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판 위에서
그래. 내가 사랑하는 헤세는 바로 이 느낌이었어.
'데미안'과 '유리알 유희'와 '싯다르타'를 좋아하지만,
내가 푹 빠져든 첫 헤세는 바로 내 감성과 그리움의 끝의 끝까지 만나게 해 주는 이 느낌. 바로 이런 작품들이었지.
헤세의 책 세 권을 동시에 읽고 있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헤세, 사랑이 지나간 순간들'
'헤르만 헤세, 음악 위에 쓰다'
여기저기서 읽었던 글도 있고 좋아하던 글도 있지만 이 아름다운 책 세 권을 동시에 소장하고 나니 무엇부터 읽을지 몰라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헤매고 있다. 바빠서 한꺼번에 많이 읽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이런 책들은 원래 단 한 줄을 읽더라도 음미하며 느끼는 것이 '완독'보다 훨씬 중요한 법이다. 단 한줄, 단 한 문장, 단 한 문단, 단 하나의 글의 기쁨을 모르는 자라면 과연 헤세의 이런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까.
꿈의도서관에서 지난번에 했던 헤세 강의 때에도 언급했듯이, 헤세의 문학세계는 크게 두 갈래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하나는 그의 소설들의 영원한 주제인 '자신을 만나는 길' , 그리고 또 하나는 그의 영원한 그리움, 청춘과 유년과 자연과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사랑이다. 사실 그 둘을 분리해서 볼 수는 없다. 이 두 가지는 겹쳐졌다가 분리되고, 분리되었다가 다시 오버랩되면서 헤세의 문학세계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친다.
헤세가 소설을 쓸 때 딱 자리에 앉아서 '작가 헤세'로서, '소설가 헤세'로서 고민하고 고뇌하며 아주 진한 커피 한잔과 함께 글을 써갈 것 같다면, 헤세의 이런 단편이나 사색의 글들은 '여린 인간 헤세' '소년 헤세' '청춘의 헤세'로 돌아가 정원 한가운데 벤치에 앉아서 옛시절을 생각하며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코비드로 인한 오랜 격리가 끝나고,
오랜만에 꽃비 날리는 봄날씨.
바닷가에 앉아서 이 글을 읽었다.
'헤세, 사랑이 지나간 자리들' 중에서 첫 이야기 '빙판 위에서'였다.
밀리의 서재에서 얼마 전 읽고 잊지 못하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무척 춥고 긴 겨울이었다'로 시작하는 짧은 이야기.
아름다운 슈바르츠발트의 강의 꽁꽁 얼어붙은 빙판, 동네의 소년과 소녀들은 얼음을 지치고 그 겨울바람 사이사이에는 설렘과 연모와 첫사랑의 설렘들이 가득하다. 헤세는 그 소년시절의 겨울을 기억하며 그시절 꿈꾸던 것들을 추억한다.
갖지 못했던 '할리팍스' 스케이트 한 켤레의 동경.
어느 소년이 동네에서 아름다운 소녀에게 한 대담한 키스의 소문.
소년들은 '얼음판에서 시간을 보내며 소녀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녔고, 그녀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나는 아무 관심도 없는 듯 홀로 얼음을 지치며 놀았지만 그 대담한 키스의 소문에는 '머리끝까지 피가 치솟았다.'
- 이것은 낯설고 밀폐된 세계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리였고 신비스럽고 시적인,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을 내포하고 있었다. 또한 은밀한 감미로움, 몸서리쳐지도록 유혹적인 세계였다.
기억하는지?
그대들에게는 이런 세계가, 이런 시기가 없었던가?
그 세계를, 그 소녀의 시절을 이 이상 어떻게 표현할까.
나는 빙판에서 소년들과 감미로운 시선을 주고받은 적도, '영광입니다'라는 손동작으로 함께 얼음을 탄 적도 없지만, 대신 나의 소녀시절에도 그런 유혹적이며 은밀한 감미로움의 세계가 분명히 있었다. 짧은 거리의 걸음 하나에도 소년이 뒤에 있다는 사실에 온 몸이 움츠러들도록 신비스럽고 감미로웠던, 두려웠던 그 세계가.
땀이 가득했던 소년의 손악수와 함께 느꼈던 슬픈 눈빛도 기억하고 있다. 인생에서 사랑은 십대의 사랑밖에 없을 거라 믿었던, 로맨스 만화책에 흠뻑 빠져있던 그 시절이 있었다.
- 몇 년이 흐른 후 내 꿈은 실현되었고 그녀의 붉은 입술에 입맞춤을 할 수 있었다.
함께 얼음을 타던 아름다운 소녀와 몇 년 후 입맞춤도 하지만, 헤세의 기억은 입맞춤하던 그 '몇년 후'가 아닌 감미롭고 신비스러우며 두려움이 가득하던 '사춘기 시절'에 머물러 있다.
- 사춘기를 몇 해 앞둔 소년의 사랑 능력은 두 성을 내포할 뿐 아니라 감각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을 내포하고 있다. 만년에 이르러서도 선택받은 사람들과 시인들에게만은 이따금씩 되돌아오는 사랑의 마력과 동화 같은 변신력을 모든 것에 부여해준다.
우리 모두에게 그 마법같은 시간은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것이 찰나일지언정, 해가 뜨고 지는 짧은 하루였을지언정,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을지언정, 우리 모두에게 그 순간은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 시절은 헤세에 의하면 '선택받은 사람들과 시인들에게만은' 이따금씩 되돌아온다.
아. 나는 선택받은 사람임에 분명하다.
사춘기 시절의 설렘과 미세한 떨림의 감정이 지금도 헤세의 글과 함께 이렇게 되돌아와 '사랑의 마력과 동화같은 변신력을 모든 것에 부여'하고 있으니 말이다.
불과 다섯 장의 단편인지 수필일지 모를 헤세의 글에 모든 것이 마법처럼 변해버렸다. 이 순간만큼은 '데미안'의 헤세는 나와 멀리 있는 사람이다. 다만 수줍던 소년 헤세가 지금 내 주변을 맴돌며 나와 끊임없는 교류를 나눈다. 완전히 일치된 감정을 맛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이러니 내가 헤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나에게 '사랑이 지나간 순간들'을 되돌려주는 이 마법같은 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