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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빵 Apr 12. 2021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다

남편의 언어, 나의 언어 1




 우리는 안 싸우는 부부다. 연애 10년 결혼 16년 동안, 한 번도 네가 맞네 내가 맞네 아웅다웅해본 적이 없다. 아이들이 "우리 아빠 엄마는 부부싸움 한 번도 한 적 없어요."하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 말이 (공식적으로) 맞다.


 우리의 비공식 '뿌의 세계' 또한 조용하다. 부부끼리 서로 힘든 얘기를 안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짐작한다. 육아하면서 힘든 점을 남편에게 얘기하면, 그는 집중을 잘 못 했다. 남편이 건성으로 들으니, 얘기할 의미가 없어졌다. 그는 힘든 일을 나에게 시시콜콜 얘기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는 듯했다. 나도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정말 힘들수록 말을 아꼈다. 남편도 나처럼 힘들 거라 짐작하면서.

 하지만 나는 참다못해 여러 번 곪아 터졌다. 남녀의 차이인지 성격의 차이인지 (믿음의 차이인지) 모르겠다. 하나님께 내놓을 문제가 있고 부부끼리 해결할 문제가 있는데, 우리가 이 부분에 미숙했던 것 같다.


 참다 터지기를 반복하는 내가 좀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참지 않으면 터질 일이 없을 텐데, 방법이 뭘까. 남편은 최선을 다하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불만이 있으니 개선이 필요한 상태였다. 눈에 보이게 다투지는 않지만, 조용한 갈등은 크고 작게 있다는.


 남편에 대한 불만 중 하나는, 그가 나의 수고를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 '많이 힘드니? 나도 힘들다. 원래 사는 건, 다 힘들다' 이런 식이었다. 그의 말이 맞지만, 그건 너무 메마르고 황량하지 않은가.

 나는 '사랑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잘하고 있다' 이런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강요하는 것도 우습고 구걸하는 건 더 우습다. 게다가 나 역시 그런 말을 하는 게 너무 어색하다. 그래도 계속 이렇게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남편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이 듣고 싶을 때면, 진심을 담아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사랑합니다


답이 왔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남편에게 하면서, 묘하게 뭉클했다. 마치 사랑한다는 말을 내가 듣는 기분. 남편은 항상 단답형으로 일관했지만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말했으니 됐고, 기분 좋으니 됐다.



살 수록 마음을 알아주는 사이, 부부



 

 인생은 짧고, 한 치 앞을 모른다. 아침에 출근한 남편을 저녁에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래서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면, 곧바로 "여보, ㅇㅇ해줘서 고마워요." 하고 메시지를 보낸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은 없어야지' 하는 것이다.


 '그래' 하고 용건만 간단히 한 사람은, 후회하지 않을까? 말 한마디가 뭐라고, 아끼고 안 해준 것이 미안하지 않을까?

 '흥!'하고 고소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매일 아무 일 없지만). 작은 일에도 구구절절 감사하고 사랑하고 미안한 게 백번 낫지!


 남편이 나의 달달한 고백을 일방적으로 받아먹은지 1년이 훌쩍 넘어서야, 정답 메시지가 날아왔다.


 나도 당신 사랑합니다


 아, 기분 좋다. 여보 고마워요!



 남편에게 고마울 때, 미안할 때, 그 사람이 멋져 보일 때마다 지체 없이 메시지를 보낸다. 나는 평소 빈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남편의 어떤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다. 내 진심을 미루지 않고 표현하는 것만으로 만족했고 기뻤다.


  '그런 걸 말로 해야 알아?' 하면서, 남편은 오글거리는 말들을 애써 모른 척했었다. 쑥스럽기도 했을 것이다. 정말 고마워서 정말 미안해서 하는 말들이 쌓여, 결국 그를 움직였다.

 이제는 대담하게 눈을 마주치고 남편에게 직진 멘트도 한다.

 "여보, 아까는 내가 미안했어."

 "응 그래. 그러니까 똑바로 잘해." (히죽히죽)

 애초에 툭툭 던져놓는 말투 사용자라, 이 정도면 말랑말랑 흐물흐물이다. '미안하긴 뭘. 나는 아무렇지 않아. 미안하다고 말해줘서 고마워.'라는 뜻이다.

 



 이제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는 우리 부부에게 전혀 어려운 말이 아니다. 즉심즉톡(어떤 마음이 들면, 즉시 톡 한다)이 생활화되었다. 연륜의 3년 차. 혹시 잘 자라고 인사하고, 아침에 눈을 못 뜨는 사람이 생긴 대도 다 말했다는 위로는 남지 않을까.

 마음을 (바로) 말하는 것이 이렇게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줄은 몰랐다. 우리는 서로가  많이 소중해졌다. 진심을 살피고 아껴주는 사이가 됐다. 역시 포기 않길 잘했어. (나는 원래 쫄보 수동태 인간이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용감해진다)

 명품백, 명품시계 주고받지 않아도 얼마든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것 없어도, 진심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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