비슷한 사람은 있어도 같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 자신과 ‘다른’ 사람을 ‘틀린’ 사람으로 보면, 고정관념과 편견이 생긴다. 사람에게도 빨리 지치게 된다. 그래서 외국인과 관계 맺는 것이 더 편한 것일 수도 있다. 이미 그들과는 다름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 또한 쉽지는 않다. 그런데 첫 번째보다는 훨씬 쉽지 않을까 한다. 다름을 이해하는 순간 사람과의 소통이 쉬워지고, 재밌어지기까지 한다. 돈과 시간이 엄청나게 필요하지도 않다. 살면서 한 번쯤 해볼 만한 행동이며, 사람과 함께 잘 살아가는 방법이지 않을까 한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나의 시간을 나눠줘도 아깝지 않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가치를 공유하는 느낌을 겪어본 사람은 홀리듯이 사람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그전에 생각해야 한다.  

  

나는 누군가의 귀중한 시간을 나눠 받아도 괜찮은 사람인가?

나는 그럴 준비가 된 사람인가?    


‘그렇다’고 하면 좋겠지만, ‘아니다’ 해도 상관없다.

나도 아직은 ‘그렇다’로 향해가는 ‘아니다’인 평범한 사람일 뿐이다.       




책 <답은 '나'였다>와는 달리 사진 몇 장을 첨가하였습니다.

(기존 책에는 사진이 한 장도 없습니다.)

위클리 매거진 목차가 총 12개밖에 안 되기 때문에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맥락을 이해해야 하다 보니 사진 몇 장을 넣는 것이 좀 더 공감하기 쉽다는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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