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한옥집의 밤.
시골집에서 밤을 보낸 사람은 알 것이다.
시골집의 밤이 얼마나 깜깜한지.
얼마나 고요한지.
별은 얼마나 밝은지.
겨울밤이 얼마나 쨍하게 추운지.
집안 방구들은 얼마나 뜨끈한지.
여름밤의 모기는 얼마나, 얼마나 지독한지..
그리고 밤하늘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리고...그리고..
그 밤에 얼마나 많은 꿈과
상상과 환상의 여지가 존재하는지…
도시의 불빛과 오락이 없는 시골집의 밤은 그토록 고요하고 조용하다. 그래서 방안에 웅크린 사람들은 더 많이 이야기하고, 놀고, 방바닥을 파고든다.
밤은 깊고,
이야기는 신비롭다.
꿈은 아름답고,
때론 으시시하다.
신비의 이야기를 타고
밤새 멀리멀리 갈 수 있다.
나는 엄마아빠 가운데에서 꽤 늦은 나이까지 잠을 잤다. ‘뒷간이야기’에서 고백했듯이 오줌싸배기여서, 특별관리가 필요한 이유가 그 이면에 있었다는 사실은 좀 더 지난 후에 알았지만. 모기장 안 엄마 아빠 사이에서 자던 시간은 지금도 생생하다. 게다가 언니들은 모르는 비밀도 있었기에 더욱.
가끔씩 한밤중 언니들이 잠든 후에, 엄마아빠는 포장마차에 가시곤 하셨다. 도대체 막내인 내가 어떻게 그때까지 깨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때면 아빠가 나에게
- 수진아, 꼼장어 먹으러 갈래?
하고 물으셨다. 꼼장어가 뭔진 몰랐지만, 느낌상 꼬들꼬들하고 쫄깃쫄깃할 것 같은 그 맛. 워낙 먹성이 좋았고, 세상 못먹는게 없었던 나는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나섰다. 뭘 먹는지도 중요하지만, 한밤중에 언니들은 떼놓고, 나만 엄마아빠를 따라나서다니! 그보다 짜릿한 일이 어딨겠는가. 어쩌면 백제문화제 같은 행사 때였는지도. 포장마차가 즐비했던 백제문화제의 밤이었으니까.
한밤중 포장마차는 근사했다.
파란색 천막 안의 세계는 어른들의 은밀한 공간이었고, 훈훈했다. 엄마아빠의 소주잔 부딪히는 소리도 좋았다. 원래가 소주를 즐기시는 엄마와, 그에 비해 술을 못하시는 아빠지만 아마 그 밤의 분위기에 소주 한두잔은 누구에게도 좋았을 것이다. 기억나는 메뉴는 ‘닭똥집'과 ‘꼼장어'. 그리고 잔치국수. 소금을 발라 구운 닭똥집은 새로운 맛이었고, 꼼장어는 예상대로 꼬들거렸다. 쫄깃하진 않았지만. (그 차이가 정확히 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렇다.) 거기에, 할머니 잔치국수만은 못하지만 그런대로 먹을만 했던 국수.
한밤중 포장마차 안에서 닭똥집과 꼼장어를 먹는 어린 아이라니.
내 기억에 두 번쯤 그런 적이 있었다. 자다가도 아빠가 ‘꼼장어 먹으러 갈래~’하면 벌떡 일어났던 나였는데, 그 일이 진짜였는지 꿈이었는지, 고백하자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엄마아빠 사이에서 늦게까지 파고들어 안방에서 잔 건 사실이었으니까 어쩌면 진짜일수도. 어쩌면 꿈일 수도.
그 다음 단계는, 안방에서 언니들 방으로 옮겨간 것이다.
쫓겨났다고 해야 하나. 이제 커서 더는 봐줄 수 없으니까. 언니들 방은 안방보다는 썰렁했지만 또 그런대로 재미가 있었다. 낮은 이불장이 있었는데 그 위에 베개와 이불을 쌓아놓고 그곳에서 점프하는 놀이를 밤늦도록 하곤 했다. 측천무후 큰언니가 허락하면 베개싸움도 하고.
겨울밤, 셋이서 놀다가 밖에 소리가 들리면 창문밖으로 셋이 고개를 빼꼼히 쳐다보면 어디선가
메밀~~~묵! 찹쌀~~~~떡!
아저씨가 보이곤 했다.
셋이 이불을 쪼르륵 깔아놓고, 그 아래 따뜻한 방바닥으로 기어들어가 자던 생각과, 잠들 때까지 이야기테이프를 틀어놓고 끝도없이 돌아가게 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불이 꺼지고,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한옥집의 밤이 되면, 이야기 속이 신비한 세계로 꿈과 함께 빠져들었다.
다정함과, 신비스러움과, 무서움과, 따뜻함이 함께 한 한옥집의 밤이었다. 낮에는 우리 자매들의 기쁨의 숲속이 되어 주는 나무와 꽃가지로 가득한 정원들이, 밤이 되면 기괴한 나무 정령들이 가득한 신비스러운 공간으로 변화한다. 신비스럽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포가 가득하여 가까이 하기엔 두려운. 그 마당을 옆에 둔 옛 한옥의 방에서 우리는 그 무수한 밤들마다 새로운 세계로 날아갔다. 마치 웬디와 동생들이 피터팬을 따라 밤하늘을 날아 네버랜드로 갔듯이, 그렇게 우리의 꿈 속에서도 한옥집의 신비스러운 세계는 또다른 환상으로 인도하는 작은 문을 지니고 있었다.
자매들의 수다스러움이 꺼지는 고요한 밤에만 열리는 작은 문.
그리고 또다른 특별한 밤.
그런 날은 엄마아빠가 언니들만 데리고 홍성 외갓집에 가시거나, 서울에 놀러가시는 날이었다. 아이를 셋 다 데리고 다니긴 힘드니, 어린 나는 할머니와 함께 남겨지는 것이다.
나는 그런 밤을 좋아했다.
평소엔 할머니 방에서 잘 일이 거의 없는데, 그런 날이면 따끈따끈하고 안락하고 포근한 할머니의 방에서 함께 잠을 자는 것이다. 할머니가 씻겨주시고, 같이 앉아서 저녁에 ‘손자병법'같은 일일 드라마를 본 후, 할머니방의 석유곤로에 흰떡도 구워주시면 조청에 찍어먹고. 그러고나서 할머니가 깔아주신 두툼한 이불 속에 들어가서 할머니 손을 꼭 붙들고 자면, 그 얼마나 따사로운 밤인가!
식구들이 모두 없어 고요한 밤이었다. 복렬이 언니도 어딘가에서 늘어져라 뻗어있을 것이었고. 할머니와 함께 있는 겨울밤은 든든했다. 그렇게 나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방이 너무 뜨거워서일까.
새벽에 눈이 떠졌다.
옆자리에 할머니가 없었다.
벌컥 겁이 났다.
할머니가 어디 가셨을까.
화장실에 가셨나.
조금만 기다려보자.
십 분쯤이 지나도 할머니는 오지 않으셨다. 무서우면 이불을 파고들어 더 자면 될 것을, 나는 엉금엉금 이불을 기어나와 문고리 달린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왔다.
- 할머니~!
아무리 불러도 할머니는 대답이 없었다.
-할머니이~~~~!!
할머니이~!!!! 어딨어~~~~~~~~~~~~~~~
뒷간에 가신 건가.
하지만 뒷간에 가보기엔 너무 무서웠다. 이 깜깜하고 어둡고 얼어붙은 밤에 도대체 할머니는 어디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콧물도 범벅이 되었다.
내복을 입고 추운 한옥집 마루에서 나는 그렇게 한참을 서서 울었다. 할머니를 찾으며.
도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할머니는 우리가 항상 이야기하던, 무서워하고 꿈꾸던 그 신비한 통로로 사라져 버린 걸까. 엄마아빠도 언니들도 없는 이 밤을 틈타. ‘호호할머니’처럼 작은 우리 할머니만 통과할 수 있는 신비의 세계로. ‘이상한 나라의 폴’처럼 그렇게 어지럽고 무서운 세계로. 눈물은 한도 끝도 없이 흘러내렸고, 상상은 점점 더 두려워졌다. 뒷간 귀신이 할머니를 뒷간 속으로 끌고 들어갔나.
내복만 입고 발은 얼어붙어갔지만 뜨끈한 방 안으로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저쪽 별채에서 자고 있을 복렬이 언니도, 뒷채에서 잠들어있을 세 들어 사는 화연언니네도, 아무도 나의 처절한 울부짖음을 듣지 못하고, 혹은 몰려오는 졸음에 외면하고 자는, 깜깜한 밤이었다. 그렇게 나의 눈물콧물과 함께 날은 밝아왔다.
한참있다 그렇게 오신 할머니는, 새벽기도를 위해 교회에 다녀오시는 길이셨단다. 할머니는 깜짝 놀라 날 달래주시고, 따뜻한 방 안에 데려가시고, 할머니표 흰죽도 끓여주셨다.
할머니가 다녀오실 걸 뻔히 알면서도 어쩜 그렇게 생각도 못했는지! 아니 그 한옥집의 깜깜한 새벽은 그런 생각조차 마비시켜버렸다. 어쩌면 내 스스로의 상상에 발이 묶여버린 내가 나 자신을 가두어 버렸는지도.
그 무섭던 밤.
아니. 그 황홀했던 밤.
한옥집의 밤이 나는 종종 그립다.
빨간휴지 파란휴지를 골라주던
친절한 뒷간귀신이 존재하던 그 집.
나무의 정령들이 가득했던 마당이 있던 집.
‘손가락을 빨면 잡아가는 괴물''이 방 구석에 숨어있던 집.
그렇게 무섭고,
그토록 신비스럽고
그토록 따뜻했던 그 집.
그리고
그 밤.
한옥집의 밤.
* 이 글은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