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고아 소녀의 자존감 찾아가기

키다리 아저씨 by 진 웹스터

by 밤호수

동화책이라 시시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지만, 저에게는 이 책은 ‘톨스토이' 못지 않게, 도스토옙스키나 제인 오스틴 못지 않게 제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명작 중의 명작이랍니다.

미국에 와서 수도없이 이사를 다니면서 책을 줄이고 줄였어도 아직도 나의 책장에 꽂혀있는 선별된 책들 중 하나. 정기적으로 읽어줘야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내 마음 속의 동화책 중 하나. 말 그대로 인생에 꿈과 사랑을 주는 이 책을 40대가 되었다는 이유로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우리는 이 책이 만화 '캔디캔디'처럼 한 고아 소녀가 로맨스를 이루어서 부자 키다리 아저씨와 결국 사랑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 정도로 보통 생각하지만, 막상 자세히 읽어보면 얼마나 이 이야기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고 기쁨까지 주는지를 알 수 있답니다.





첫 번째. 주디의 자존감 이야기

온통 회색빛으로 기억되는 고아원에서 열 여섯살까지 살아온 주디가, 처음으로 무지갯빛 세상으로 나아갔을 때의 그 기분을 상상해 보실 수 있겠어요?
얼마나 행복하고, 얼마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겠어요. 주디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세상을 즐기며 그간 억압당해온 많은 감정들을 건강하게 분출합니다. 여기에서 주디가 비록 고아원에서 컸어도 ‘자존감'이 무척 높은 소녀임을 알 수가 있지요. 처음으로 펼쳐진 바깥 세상에서 주눅들고 우울함에 잠식당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 “고등학교에 다닐 때인데, 아이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쑥덕거리며 이상한 듯이 저를 바라보곤 했어요. 제가 어딘가 남달랐기 때문이에요. 그 때부터 저는 제 얼굴에 '존 그리어 고아원'이라는 글자를 새겨 가지고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답니다.”

- “그 중에서도 나를 동정하는 친구들이 가장 싫었답니다. “

- “어린시절을 생각하면 그 지긋지긋한 고아원이 떠오를 뿐이라는 게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긴 하지만요. 그 끔찍한 추억을 잊을 수만 있다면 저도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상냥한 아이가 될 수 있을 거예요.”

- “하긴 18년이나 존 그리어 고아원에서만 자랐으니 당연한 일이잖아요? 하지만 이젠 많이 나아졌어요. 전에는 사람들이 바라보기만 해도 당황했어요. 좋은 옷을 입고 있어도, 고아원 시절이 표시 나는 것만 같아서 말이에요. “

- “그 공부가 끝나면 사회사업과 교화에 대해 배울 작정이에요. 그렇게 하면 저는 고아원의 경영법을 알게 되는 거예요. 제게 선거권이 있다면 훌륭한 유권자가 될 것 같지 않으세요? 지난 주에 저는 스물한 살이 되었어요. 정직하고 교양 있고, 양심적이고 총명한 제게 선거권을 주지 않다니, 이 나라는 큰 손해를 보고 있는 겁니다. “

이렇듯 주디도 일종의 어린 시절에 대한 깊은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지만, 타고난 밝은 성품과 에너지 덕분에 그것을 이겨 나갑니다. 정말 다행히도 말이죠. 그리고 그 과정에 주디가 읽어나가는 책들과 학업, 작문 능력, 무엇보다 키다리 아저씨에게 쓰고 있는 이 편지가 주디의 자존감 형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알 수가 있답니다


두 번째. 주디가 읽고 있는 작품 이야기

- “제가 꼭 지켜야 하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어요. 다음 날 아무리 중요한 시험이 있어도 밤에는 공부하지 않겠다는 것이에요. 그 대신 가벼운 책을 읽는 거에요. 제게는 꼭 필요한 일이랍니다. “

- “제가 처음 글을 읽게 되었을 때, 저는 혼자서 즐기는 놀이가 있었어요. 그건 제가 읽는 책의 주인공이 바로 저라는 상상을 하며 잠드는 것이었어요. 저는 지금 오펠리아입니다. “

<데이비드 코퍼필드 / 신데렐라 / 로빈슨 크루소 / 제인 에어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조지 엘리엇 / 셜록 홈스 / 허영의 시장 / 테니슨의 시 / 작은 아씨들 / 햄릿/ 셰익스피어 / 스티븐슨의 시 / 토마스 헉슬리의 생애와 편지 / 워즈워드 / 셸리 / 바이런 / 테니슨의 시 ' 록슬리 홀' / 자유 의사 / 쇼펜하우어의 학설 >
- 주디의 편지에 언급된 책과 작품


이런 엄청난 양의 책과 시와 이야기들을 편지 속에서 다루고 있지요. 전혀 어려운 말은 사용하지 않은 채. 하지만 주디가 얼마나 이 배움을 즐기고 내재화 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주디가 작문을 하고, 시를 쓰고, 논문을 쓰며 창작 활동도 활발히 하는 것도 보입니다.
자존감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못했던 주디가, 학교 생활과 '책'의 내면화를 통해 얼마나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지가 눈에 보이지요.



세 번째. 나의 허영심 충족 이야기

어린 시절, 서양의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호기심과 동경이 있던 시절이었어요. 키다리 아저씨의 애니메이션과 책 속에서의 표현들은 저의 그러한 호기심과 허영심을 충족시키는 즐거운 여행이었지요.^^ 이런 표현들만 봐도 제가 이렇게 설레는데, 고아원에서 자라서 늘 같은 회색빛 옷과 방에서 자란 주디가 얼마나 흥분했을까요. 같이 몇 구절 보실래요?


- “제 방을 어떻게 꾸몄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노란색과 갈색으로 꾸몄어요. 벽은 엷은 갈색이고 창문에는 노란색 커튼을 달았어요. 마호가니 중고품 책상은 3달러에 샀고, 흔들의자 한 개와 가운데 잉크 얼룩이 있는 양탄자도 한 장 샀습니다. 잉크 얼룩이 있는 곳에 흔들의자를 놓았답니다. 창문은 너무 높아서 웬만한 의자에 올라서도 밖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장대의 거울을 떼고 벽에 바짝 붙여 놓았답니다. “

- “알려 드릴 게 있어요. 저는 부드러운 양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세 켤레나 가지고 있어요. 전에 크리스마스 때 벙어리 장갑을 받아 본 적은 있지만 손가락 다섯 개가 달린 진짜 가죽 장갑을 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에요. 저는 가끔 장갑을 꺼내서 끼어 보곤 합니다. 장갑을 낀 채 교실까지 가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곤 하지요. “

- “제 옷에 대해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지요? 여섯 벌이나 돼요. 전부 다 예쁜 새 옷으로 저를 위해 산 것들뿐이에요. 물려받은 게 아니라고요. (중략) 하얀 실크에 핑크색 장식이 달린 야회복, 교회에 갈 때 입는 파란 옷, 동양풍의 레이스가 달린 화려한 드레스(이 옷은 저를 집시 소녀처럼 보이게 하지요). 그리고 장밋빛 실크 옷과 회색의 외출복……. 아아! 줄리아 러틀리지 펜들턴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저 저루샤 애벗에게는 굉장한 재산이에요. “

- “앞으로 제가 실크 양말을 신는다 해도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는 지워지지 않을 거에요. “

- “이제 3학년이에요. 저희들을 공부방은 훨씬 좋은 곳으로 바뀌었어요. 남쪽을 향한 창이 두 개나 있답니다. 줄리아는 저보다 이틀 전에 도착해서 방 치장을 하느라고 법석이에요. 벽지를 새로 바르고, 동양풍 양탄자를 깔고, 진짜 마호가니 의자를 놓았답니다. 작년에 저희들이 썼던 가짜와는 비교도 안 돼요. 호화롭고 훌륭한 방이에요. 그런데 저는 이런 좋은 방에는 익숙하지 못해요. 잘못하여 잉크를 쏟지는 않을까 늘 조마조마 하답니다. “

- “저는 분홍색에 크림색과 장밋빛 레이스가 달린 옷을 입었어요. 지미가 준 붉은 장미를 손에 들었지요. 우리 세 사람은 공단으로 만든 무도화에 실크 양말을 신었고, 옷에 어울리는 망사 목도리를 둘렀습니다. “

- “저희들 기숙사에서 잡일을 하시는 아주머니는 푸른 줄무늬가 있는 무명 앞치마를 입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자주색 앞치마로 바꿔 드리고 싶어서 몸살이 날 것 같아요. 그 앞치마를 볼 때마다 고아원 생각이 나서 견딜 수가 없거든요. “

읽을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책.
그래서 세대와 시대가 지나도 꾸준히 사랑받는 고전으로 남아있겠지요.
무거운 생각과 묵직한 메세지의 책들에 문득 힘겨울 때는
추억의 동화책과 함께 즐거운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떠신가요.

저는 오늘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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