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클럽 4기 시작을 앞두고
이 죽일놈의 병.
또 시작됐다.
기대와 설렘이 앞선다.
내 고질병이다.
가만히 못 있는 병.
걱정보다는 일단 잘 될 것 같다고 믿는 병.
출사표 던지고 나면 흥분하는 병.
다음 주부터 시작되는 에세이클럽 4기 이야기다.
지난 가을 에세이 3기가 끝나고 바로 4기를 시작하자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블로그마을'을 앞두고 있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11월부터 이미 블로그마을 준비위원회를 시작할 계획이었고, 일단 불붙으면 끌래야 끌 수도 없는 블로그마을 프로젝트였기에, 다른 계획을 병행할 수 없음은 분명했다. 그런 연유로 1월중에 <안녕, 나의 에세이 4기>를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블로그마을 이후 혹독했던 이번 감기에 몸도 마음도 축나자 '아 이 상태로 무얼 하겠나' 두려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바이러스는 물러갔고 나의 몸은 새순이 돋듯 회복되고, 마음도 정신도 다시 맑아지고 있었다. 찬바람을 맞으며 다시 걷기 시작하고, 스쿼트도 열심히 한다. 웃고 떠들며 어느새 마음 속에서 나는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독이다.
중독.
내겐 에세이클럽이 중독이다.
1기. 2기. 3기.
1기는 '뜨겁고 열정적인'
2기는 '짙고 깊고 푸른'
3기는 '오묘하고 신비한'
에세이클럽 수업 커리큘럼 중에 '형용사로 글쓰기'가 있다. 그때 내가 찾아낸 각 기수의 형용사였는데 그때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했던 표현이 지금 생각하니 참 잘도 맞아떨어진다 싶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색깔과 모양이 만나서 함께 글쓰는 모임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참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마다 독특한 각자의 색깔이 있든, 그들의 글에도 독특한 색감과 고유한 빛깔이 흘러나온다. 처음에는 뻘쭘했던 분위기가 한주 한주 시간이 지날수록 부드러워지고 자신을 자연스레 드러내게 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글과 글이 만나서 그들만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느낌이 내겐 바로 저 형용사들이었다.
1기에서 2기로, 2기에서 3기로, 그리고 3기에서 4기로 오면서 점점 쓸데없는 힘은 빠지고, 내실은 단단해짐을 느낀다. 무엇을 보아야 할지,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도 조금씩 선명해진다. 무엇보다, 내가 강사로서 구심점에 있어야 함은 분명하지만 이 여정은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깨닫는다. 작년 1월 에세이 1기를 시작한 이후 1년이 지나 내가 도달한 결론은 바로 이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 특히 에세이를 쓴다는 것.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에 '함께'가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
세상에 수없이 많은 글쓰기 강의가 있다. (내가 시작하기 전엔 몰랐다.) 블로그에만 해도 수도 없는 글쓰기 강의, 책쓰기 강의가 있더라. 글쓰기에 쪽집게 수업이란 있을 수 없지만 그래도 어떤 수업이든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계속 글을 써야 하기에 실력이 늘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모든 수업과 모든 도전이 의미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혼자 글을 쓴다는 건 그만큼 어렵고도 힘든 길이기에.
더더군다나 나는 쪽집게 강사도 아니고, 베스트셀러 작가도 아니다. 그래서 나의 이름을 건 '안녕, 나의 에세이'와 함께 '반드시'가 붙는 어떤 목표를 정하거나 도달하게 해줄 수도 없다. 글쓰기 실력이 적어도 20프로는 올라갈 것이다. 이런 슬로건도 내걸 수 없다. 그건 내가 해주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쓰다보면 저절로 도달하게 될 지점이므로.
하지만 나만이 가진 장점. 나의 이름을 건 수업만이 가진 색깔을 이제 나는 조금씩 알 것 같다.
-그들이 쓰고자 하는 글. 세상에 꺼내고자 하는 이야기를 찾는 과정을 '함께' 걸어간다.
-여덟 명의 멤버들 각자의 색깔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다.
- ‘더 좋은 글' '더 잘 쓰는 글'이 아니라 '자신의 글'을 쓰도록 격려한다.
- 여덟 명의 멤버들이 서로의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독려한다.
- 남의 글을 보지 않고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과정이 될 수 있기를 기다린다.
여기에 이제는 벌써 1.2.3기로 쌓인 선배 멘토들 또한 이 과정에 동참하여 그들의 글을 '함께' 읽고 '함께' 공감해줄 준비를 마쳤다.
어제 나태주 시인님의 강의를 유튜브로 듣다가 한 마디 말씀에 꽂혔다.
'글을 잘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라는 질문에
'잘 쓰려고 하지 마라'
'그냥 너의 글을 써라'
정말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대목이었다.
특히나 에세이라는 것은 ' 나'를 드러내는 글이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 글이다. 남을 보면서 잘 쓰려고 버둥대면 그 글에 나의 진솔함이 담기겠는가. 나의 진짜 색깔이 담기겠는가. 나는 '나'의 글을 쓴다. 세상이 원하는 글. 베스트셀러가 될 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글. 그건 나중에 생각하자. 이건 <안녕, 나의 에세이>다.
내 안의 글.
나의 글을 쓰자.
그래서 나는 나의 에세이 클럽에서 용기와, 친밀함과, 애정과, 그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는 누군가의 마음. 이런 것들을 주고 싶다.
이런 것들의 가치가 글쓰기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이 에세이클럽에는 절대 발을 디디면 안될 것이다.
'반드시 출판사 눈에 띄는 글쓰기 소재'나
'반드시 출간에 성공하는 글쓰기 비법' 같은건 내게 없으니.
스물 두살. 기간제 교사로 처음 교직에 발을 디뎠을 때, '담임선생님' '우리 선생님' 그 말이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다. 아무리 국어시간에 아이들과 즐거웠어도 나도 '나만의 교실' '나만의 아이들'을 갖고 싶었다. 아 물론 그건 다음 해에 정교사가 되고 그 무섭다는 중2를 처음 담임하면서 공식적으로 스스로 취소한 말이 되었지만. 하지만 가끔 그때의 느낌을 지금도 생각하곤 한다. '담임 선생님'이라는 그 말이 나는 얼마나 부러웠던가. 담임교사와 학생이란 얼마나 끈끈한, 교과목 교사 그 이상의 이상의 이상의 관계로 보였던가 하고 말이다.
내게 에세이클럽은 그런 느낌이다. 담임선생은 아니지만, 리더와 멤버들. 보이는 것 이상을 공유할 수 있는 관계. 그게 바로 '글'의 힘이라고 믿는다. 글을 공유하는 관계 말이다. '글로 만난 인연'은 언제나 그렇게 강력하다. (블로그마을이 그러하듯이)
에세이클럽을 언제까지 하게 될지. 또 다음 기수가 있을지 언제나 알 수 없다. 내마음 나도 모르니까. 상황도 모르고.
그러나 그게 무엇이 중요할까. 지금. 글을 쓰고자 온 여덞 명의 멤버들과 출항할 준비가 완료되었음으로 충분한 것.
또다시 출사표를 던져본다.
비장하게는 아니고.
행복하게. 기쁘게. 다정하게. 그렇게.
시작을 기다린다.
안녕, 나의 에세이클럽 4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