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엘레나 페란테
어른들의 거짓된 삶 by 엘레나 페란테 (김지우 옮김)
(이하 스포일러 많음)
이삼일 동안 ‘엘레나 페란테'의 나폴리 세계 속에 푸욱~ 빠져있다가 나왔다. 꽤나 긴 장편 소설을 마치 한 챕터짜리 책인 듯 미친 듯이 읽었다. '나폴리 4부작'을 읽었을 때와 같이 정신없이 주인공 소녀의 삶과 나폴리의 세상 안으로 완전히, 발만 담근 것이 아니라, 완전히 머리까지 푸욱 나를 담갔다가 꺼낸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이 책이 작년에 초판으로 나올 때 사람들이 줄을 서고, 이벤트가 열리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만큼 엘레나 페란테는 이미 이탈리아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상징성을 지닌 작가이다. 지난 ‘나의 눈부신 친구' 시리즈를 읽었을 때, 나는 그녀의 ‘이름값'을 알고도 넘치게 알 수가 있었다. 그 때 정말 머리를 쥐어뜯을정도로 충격적으로 재미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에 비하면 이 작품은 약하다.
그리고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전작과의 반복성이 곳곳에서, 전체적으로도 드러남을 부인할 수 없다. 어쩌면 작가가 그것을 알고 노렸을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성장소설이기에, 전작의 주인공 '레누'의 사춘기 시절을 확대해서 자세하게 보여주는 듯한 느낌도 의도했을 수도 있다. 전작보다는 약할지라도 이 작품은 작가만의 세계관과 매력이 철철 넘친다.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이런 강한 몰입감을 선사할 수 있는 작가의 천재성이 또다시 놀랍다.
1. 거짓된 평화
- 나는 아버지를 매우 사랑했다. 아버지는 언제나 상냥했다.
- 아버지는 특히 내 머릿결을 좋아했다. 아버지가 언제부터 내 머릿결을 칭찬하기 시작했는지 이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 아버지는 끊임없이 내가 자신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우아하고 기품있고 학식있는 아빠. 아름다운 엄마. 그들은 서로 사랑했고, 완벽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함부로 야단치지 않았고, 언제나 주인공의 교육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 사춘기 문제가 아니야. 조반나가 빅토리아를 닮아가
문제의 시작은 이와 같았다.
완벽했던 어린시절이 끝나고. ‘나'의 정체성의 혼란과 여정이 시작된 것은.
언제나 온갖 나쁘고 괴기스러운 이미지의 복합체였던 ‘빅토리아 고모'를 나와 비교한 아빠의 한 마디로부터 ‘나'의 불안은 시작되었다.
2. 빅토리아 고모
엘레나 피렌테의 작품에서 언제나 모든 삶의 원형이 되는 ‘나폴리' . 여기에서도 나폴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폴리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서 그들의 삶의 모습과, 태도와, 말투와, 세계관과 모든 것이 결정된다.
빅토리아 고모가 사는 곳은 ‘나'가 전에는 접해 보지 못한 지역이다. 어둠과 두려움이 있는 곳. 나는 그곳을 향해 간다. 고모를 만나기 위해. ‘나'를 닮았다는, 어쩌면 내 ‘원형'인지도 모르는 그녀를 찾아서.
이 작품에서 빅토리아 고모는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의 릴라를 오버랩되게 한다. 많은 부분에서 릴라의 충동성, 날것 같은 매력, 주인공을 쥐고 흔드는 마력 등이 겹친다. 주인공 조반니는 고모에게서 자신을 찾고자 하며, 찾으면 좌절하고, 그러면서도 그녀에게서 또다시 자신을 보는 정체성의 혼란을 반복한다. 사춘기의 여정의 시작과 끝에 그녀가 있다. 그러나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와 달리, 조반나는 그녀로부터 빠져나오고 결국 그녀가 자신의 삶을 조종하는 것을 거부한다. 다행히도.
3. 어른의 거짓말. 전쟁의 시작
분별력 있는 그들의 머릿속과 지식으로 가득한 그들의 몸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무엇이 그들을 파충류보다도 못한 믿을 수 없는 동물로 만들어 버린 걸까.
거짓말. 거짓말. 어른들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자기들은 끊임없이 거짓말을 늘어놓는다.
이 가족에게는 가족같이 지내온 다른 가족이 있었고,
문제는 그 집의 부모와 ‘나'의 부모의 얽힌 치정으로 인하여 드러난다.
부잣집 딸로 교양과 우아함을 온몸에 풍기는 콘스탄차 아줌마와 그의 수다스러운 남편 마리아노 아저씨.
아줌마와 나의 ‘아빠'는 15년간을 비밀리에 서로의 정부로 지내왔으며, 엄마는 마리아노 아저씨와 음란한 행동을 하는 것을 ‘나'는 목격하고 만다.
조반나에게 닥쳐온 사춘기 십대의 불안과 어른들의 부정과 거짓된 세계는 정면으로 부딪히며 모든 것을 파괴한다.
4. 사춘기
- 나는 이제 순수한 아이가 아니었다. 생각 이면에 또 다른 생각이 있었다. 나의 유년 시절은 끝났다. 아무리 애를 써도 순수함은 사라져갔고 내 눈에 맺힌 눈물은 나의 무죄의 증거와는 거리가 멀었다.
-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커멓게 차려입기 시작했다. 공부 대신 닥치는 대로 소설을 읽거나 텔레비전에서 영화를 보거나 귀가 멍해질 때까지 음악을 들었다.
- 무엇보다도 말수가 줄었다. 텅 빈 머릿속에 내 목소리만 맴돌 뿐이었다.
- 불안과 추함의 연관성은 의외로 내게 위안을 주었다.
불안. 혼돈. 자기파괴 욕구. 좌절. 절망. 흥분과 충동. 분노. 쾌락의 추구. 섹스. 변덕과 즉흥성.
정돈된 세상을 뚫고 나와, 거짓된 세계를 접하게 되는 사춘기 소녀의 불타 재가 되어버릴 것 같은 내면 세계.
이 단어들 말고 또 어떤 설명을 덧붙여야 할까.
주인공 조반니가 겪어나가는 감정들이다. 아주아주 사소한 행동과 일련의 사건에도 작가는 조반니에게 이런 심리의 묘사를 입힌다.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도 십대의 미칠 듯한 감정상태를 표현해 내는 작가에게 진실로 존경을!
5. 로베르토
- 하지만 로베르토를 보는 순간,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어떤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전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도 가슴 속에서 격렬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내 삶 전체가 바뀔 거라는 것을 알았다.
- 로베르토의 ‘너 참 예쁘다'는 그 세 마디가 계속해서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그의 목소리를 만끽했다. 그의 말은 나를 부활하게 만든 비밀의 주문 같았다.
역시 전작에서의 남자주인공 ‘니노'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
조반나가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는 로베르토는 이 작품에서 신성과 인성, 완전함과 불완전함을 왔다갔다 한다.
온통 섹스만을 바라고 그녀를 따라다니는 시시껄렁한 남자들 사이에서 차별적인 로베르트를 통해서 조반나는 성장하고 자신감을 되찾는다.
그러나 그와의 관계 역시 단순하진 않다. 조반나는 그를 사랑하지만 그에게는 약혼녀 줄리아나가 있고, 조반나는 그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평생 그들 곁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내면의 거대한 욕망을 마주하기도 한다. 로베르토에 대한 사랑 역시 온전하지도, 안정되지도 않은 관계이며 사랑인 것이다.
6. 팔찌
- 언제가부터 나는 문제는 팔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팔찌에는 이 사건으로 인해 야기된 복잡한 감정들이 스며들어 있어서 팔찌를 넣어놓은 서랍을 열지 않아도 존재감이 느껴졌다.
- 팔찌의 보석과 금속의 광채가 고통을 발산하는 것 같았다.
- 로사리오가 욕실에 갔을 때 나는 팔찌를 풀어 침대 옆 바닥에 내려놓았다. 팔찌가 불행한 운명의 선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팔찌는 이 책에서 마치 그 자신이 생명을 지니고 있고, 운명을 가지고 있기라도 하듯 거의 모든 등장인물들의 손목을 왔다갔다 하며 그 소유권을 이전하고 다닌다. 빅토리아 고모에서, 나에게서, 아빠의 정부에게서, 빅토리아 고모의 대녀에서, 다시 나에게로.
이 팔찌의 오감을 통해 어른들의 추악한 욕심과 욕망의 민낯이 보인다. 자신들의 이득과 기분과 욕망에 따라 이용하고 빼앗고 주고 빼앗고를 반복하는.
조반나는 처음에는 팔찌를 원했지만, 결국에는 내버린다. 마지막 장면에 자신의 ‘처녀성'을 쓰레기처럼, 쓰레기같은 ‘로사리오'에게 내팽개치듯 줘버린 후, 그 침대 옆에 내버리고 온다.
마치 ‘이로써 네 맘대로 우릴 농락하던 시대는 끝났어. 내 삶은 내가 결정할 거야’라고 팔찌에게 선전포고를 하듯.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도 세상에게도 거짓으로 자신을 절망하게 만들었던 어른들을 향해서도 이와 같이 선전포고를 하며 소설은 끝난다.
- 다음 날 나는 이다와 함께 베니스로 향했다. 우리는 기차에서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어른이 되기로 약속했다.
By 밤호수
엘레나 페렌테의 성장소설.
소녀 조반나의 열 세살로부터 시작되는 이 소설은 스스로에 대한 열등감과 자존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십대의 혼돈의 소용돌이 가운데에서 시작된다. 모든 것이 평온하고 안정되고 완벽해 보이는 ‘잘 세팅된' 분위기 속. 태풍의 눈 한가운데에서 시작되는 열 세살. 십대의 시작과 함께 안정은 파괴되고 거짓은 진실을 덮고 균형은 깨진다.
그리고 십대는 자신만의 정체성과 생명력을 찾기 위해 혼돈한다.
읽다보면 무엇이 정상이고 비정상인지, 아이들을 가리켜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어른들의 삶에 드리워진 삶의기준은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이 혼란 사이에서 답을 찾기 위한 조반나의 여정은 결국 ‘답을 버리는 것'으로 끝나버린다.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그러나 결국 어른이 되는 길을 택하는 조반나.
문화나 배경이 우리와는 너무도 다르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당연히 있지만, 십대에 만나는 세계의 충돌의 본질은 같다. 우리의 십대는 어떠했는가. 나의 십대는 어떠했는가. 다시 돌아가고파 하기에는 너무도 치열하고 아팠던 우리들의 십대를 새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