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의 선물) by Paul Villard
아무리 지루한 ‘국어책'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누구에게나 가슴 깊이 남아있는 영원한 추억의 이야기들이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폴 빌라드'의 ‘이해의 선물'이 바로 그러한 이야기 중의 하나이다.
"나는 네 살 무렵, 처음으로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 들렀다. 가게 안은 온통 사탕 천지였다. 사탕에서 풍기던 향기로운 냄새는 5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렇게 시작하는 단편 소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나도,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국어책 사이에서 풍겨나와 온 교실을 감싸는 것만 같았던 사탕의 향기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다.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나'를 감싸던 황홀한 풍경. 진열대에 다소곳이 앉아 기다리는 갖가지 사탕의 향연. 거기에 머리가 하얀 위그든 씨의 차분한 미소.
"이 쪽엔 박하향기가 나는 납작한 박하사탕이 있었다. 그리고 쟁반에는 조그만 초콜릿 알사탕, 그 뒤에 있는 상자에는 입에 넣으면 흐뭇하게 뺨이 불룩해지는 굵직굵직한 눈깔사탕이 있었다. 단단하고 반들반들하게 짙은 암갈색 설탕 옷을 입힌 땅콩을 위그든 씨는 조그마한 주걱으로 떠서 팔았는데, 두 주걱에 1센트였다. 물론 감초 과자도 있었다."
이 따뜻하고 달콤한 묘사에
그 맛을 상상하지 않을 자가 있을까.
달콤한 감초 과자(감초 과자가 무엇인지, 어떤 맛인지 지금도 모르지만)를
혀 안에 굴리며 살살 녹여먹는 그 달콤한 상상을.
서울로 전학을 가기 전.
내가 다니던 여자중학교 교실은 삐걱대는 나무의자와 나무책상이었다. 그 책상에서 공부를 하고 있으면 먼 곳에서 햇살이 가득 들어왔고, 내가 ‘이해의 선물'을 배울 때 나의 상상은 이미 그 햇살과 함께 먼 곳으로 가 있었다.
위그든 씨의 가게.
커다란 문을 열었을 때 들려오는 방울 소리.
그리고 유리 진열대.
머리가 하얗고
따뜻한 미소를 지녔을 것 같은
위그든 씨의 커다란 손.
‘나'가 내민 은박지로 정성스럽게 싼 여섯 개의 버찌 씨.
내 손에 떨어진 거스름돈 2센트.
완벽한 장면이다.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 열대어 장사를 하는 나의 가게에 아이들이 들어와 똑같은 장면이 연출되는 부분은 내 기억에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내가 물고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대물림되는 아름다운 이해의 선물’은 언제까지나 내 마음을 따사로이 해 주지만.
기억나는 것은 언제나 위그든 씨의 사탕 가게.
어린 ‘나'에게 크게만 느껴졌을 문.
들어가면 공기가 달라지는 달콤한 가게와
유리진열대.
박하사탕.
감초과자…
스물 셋에 국어교사가 되고 처음 이 이야기를 가르치게 되었을 때 내가 얼마나 가슴이 두근두근했을지는 짐작될 것이다. 아이들이 이 글을 그저 ‘교재'로 인식해 그 감성을 기억하지 못할까봐, 요즘 아이들에게 이 사탕이 더이상 신기한 것이 아닐까 봐 나는 두려웠다. 아마도 아이들과 함께 사탕 그림을 열심히 그리고, 위그든 씨를 상상하고, 각자의 경험을 나누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이 이야기를 다루며 지나갔던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선 이 또한 ‘이해의 선물'이다. 나의 어린 시절 중학교 교실에서 가슴 벅차게 느꼈고, 받았던 국어책 이야기의 선물. ‘이해의 선물'을 나는 세월이 흘러 나의 제자들에게 전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이런 사탕 가게가 너무도 많다.
어디든 백화점만 가면 한 층에 하나씩은 존재하는 알록달록한 사탕 가게들. 갖가지 쵸콜렛과 알사탕과 젤리들이 나와 아이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할로윈 데이만 되어도 바구니 가득 1년동안 다 먹어도 먹지못할 달콤이들을 받아대는 아이들에게 그 가게의 사탕들이 그리 신기하고 안타까울 것은 없다. 20년 전 처음 미국에 왔을 때 그리 좋아했던 고디바 쵸콜렛도 지금은 심드렁하다. 가끔 몰에 갈 때 딸기에 쵸콜렛을 듬뿍 입힌 자태들이 나를 종종 유혹하긴 하지만, 그 안에 더이상 나의 동경은 없다.
‘초원의 집'에서 주인공 로라와 언니가 아빠를 따라 시내에 가서 잡화 가게에 들어갔을 때 ‘세상에 이렇게 많은 물건이 있을 수 있다니!’하고 놀라는 장면이나, 크리스마스 때 그들을 위해 친구 삼촌이 목숨을 걸고 불어난 강을 건너 ‘candy cane’을 선물로 갖다주는 장면. 그리고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서 맛볼 수 있는 따뜻한 그리움을 현실에서는 더이상 느낄 수가 없다. 그것이 다만 아쉽고 슬프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어른들에게도
‘이해의 선물'의 따뜻함을 전하고 싶다.
지금도 국어교과서에 실려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읽는 아이들이 눈을 감고 그 따뜻함과 달콤함을 느꼈으면 좋겠다.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를 기억하는 그리움을 우리들도 느꼈으면 좋겠다. 모든것이 과하게 넘쳐 나는 이 시대에,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들이 조금은 모자람에서 오늘 간절함과 그리움, 그 안의 따뜻함을 느낄수 있었으면 좋겠다. 결핍 가운데 충족했던 마음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