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욕망 / 나비 by 헤세

by 밤호수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국어시간에 배운 헤세의 ‘나비’. 선생님이 누구였는지도, 무엇을 배웠는지도, 전학을 가기 전 학교인지 가고 난 후 학교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소년이 얼마나 나비를 정성스럽게 모으고 다루었는지. 그 신비스러운 느낌. 그리고 친구의 나비를 훔쳐올 때의 그 당혹스러운 두려움과 긴장감.

나는 지금도 ‘나비'라는 이름을 들으면,
소년이 가슴떨려하며 자연을 헤짚고 다녀 나비를 찾아낼 때의 그 황홀한 경험을 떠올린다.
정작 나는 나비의 날개 하나도 만지고 싶지 않은데,
책을 통한 상상은 짜릿하다.



소년

<풀 향기가 코를 찌르는 메마른 벌판의 찌는 듯이 무더운 낮과, 정원 속의 서늘한 아침과, 신비스런 숲속의 저녁 때, 나는 마치 보물을 찾아 헤매는 사람처럼 포충망을 들고 나비를 노렸다. >

<햇볕 아래 졸고 있는, 꽃 위에 앉아서 빛깔이 고운 날개를 호흡과 함께 드놓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을 잡는 기쁨에 숨이 막힐 지경이 되어 가만가만 다가섰다. >

<반짝이는 반점의 하나하나, 날개 속에 드러난 맥줄의 하나하나, 가는 촉각과 갈색 잔털의 하나하나가 눈에 뚜렷이 보이면, 그 긴장과 환희란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

그때의 그 ‘미묘한 기쁨과 거센 욕망과의 교차'를 그 뒤로는 자주 느낄 수 없었다고 소년은 회고한다. 나비가 소년에게 있어서 인생의 환희와 욕망을 알려주는 첫 경험이었던 것을.

어린 소년이 포충망을 들고 햇살이 강한 날 반짝이는 나뭇잎 소리가 바스락거리는 숲속을 헤매는 것을 나는 상상할 수 있다. 숨이 막힐 듯 나비를 발견하고 다가가는 소년의 낮은 숨소리를.

질투

그러나 나비만큼이나 강렬한 것은, 또한 소년의 옆집 소년 에밀에 대한 질투와 미움의 감정이다. 소설에서 강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나비에 대한 열정은 에밀에 대한 열등감과 질투로 옮겨갔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수집물은 그리 대단하지 않았으나 깨끗한 점과 솜씨가 정확한 점으로는 보석을 간직한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감탄을 하면서도 ‘속으로 그를 미워했다'. 소년의 나비 수집품에 대해 그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바람은, 그의 혹평으로 무너졌고, 그 이후 분명 소년은 그를 더욱 미워하고 질투했을 것이다. 작은 방이라도 자신의 방을 갖고 있는 그 소년을, 모든 면에서 모범 소년이었던 그를, 게다가 그가 ‘점박이 나비'를 잡은 후에는 더욱 더.

<에밀이 이 이상한 나비를 가졌다는 소문을 듣고부터 나의 흥분은 절정에 이르러, 그것을 꼭 한 번 보고싶어 견딜 수 없었다. >

그리고 ‘나’는 그의 방에 우연히 홀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바로 강한 유혹에 이끌려 점박이 나비를 손바닥 위에 받쳐들고 나온다. 아, 이때의 긴장감이라니.

나는 그 장면을 정확히 기억한다. 어떤 묘사도, 어떤 글귀도 기억나지 않지만 소년이 에밀의 방에서 몰래 나비를 들고 나오는 장면이나, 그의 두근두근한 심장. 표정. 좁은 계단을 내려오며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떨리는 마음. 그만큼 강한 욕망. 그 느낌만큼은 정확히 기억한다. 내 자신이 도둑질을 하고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을 정도니까.

섬세한 묘사.
엄청난 심리 묘사.
산산이 부서져 버린 점박이 나비를 볼 때, 소년의 감정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까.

<도둑질을 했다는 생각보다도, 그 아름답고 찬란한 나비를 자기 손으로 망가뜨렸다는 것이 나로서는 더 괴로운 일이었다. 날개에 있는 갈색 분이 온통 나의 손끝에 묻은 것을 보았다. >

부서진 욕망

에밀에게 사과를 하고, 조소어린 경멸의 말을 듣고 온후 소년은 나비를 다 가루내어 버린다. 그리고 그 속에 든 나비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내어 손끝으로 비벼서 못 쓰게 가루를 내어 버렸다.

그에게 그토록 소중했던, 그토록 아름다웠던 나비!
소년의 어린 시절 욕망의 결정.
그는 자신의 욕망이 얼마나 하잘것 없는 것이었나를 느끼며 자신의 손으로 모두 부서버린다. 하나하나. 가루가 되어 부서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리고. 나의 기억

어린 시절. 모든 기억이 즐겁고 아련한 것이 아니다.
은밀하고도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있다.


초등학교 때, 옆 짝의 연필을 손에 쥐고 끝까지 내것이라고 우겼던 내 인생 최초이자 마지막의 도둑질.
언니가 준 것이라 거짓말까지 하며 끝까지 우겨대던 그날의 기억은 부끄럽고도 고통스러운 기억이다.

어린이집 시절, 새로온 아이를 모두 담합해서 따돌리던 기억은 믿고 싶지 않을 만큼 어둡고 좌절스러운 기억이다.

친구가 가진 무언가를 향했던 나의 욕망. 질투.
그것들은 모두 은밀하고도 나를 억누르던 기억이다.

욕망과 아름다움.
소유하고픈 욕구와
소유한 후의 허무함은
맛닿아있다.

그것이 구분되지 않는 어린시절에 우리는 누구나 이런 기억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 시절의 잊고 싶은 욕망은.
헤세의 작품에서 소년이 지닌 ‘나비'에 이입되어
오랫동안 은밀하게
내 안에 숨겨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