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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빵 Dec 03. 2022

어쩌다 사모

처음, 프롤로그



그와 10년 동안 연애했습니다. 스무 살에 만나서 서른 살까지요. 중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남자 가수 몇 명과 남자 선생님 몇 분을 좋아해 봤을 뿐입니다. 사랑, 연애, 결혼.. 내 생애에 있을 것 같지가 않았어요. 누가 나를 좋아할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스무 살부터 연애라니. 앞뒤가 좀 다른 것 같기는 합니다.    


우리 엄마는 나랑 교회 전도사님 사이에 뭔가 있다는 걸 알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둘 사이를 막으려고 했습니다. 엄마의 반대는 ‘싫다, 안 된다’는 표현보다 훨씬 강력했습니다. ‘끔찍하다. 혐오스럽다.’ 같은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몰래 연애를 했습니다. 10년 동안 수많은 거짓말을 해야 했고, 형벌 같은 죄책감에 시달렸어요. 나중에는 정말 정신병 걸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가 배우자감으로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스무 살의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착한 사람, 바른 사람인 것 같았어요.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그의 마음을 저버리고 헤어진다 생각하면 마음이 금방 지옥으로 떨어졌습니다.      


연애가 길어질수록, 거짓말 실력이 일취월장했습니다. 엄마에게 걸리면 우리 집이 전쟁터가 될 게 뻔하고 반대를 무릅쓸 자신은 없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두 집 살림 같은 삶에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가난한 남자(아빠)를 만나 결혼한 엄마는 가난을 끔찍이 싫어했습니다. 특히 시댁이 가난한 것을요. 남편의 부모님은 작은 개척교회의 목사님, 사모님이십니다. 그에게 가면, 딸 인생이 가시밭 지뢰밭 될 거라 생각하셨지요. 혹시 아직 그를 만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될 때마다, ‘너, 절대 안 된다!’ 가난의 고통을 나에게 세뇌시키셨습니다. 무슨 말씀이냐, 안 만나니까 걱정 말라고 잡아뗄 수 밖에요.


거짓말보다 괴로웠던 것은, 도망치고 싶었던 마음이었습니다. 엄마 말처럼 될 것 같아서 솔직히 겁이 많이 났어요. 우리 친정 부모님은 끊임없이 싸우는 부부였습니다. 자라는 내내 부모님의 불화를 지켜본 나는, 결혼이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위에 결혼해서 행복하다는 분들도 본 적이 없었어요. 게다가 그는 전도사입니다. 가난한 삶은 10000% 예약된 겁니다. 연애하는 지금은 이렇게 좋아도, 결혼하면 불행해질 것 같았습니다. 결혼하지 않는 것보다 더 슬프고 괴로울 것 같았어요. 그는 나와 헤어질지언정 사역을 그만 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를 계속 붙잡고 있다가 결혼하게 될까 봐 두려웠습니다. 감당할 자신도 없고, 무엇보다 사모가 되고 싶지 않았어요.       


그는 나에게 보석 같은 존재였습니다. 곁에 있으면 내가 빛나고 예뻐졌습니다. 나를 아껴주는 그 마음을 놓아버릴 길이 없었습니다. 헤어지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10년이란 세월 동안 거짓과 불안을 하늘 높이 쌓았습니다.     


그러다 마침내는 그와 결혼을 합니다. 동시에 강도사님 사모님이 돼요. 아, 진짜로 사모가 돼버렸습니다. 올해로 결혼 17년 차. 아이는 셋이고, 5년 째 홈스쿨링 중입니다. 멋모르던 스무 살 때와 무려 담임목사 사모가 된 지금의 마음이 하나도 다르지가 않습니다. 남편도 그대로입니다. 아이들이 태어나 자라고 있고, 조금 나이 들어 보일 뿐입니다. 껄껄.     


목회자가 되려면 신학대학원을 졸업해야 합니다. 성경이나 신학을 주로 공부하겠지만, 목회자로서의 소양과 자질에 관한 것들도 배웁니다. 그런데, 사모들은 ‘사모로 사는 법’ ‘사모의 길’ 이런 것을 배울 데가 없어요. 사모님이 쓰신 책들도 많지 않습니다. 나서서 강의하시는 분도 없습니다. 나를 포함한 이 땅의 많은 사모님들이 맨땅에 헤딩, 고군분투, 딱 주님께만 매달려서 버티는 거예요. 마땅히 그래야 하지만, 가끔 서글플 때도 있습니다. 속 얘기를 시원스레 펼쳐놓을 데가 없거든요.

     

선배 사모님들이 책을 안 쓰시는 이유가 뭘까요. 아마도 좋은 얘기를 하면 자기 자랑이 되고, 안 좋은 얘기를 하면 불평이 될까 봐 그런 게 아닐까. 마음대로 추측해봅니다.


사실은 내가 그렇습니다. 사모님들하고 신나게 수다를 떨고 싶어도 뇌에 깊이 박힌 ‘사모 필터, 조심 필터’에 거르고 나면 할 말도 쓸 말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 필터를 과감히 제거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더불어, 지금껏 지내게 하신 은혜를 감사로 헤아려 보려고 해요.


반갑습니다, 사모님들. 축복합니다. 위로합니다.

오늘도 주님 이름으로 수고 많으십니다.                

                                                



좋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쨈빵 사모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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