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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호수 Jan 16. 2023

2. 리탈린 for ADHD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을 거라고?

Dr.H.


정신과 의사.

한국과 미국에서 두 번의 정신과 레지던트를 마침. 심지어 한국에서도 공중보건의를, 미국에서는 j waiver(미국식 일종의 공중보건의)를. 한마디로 x고생은 골라서 다 하는 특출난 재주가 있음. 인생의 모토가 헝그리 정신. 맨땅에 헤딩. 현실은 산너머 똥밭. 지금은 볼티모어에 있는 J대학병원에서 소아정신과 교수로 재직 중. 그러나 지금도 역시 맨땅에 헤딩 중. 정신과 의사가 천직이라고 '스스로' 생각. 전문분야는 자폐증. 특히 영유아에게 관심이 많음. 성인 중에는 오직 아내의 ADHD에 깊은 관심.


MBTI는 ISFJ. 내향형. 공감능력 뛰어남. 글 쓰고 싶어하는 예술적 마인드 있음. 그러나 정말 글 못 씀. 논문만 씀. 통찰력 강함. 인내심 강함. 계획하는거 좋아함. 조직적 계획적이며 매우 꼼꼼함(나랑 살다가 많이 헐렁해짐).



나.

밤호수.

블로거이자 작가. 에세이 강사. 두 아이의 엄마.

나름 하는 일 많음. 그러나 늘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줌. (자는 시간이 많아서).


MBTI는 EFNP.

한마디로 외향적. 감성적. 직관적. 무계획. 일 벌리는거 좋아함. 사람 좋아함. 계획 세우지만 지키지 않음. 끝까지 계획을 세우지도 못함. 세우다 딴 짓. 별로 스트레스 안 받음. 스트레스 받으면 주로 잠. 아이디어 많고 창의적임. 글 쓰는거 좋아함. 생각하는거 좋아함. 그러나 머리 속에 숫자 없음. 숫자나 시간 공간 이런 개념 매우 부족.





남편은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나는  세 가지의 일을 처리하지. 집안일. 병원일. 그리고 당신이 빵꾸낸 일.   

또 이런 말도 한다  

    난 ADHD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그럼 나도 말한다.  

    난 ADHD 진단 내리는 정신과의사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라고.



우리만의 특이한 농담이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뜨아할 수도 있는.

정신과 의사인 남편과 ADHD를 지닌 아내의 일상적인 대화.

정 반대의 성격.

반대의 성향.

반대의 직업.

하지만 그래서인지 꽤 잘 맞는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여행가방을 싼다면 나는 다 대충대충 쑤셔넣고 위에서 발로 밟아서 잠그는 성격. 남편은 아래부터 차곡차곡 빈틈없이 쌓아서 공간에 딱 맞게 싸는 성격. 같은 영화를 보았어도 나는 내가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과장되게 해석하는 타입. 남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놓치는 부분 없이 전체적으로 통찰하는 타입.


다른 걸 다른 걸로 인정하고 살면 그다지 어려울 것도 힘들 것도 없다. (적어도 내게는) 내가 못하는 꼼꼼한 부분을 그가 해 주니 더 편하고, 그가 갖고 있지 않은 헐렁함을 내가 갖고 있기에 더 많이 웃고 편안할 때도 많다. 그렇기에 ADHD 또한 그런 나의 ‘헐렁함’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살아왔다(고 믿는다). 연애할 때는 그런 면이 귀여웠다고 말한다. 가끔씩 회상하듯이.


그간 그가 때때로 한번씩   

    당신도 치료를 받아보면 어때?   

라고 묻긴 했지만, 뭐 '당신이 원하면' 정도였지, 그다지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본격적으로 남편이 나에게 ‘의사를 만나’ ‘약을 처방받을 것’을 권유하기 시작한 것은 1~2년 전부터였다. 바로 내가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육아와 집안일. 사회생활(이라고 쓰고 동네 수다라 읽는다)에 초점을 맞춘 삶을 살아오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온라인을 통해 일을 시작한 지가 약 2년이다. 어느날 갑자기 시작된 블로거의 삶. 이건 내 인생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미국에 온지 10년이 넘어서, 경력 단절된 지는 이미 한참. 혼자서 책 읽고 글 끄적이는 것만이 유일한 ‘나를 찾는 삶’이었던 내게 다시 찾아온 기회. 블로거. 작가. 그리고 에세이 강사.

말하자면 다시 나의 인생에서 <시간 관리. 에너지 관리. 집중.> 이 매우 중요한 때가 온 것이다.


-  (그) 지금이야말로 당신의 인생에서 ADHD를 치료하고 삶의 질을 높여볼 때가 아닌가 싶어.   

- (나) 지금까지 안 먹고 공부 잘하고 대학가고 시험치고 애들 다 키우고 살아왔는데 이제서 무슨 adhd 진단을 받고 약을 먹겠어? 내 나이가 낼 모레면 50이야.  

- (그) 50 아니라 그보다 더 많다고 해도, 단 하루를 지내도 삶의 질을 높이고 싶지 않아? 그리고 주변 사람 생각도 해줘야지 (스스로를 측은해하며)

- (나) 내 삶의 질은 지금도 높아. 만족하며 살고 있어

- (그) 지금 당신의 수면 시간을 좀 줄이고, 불규칙적인 생활을 잡아주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어.  그러면 글도 훨씬 더 집중해서 잘 쓸 수 있을 거야.  

-(나) 난 지금도 혼자 글 잘 쓰고 있어.  


결국 마지막은  ‘난 다 잘하고 있어’라는 무의미한 똥고집의 대화로 끝나고, 남편은 결국 졌다는 듯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가 남긴 말에는 분명 ‘혹하는’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삶의 질을 좀 더 높일 수 있을 거야!  


라는 말은 계속해서 그가 사라진 뒤에도 언제나 내 귓가를 맴돌았다.




다시 고백하자면, 나는 조금 전 이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에 또 약을 먹었다. 주로 내가 약을 먹는 방법은 남편이 약을 들고 와서 삼키는 것까지 보고 가는 시스템인데 (하도 안 먹어서), 어제도 오늘도 내가 직접 케이스 뚜껑을 열고 스스로 약을 집어넣고 삼켰다.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 약의 효과를 내가 느끼고 있는 것!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건 왠지 남편에게 졌다는 기분 탓일 것이다. 그냥 똥고집인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쓰기 전에, 하루의 업무를 처리하기 전에 내 손으로 약을 먹었다는 건 매우 큰 의미이다.



지금 내가 먹기 시작한 약의 이름은 ritalin.

그 중에서도 short term으로 작용하는 약이다.

나의 뇌에 들어와서 약 서너시간을 머물다가 사라지는 약.

리탈린.

그리고 이 약을 먹기 시작한 건 약 두달 전부터였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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