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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쨈빵 Apr 14. 2021

그는 쓰담쓰담을 원한다

남편의 언어, 나의 언어 2





 세 아이들과 마치 한 몸처럼 살고 있는 나와 달리, 남편은 눈뜨면 나가서 애들이 잠들고 나면 집에 들어왔다. 여느 대한민국 아빠들처럼. 

 나는 과부도 아닌데, 세 아이를 혼자 키우다시피 했다. 정신력 집중력 아무리 동원해봐야 늘 버겁기만 한 일상이었다. 아이들 이렇게 예쁜 시기, 금방 지나간다 말해줘도 못 알아듣는 남편이 답답했다. 선택과 집중이 분명한 트리플 B형 남자다. 그는 자는 시간 빼고는 교회에 있었다. 각자의 매일을 살아내느라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칠 여유도 마음도 없었다.

 

 바깥일 밖에 모르는 바깥양반이 미워서, 남편과 나 사이에 아이들을 두려는 못된 마음도 들었다. 우리와 늘 따로 노는 남편을 이렇게 쭉 따돌리고 싶은 나쁜 생각도 해봤다. 우리 넷이서만 똘똘.

 그러면서도 남편의 따뜻한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니, 나도 내 속을 알 수가 없다. 이거 혹시... 애정결핍? 

 나는 가끔 입도 내밀고 그러지만, 아무 소리 없는 그는 괜찮은 걸까? 그는 나에게 어떤 애정표현을 원할까. 아니, 나는 그에게 어떤 애정표현을 해줄 수 있을까?


 아이들과 온종일 살 붙이고 있느라, 그의 등을 두드려주고 그를 안아주고 그와 손을 마주 잡을 겨를이 없었다. 그에게 '그런 것'이 간절히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카페에 단둘이 마주 앉은 적이 언제인가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빠 엄마가 안아주고 씻겨주고 예쁘다고 계속 만져준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갈수록 (스스로   있는 일들이 많아질수록) 부모가 쓰다듬어줄 일이 줄어든다. 그러다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의 몸을  전처럼 만질 수가 없다.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갈 준비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부모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결정할  있는  하나의 성숙한 어른이 돼간다.  과정에서 자연스레 부모와의 스킨십이 줄어든다. 그러다가 각자의 사랑을 찾아 훨훨 날아간다. 이제 자기 짝과  태어난 아이들을 안고 쓰다듬으면서 사랑 만족, 편안함을 느낀다.  생애에 걸쳐 우리에겐 스킨십이 필요하다.

 


 남편 역시 나처럼 애정결핍 상태였으리라. 늘 헤롱 거리는 나에게 불평 한마디 못 하고. ‘노총각처럼 사니 혼자 편해 좋겠다’ 얄미웠는데, 어쩌면 외로웠겠구나. 사랑하라고 주신 남편을 내가 너무 나 몰라라 했다. 이해할 마음 없이, 오해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출산-육아는 엄청나게 고된 일이고, 부부는 그 기간을 어떻게든 견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어린 (혼자 화장실 못 가는) 아기를 키우는 엄마 아빠들이여 힘내소서. 지금은 죽을 것 같아도, 아이들은 정말 금세 커버린답니다.


 다섯 식구가 차를 타고 외출할 때면, 잠시 신호에 걸린 틈을 타 그에게 얼른 손을 내밀면서 "우리 손 잡자" 그랬다. 출근할 때, "다녀올게."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면, "잠깐만!" 하면서 얼른 뛰어가 그를 꼭 안아주었다. 그가 퇴근해 들어오면 "와~ 우리 남편 집에 왔다!" 하면서 웃는 얼굴로 달려가 그를 부둥켜안고 수고했다며 등을 두드려주었다. (넓지 않은 집이지만 자꾸 뛰어가고 달려가는 것은, 드라마틱한 효과를 위함이다.)


 남편도 아이들도 처음에는 '왜 이러지? 또는 왜 저러지?' 하며 어리둥절했다. 그러고 있는 나도 속으로 어색했다. 그저 사랑하는 마음으로 노력했다. 그와 나와 우리를 위한 것이고, 힘든 일도 아니다.


 이렇게 한 달쯤 지나니까 웃기다.

 남편은 현관에서 "나 간다."를 우렁차게 외친 후, 안 나가고 기다린다. 내가 오기를. 후훗.

  저녁에는 현관문을 열고, "나 왔어." 하면서 최대한 천천히 들어온다. 웃겨.

 어느 땐 들어오면서 "이놈들, 대장님 오셨다." 소리친다. 그럼 우리 일당들이 "와~!" 하고 뛰쳐나가 우르르 안긴다.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다.






 이제는 우리가 처음 만났던 스무 살(나), 스물다섯 살(남편) 시절만큼 서로에게 집중할 수 없다. 26년이 이렇게 금방 지날 줄이야.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의 얼굴에서, 그 시절 앳되고 예쁘장했던 남자 친구를 본다. 그리고 이제 나이가 든 내 눈에는 여전히 잘생긴 그를 본다. 어딘가 안 됐기도 하고, 장하기도 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부로서 허락하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아까운 마음으로, 이 사람 최대한 안아줘야지. 손 꼭 잡아줘야지. 잘하고 있다고 토닥여줘야지. 자꾸만 그런다.





이미지 출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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