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제 파마약의 비극

20. 파마하던 날과 스왕미용실

by 밤호수

할머니의 머리스타일은 딱 하나였다.


짧은 커트에 언제나 굵은 뽀글머리.
작은 키에 마른 몸에 짧은 머리는 할머니의 깔끔한 성격과 잘 맞아떨어지는 외모였다. 그런 할머니 머리의 비밀은 바로 속칭 동네 ‘야매 미용실’ 아주머니의 찰떡같은 현란한 솜씨에 있었다.

언젠가
유치원 때였다.

- 수진아. 할머니가 머리 예쁘게 하는 데 데려갈게. 같이 가자 응?

할머니가 머리하러 다니시던 아주머니가 맘에 들지 않아, 다른 아주머니에게로 옮기시려 하는데, 그 아주머니는 야매 초보였다. 말하자면 ‘야매에서 또다른 야매 초보에게로’ 옮기려는 계획이셨다. 초보 아주머니가 비싼 ‘독일제’ 파마약까지 구비해 놓고, 아이들에게도 안전한 약이라고 우리집 애들을 데려오라고 하셨단다. 처음이니까 공짜로 해 주신다고.

공짜에다가 독일제 파마약이라니!

그게 좋은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에게 파마를 시킬 계획의 할머니는 신이 나셨다. 하지만, 이미 머리가 클 만큼 큰 - 자그마치 이제 초등학생 !- 언니들은 절대 파마하지 않겠다고 했고, 할머니에게 남은 것은 멋모르는 막내. 나 뿐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운명적으로 할머니의 미니미 역할이자, 초보 야매 미장원 아주머니의 마루타 역할을 하러 끌려가게 되었다.

그때까지 내 머리는 엄마가 잘라주셔서 주로 단발머리였는데, 엄마 솜씨가 꽤 좋으셨던 관계로, 얇고 머리색이 밝았던 내 머리칼에 잘 어울렸다. 어릴 적 내 사진을 보면 단발머리가 찰랑거리고 엄마가 가운데로 삔을 꽂아주신 사진이 많은데, 그런 머리스타일에 크게 불만이 없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날.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이웃 아주머니 댁에 가게 된 그 날 아침.
다들 학교에 가고 나간 후, 나는 할머니와 함께 앞으로 미용실이 될 이웃집에 갔다. 몇 번 가본적이 있는 집이었지만, 그렇게 안 쪽까지 가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날 따라 그 집은 왜그리 어둡게 느껴졌는지, 집의 모양이나 불빛이 무척 어둡고 음산했다. 나름 머리를 한다고 해서 미장원에서 하는 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어두운 집에 끌려들어갈 때부터 이미 나는 뭔가 잘못 왔음을 느끼고 있었던 듯 하다. 미용을 시작하신다고 했는데, 집에 있는 거라곤 머리를 감기 위해 쓸 세숫대야 하나와 바가지 하나. 롤과 약병 몇 가지 뿐. 멋모르는 나의 마음 속에도 쌔하고 뭔가 불길함의 바람이 불었던 듯 하다.



내가 미장원의 분위기를 기대했던 것은,
엄마를 따라서

공주 최고의 신식 미용실이자
산다는 집 사모님들의 살롱 노릇에

공주시내 모든 소소한 소문의 근원지였던

‘스왕 미용실'을

종종 가보았기 때문이었다.

다 커서 그 이름이 ‘swan’ 이라는 근사한 어원을 갖고 있음을 알았지, 그 때는 늘 우리는 ‘수앙 미장원'이라고 말했다. 도대체 수앙이 뭐지? 하면서. 거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절대 ‘미장원’이 아니고 ‘미용실'이라고 강조했는데, 그게 더 ‘그럴듯하기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나름 동네의 패션리더였던 엄마는 늘 그곳에서 머리를 하셨다. 그래서 우리에게도 스왕 미용실은 친근한 곳이었다. 커다란 거울들 속으로 엄마가 머리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엄마 참 이쁘다~’하고 동경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고, 주말에 엄마가 마사지라도 받으실 때면 엄마의 얼굴을 다루는 미용사 언니의 현란한 손놀림에 넋이 나갔다.
집에 오면 나는 얼른 엄마를 눕혀놓고 마사지 샵을 차려놓았다. 엄마 얼굴에 콜드크림을 잔뜩 발라놓고 무조건 찰지게 때려대면 되는 줄 알았던 생애 최초의 마사지 시연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스왕미장원이 좋았던 이유는, 미장원 쇼윈도에 있었던 흰색의 찬란한 웨딩드레스들 때문이었다.

아. 그 웨딩드레스가

어린 나의 마음을 얼마나 설레게 했던지!

근처를 지날 일이 있으면 나는 일부러 골목을 돌아 스완미장원 앞을 꼭 거쳐가곤 했다. 아름다운 웨딩드레스와 함께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위해.


반짝이던 비즈와 구슬의 장식들.
잘록한 허리에 달린 정교한 리본.
차르르 떨어지는 하얀 새틴의 물결.


그 아름다움이 어린 나의 가슴에 와서 박힐 때마다 내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렸는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꿈속의 드레스들이었다. 커서 결혼을 한다면 꼭! 꼭!
스왕미장원 드레스를 입고 스왕미장원 언니가 해주는 화장과 머리를 하리라 어린 나는 굳은 결심을 하는 것이었다.
결혼을 할 때, 잘 나간다는 웨딩드레스디자이너의 옷들을 여기저기 입어보고 그 중 맘에 드는 것으로 선택을 했지만, 그 아무리 세련된 드레스라 할지라도 어릴 적 스왕미용실 유리쇼윈도에 있던 드레스들과 견줄 만한 것은 없었다. 추억과 그리움의 장식을 단 드레스는 영국왕비의 수십 억 원 웨딩드레스와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었다.

여왕벌 큰언니가 백제문화제에서 왕비 분장도 스왕미용실 주인언니의 솜씨였다. 그게 얼마나 큰 영광이었겠는가! 난 한번도 그 황홀한 느낌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고향을 떴으니 지금도 억울하기가 이를 데 없다.



세련된 스왕미용실과 음산한 이웃집 아주머니의 안채 미장원은 비교가 되어도 너무 심하게 되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할머니의 꼬맹이인 나는 말 잘듣는 손녀. 할머니 옆에 붙어서서 생전 처음 이루어지는 헤어 디자이너의 우아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머리를 자르자고 했다.
단발머리를 살짝만 다듬은 후 파마를 하자고 했는데,
어째 분위기가 이상한 것이 자꾸자꾸 머리가 짧아져서 귀밑머리에 와 있었다.
할머니와 아주머니는 둘이 손뼉치며 예쁘다고.
그리고 이제는 파마를 하자고 하셨다.
미용실로 사용하신 안채에서 나는 제대로 된 의자도 없이 자그마한 목욕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때묻은 보자기를 둘러싸고 디자이너의 처분대로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긴 채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를 감기고,
그 짧은 머리를 억세게 잡아당겨
롤을 말고
그리고
그 독일제 파마 약.
찍 하고 내 머리위에 마음껏 자비롭게 뿌려지던
그 순간.
그 차가운 느낌과
귀와 머리를 관통해서 목까지 흘러내리던 그 느낌.
맨 살에 닿는 순간
타는 듯했던 그 느낌.


지금도 그 느낌을 기억한다.

처음엔 그냥 따가웠는데 갈수록 타는 느낌이 심해졌고 진짜 아팠다. 아주머니는 괜찮아 원래 그런거야 라고 하셨지만 나중에 내 피부에 발진이 일어나자 그제서야 찬 수건으로 목에 올려놓아 주셨다. 난 예민한 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금세 안심을 했지만 슬프게도 내 머리와 피부는 예민했다. 아주머니는 어쭙잖게 파마를 마치고 나신 후, 불안불안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셨다.

머리는 지나치게 짧았고
지나치게 꼬불거렸고
마치 끊어진 라면가닥 같았으며
목에는 화상과 약 부작용으로 작은 버블같은 발진이 가득 올라왔다.

- 으앙~~~~!!!!!!!!!!!!!!
- 엄마~~~~!!!!!!!!!!!!!!

그제서야 참았던 눈물이 솟아올랐다.
라면땅같은 머리는 맘에 안들었고,
무엇보다 목이 아프고 따가워서 견딜 수 없었다.
거기에다가 목 뒤에 징그럽게 가득 뽀글뽀글 올라온 발진들!
아직까지도 선명한 그 느낌.
간지럽고 바스락거리고 버석대던 그 느낌.
지금 생각해도 다시 울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집에 돌아온 나를 본
부모님은 귀엽다고 위로해 주셨지만
전혀 나에겐 위로가 되지 못했고
내 목의 버블들은
다 사라지는데 몇 달이나 걸렸다.
할머니에게 뭐라 말씀도 못드리고
속상하셨던 엄마는
이래저래 연고를 구해다가 목에 열심히 발라주셨다.
딱쟁이가 하나둘씩 떨어질 때마다 그날의 슬픈 기억이 떠올랐고, 내 유치원 졸업사진에는 아직도 그 짧고 바스락거리는 머리와 함께 남자아이같은 내 모습이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두 번 다시 그 집을 가지 않았다.
아 물론 할머니도 욕을 욕을 하시며 ‘그노무 여편네’에겐 가지 않으셨다.

그리고 내 생애 최초의
파마의 경험은
그 어두운 집 안채의
세숫대야와 바가지.
머리를 흘러내리던 독일제 약의
차갑고 타는
그날의 불길했던
느낌과 함께
슬프게 끝나버렸고

지금도 나는
미처 이루지 못한
스왕 미용실의
화려했던
동경의 웨딩드레스와
주인언니가 해주는 파마의 꿈을
아스라히

떠올리는 것이다.


* 이 이야기는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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