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qHLc93IL4B4
청명한 날이었다.
바람은 선선했고, 햇빛은 맑았다.
서울에 전학온 후 다녔던 서울 강북의 어느 중학교.
중학교 3학년.
가장 센치하고 가장 할 말이 많았던 그 때.
누군가에게 하고픈 말이 그리 많았지만
그 누구에게도 온전히 내 할 말을 다 할 수 없었던 그 때.
열 다섯의 그 시간.
맑은 날의 점심시간이었다.
종이 치자 나는 슬그머니 도시락을 챙겨
방송실로 왔다.
그 해. 나는 방송반이었다.
방송반이라고 말하기에도 어쩌면 어색한 방송반.
왜냐면 그 학교에는 '방송반'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음악 선생님께서 나와 어떤 친구 둘을
'나름의 이유로' 불러 모아서 방송반을 만들어보자고 계획하셨을 뿐.
교무실 한 쪽 끝의 캐비넷을
약 2미터 앞으로 끌어당겨서 공간을 만들고
책상 두세개를 붙여 그곳에 마이크를 놓고,
한쪽 구석에 스피커와
노래 테이프를 갖춘 책장을 세우면. 그걸로 끝.
제법 근사하고
조금은 초라한
방송실은 완성되었다.
점심시간에, 그곳에 와서
노래를 틀고 약간의 멘트를 곁들이면
그걸로 우리들의 첫 방송반.
점심 방송은 완성이었다.
대충 학교 이름의 이니셜을 붙여서
나와 또 한 소녀는 나름대로 방송반 이름도 만들었다.
전 날 '정은임의 영화음악실'을 밤늦도록 들으며
흉내낸 멘트 몇 가지를 가져와 써먹기도 했다.
신청곡도 받았다.
몇 개의 멘트를 곁들이고 노래를 틀고
마지막에
'C.M.S (였던가. 기억도 안나지만)'
방송반 임.수.진.이었습니다.
하면 그걸로 끝.
시골에서 전학와서
존재감이라곤 전혀 없던 나의 이름이
교내에 울려퍼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전혀 몰랐지만.
작고 초라한
캐비넷 뒤의 방송실에 앉아서.
그렇게 나는 어쭙잖은 멘트를 날리고
노래를 틀었다.
1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서울에,
아직도 학교에 채 적응이 되지 않은
시골소녀였다.
그날.
도시락을 들고 방송반에 들어서자
테이프 하나와 쪽지가 있었다.
신청곡이었다.
생일 축하를 해달라는 짧은 메세지와 함께
O.1.O.B
이젠 안녕.
커다란 기계에 테이프를 넣고
멘트를 보내고
스피커를 틀었다.
고요한 방송실.
엔지니어도 아나운서도
나 혼자였던 그 날의 점심시간이었다.
스피커의 볼륨을 올리고
창가에 가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축구를 하고,
농구를 하고,
끼리끼리 모여 수다를 떨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하늘 높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운동장 가운데.
노래가 울려퍼졌다..
공일오비의..이젠 안녕.
웃는 아이들 사이로
피아노 전주가 나오고,
'우리 처음 만났던 어색했던 그 순간 속에~
서로 말놓기가 어려워 망설였지만~'
노래가
공기 중에 흩날렸다.
바람과.
맑은 공기와.
싱싱한 햇살과.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교무실 구석의 방송실 창가에서 바라본 운동장과.
공일오비의 노래는.
그 시간과 함께.
오랫도록 내 가슴 속에 남아
잊혀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