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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을 지나 나의 한옥집으로.

27. 골목길

by 밤호수

그 골목길 끝에 한옥집 대문이 있었다.

골목길이 시작되는
그 자리에 서면,
아, 드디어 집에 왔구나

언제나 마음이 놓이던 곳.
그래서

저절로 다리에 힘이 풀려 똥싸배기가 되고
때론 오줌싸배기가 되었던 곳.
골목길.

그 끝으로

청동문 손잡이가 달린 갈색 대문이 있었다.
그 누구라도,

골목 끝까지 달려가서

한번쯤 잡아보고 싶은 청동 손잡이.
누구라도

한번쯤 끼익 소리를 내며 밀어보고 싶은

갈색의 오래된 나무문.
누구라도

무작정 들어가 보고 싶어지는 다정한 한옥집 지붕.


그 안에 우리의 세계가 있었다.

골목길은 늘 분주했다.
도립병원 담을 끼고 있어 그 분주함이 전해졌고,
반대쪽엔 정다운 집들이 낮은 담을 끼고 있어
낮에는 그 아이들이 쏟아져 나와 분주했다.
길거리에서 네발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있었고,
리어카를 끌고 다니는 아저씨들이 있었고,
때로는 ‘거지’들도 보였다.
깡통을 든 거지들이

이따금씩 우리집 대문 앞에 오기도 했다.
할머니는 그들에게 밥을 주셨다.
여름날 저녁이면 그 골목길에 모기약 차가 돌았고,
한달에 한 번인가 똥을 푸는 차가 돌았다.
지독한 냄새가 골목길에 가득했다.

어른들도, 아이들도, 병원도, 나무들도, 거지들도
각자의 이유로 분주했던 골목길이었다.
밤이 되면 무섭도록 고요했던 골목길이었다.

때때로 나는 길을 잃었다.
그 좁은 시내에서도

길을 잃고 멀리 헤매다 들어온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엔
저 멀리 공주읍에 사는 양계장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반대쪽으로 멀리멀리 가는 버스를 타버렸다.
눈물콧물을 빼며 울며 버스 아저씨에게 말했다.

- 여기가 어디에요?

맘씨 착한 아저씨가 원래 자리로 데려다 주셔서
다시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서울에 가는 줄 알고 무서웠다.
그 날.
어둑어둑해져서야 나는 골목 끝에 섰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흙바닥의 긴 골목길은 그렇게 나를 감싸주었다.
이제 집에 다 왔다고.
이제 마음 놓으라고.

친구와 싸우고 집에 오던 날.
지갑을 잃어버리고 울며 오던 날.

다리 위에서 넘어져

무릎이 다 까졌던 날.
학교에서 토하고

조퇴하고 돌아오던 그 날도.


골목길에 들어서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서 뛰어가서
저 손잡이를 잡고
삐그덕거리는 문을 열고
고단함을 안아주는
한옥집의 품으로
그렇게 들어가자.
할머니가 있는 따뜻한 곳으로.
나의 세계로.


* 이 글은 <안녕, 나의 한옥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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