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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호수 Mar 25. 2022

애정의 빨간펜

에세이 클럽 2기 '1주'를 마치며.

 코비드에 걸린 딸아이 덕분에 오랜만에 베이킹을 했다. 아, 이 문장은 논리적으로 비문일 수 있겠다. 첫번째, 내가 하는 것은 '베이킹'의 수준이 아니고, 두번째, '오래전에'도 제대로 베이킹을 한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튼 소위 '베이킹'이라고 하는 것을 하기 위해 난리법석을 피웠다. 시작도 하기 전에 재료를 꺼내다가 달걀을 세 개나 깨뜨렸다. 달걀이 깨지는 순간은 '탁'하며 경쾌하지만 그 후의 뒷처리는 전혀 경쾌하지 않다. 바닥을 닦아내고 겨우 설탕과 달걀을 풀어 휘핑하고, 마른 가루들을 체에 쳐 내리려는데, 아뿔싸! 베이킹파우더가 없다. 시나몬 가루 정도라면 없어도 지장이 없지만 '베이킹파우더'가 없다니! 이건 흡사 짜장면에 전분가루가 없는 것이고 짬뽕에 고추기름이 없는 것과 같다.


 당황한 나는 이곳저곳에 메세지를 보내 '청소용 베이킹소다는 있는데 대체해도 되냐'고 묻지만 답이 없다. 인터넷으로 찾아봐도 된다는 소리는 없다. 베이킹소다에 타르타르가루를 넣어야 한다는데 베이킹파우더도 없는 집에, 타르타르인가 뭔가 하는게 있을 리가 있나! 할 수 없이 대충 때려녛고 오븐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결과물은 역시, '빵'이 아닌 '떡'이 되었다. 나는 또다시 '베이킹'을 한 것이 아니라  ‘가장 맛없는 떡을 만든 셈이 되고 말았다.


 가끔씩 생각한다. 요리를 할 때 누가 옆에서 첨삭을 해주면 좋겠다. 그건 좀 덜 넣고, 물은 더 넣고. 우리집에 오는 손님들은 전부다 내 옆에서 요리에 대해 거든다. 그러다보면 답답해 하다가 어느새 손님이 나 대신 하고 있긴 하지만. 나의 요리나 베이킹에 설탕 한 스푼 더, 육수 십분 더, 베이킹파우더 미리 사다 놓기, 오븐 예열할 것. 누가 이런 것을 빨간 줄 긋고 교정해 주면 좋겠다. 그러면 요리하기가 한결 수월할텐데. 그래도 요즘은 유튜브 요리채널에서 그 '첨삭'의 역할을 많이 해 주는 게 나같은 사람에겐 참 다행이다. 그럼에도 유튜브에서 놓치는 행간의 실수들은 일대일 첨삭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육아도 마찬가지다. 나는 오은영 선생님과 살고 싶다. , 필요할  TV프로그램처럼 갑자기 ! 나타나서 '이럴땐! 이렇게 하세요!'라고 말하는 오은영샘. 친절하고 다정하면서 공감도 해주고, 그러면서 권위도 있는 육아의 첨삭자. 또한 나에게 빨간펜을  '강형욱 첨삭자' 있다면 아이들이 그토록 원하는 강아지  마리 입양도 생각해  만할 것이다.


 나에겐, 아니 우리에겐, 첨삭자가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부터 나는 첨삭에 익숙해져 있었다. 지난번 글에서도 말했듯이, 초등학교 2학년부터 6학년까지 지도해주신 글짓기 선생님은 언제나 나의 원고지에 사정없이 빨간 볼펜을 그어대곤 했다. 맞춤법부터 구조, 표현까지도 선생님의 예쁜 글씨로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선생님 글씨) 여기저기 붉은 꽃이 피었다. 선생님들이 일기장에 달아주는 매우 형식적인 코멘트와는 완전 다른, 진실의 폭격이 터지는 첨삭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선생님의 첨삭이 좋았던 것 같다.

  

  일기장 아래에 써주는 선생님들의 멘트에는 진실성이 없었다. 일기장의 코멘트는 대부분 '수진이는 참 착한 아이로구나' '엄마를 도와드린 즐거운 하루였군요' 이런 한줄의 메모였는데, 그마저 교생선생님이 와계실 때 더 다정했다. 내가 진심을 녹여서 쓴 시에는 '일기장에는 시를 쓰지 맙시다' 라고 써주신 선생님도 계셨는데 나는 도대체 왜 일기를 시로 쓰면 안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글짓기 선생님의 빨간펜은 '사랑'이었다. 빨간펜이 열정적이 되어갈수록 나의 글짓기실력도 늘어났고 외부에서 상을 타오는 일도 많아졌다. 그렇게 나는 빨간펜을 사랑했다. 이후 홀로 글을 써야 하는 순간, 홀로 수능 국어영역을 풀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순간에도 나는 선생님의 빨간 펜을 그리워했다. 어디선가 소리없이 나타나 특별히 '첫번째 자음'을 크고 둥그렇게 쓰던 글씨체로 쓱쓱 나의 맹점을 지적해주고, 격려해줄 것만 같은 빨간펜의 위로.


 얼마전 '꿈의 도서관' 클럽장 논제 클럽을 신청해 수료하는 동안 오랜만에 빨간펜의 향연을 맛보았다. 나의 담당선생님이셨던 유니님은 '빨간펜은 곧 여러분을 향한 저의 사랑과 존중입니다' 라고 첨삭 아래에 대문작만하게 (나의 느낌상) 써주셨다. 시원하게 쫙쫙 그어진 워드파일을 보면서 오랜만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석연찮은 구석이 씻겨나가고 그것을 어떻게 대체해야 하는지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반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빨간펜의 향연만큼 나의 논제실력도 쑥쑥 향상되어갔다.

 

  


 

  지금 나는 에세이 클럽을 통해서 제대로 '첨삭'을 하고 있다. 운영했던 에세이클럽 1기가 즐겁게 끝났고, 또 막바지 전자책 작업을 해나가고 있다. 1기에서는 이미 작가와 다름없던 그들의 이야기, 그들의 마음 속 깊고 푸른 이야기들을 꺼내는데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2기의 시작과 함께 이번에 나는 제대로 '빨간펜'을 꺼내들었다. 1기를 통해 많이 배워 그들은 나의 스승이 되었고, 또다시 그들은 2기의 멘토다 되어 나와 함께 제대로 '첨삭'의 준비를 마쳤다. 멘토들이 멘티들에게 해주는 첨삭은 '기대'와 '기다림'이며 내가 들은 빨간펜은 유니님이 앞서 말씀하신대로 '애정과 존중'이다.


 지난 1주일동안 여덟 분의 수강생들의 원고 이십여편에 대해 코멘트를 달고 첨삭을 해 보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바로 다시 내 멘트에 대해 대답을 해 보내곤 했다. '수정 완료' '앗 정말 그렇네요' '다시 생각해 볼게요' 등등.


- 이 문장은 숙제입니다. 읽기 편하게 다시 고쳐 보세요.


  라는 메세지도 여러번 보냈다. 어설픈 문장이 다시 깔끔하게 고쳐서 돌아올 때의 희열은, 첨삭자만이 아는 희열이다. 여러편의 글을 보면볼수록 나의 눈도 함께 성장한다. 에세이 1기를 처음 시작할 때보다 지금 더 원고를 보는 나의 눈도 날카로워짐을 스스로 느낀다. (이 점을 고려하여 1기 때는 주변의 다른 문인들께 도움을 청했다.)


  에세이 수강생들과 나는 지금 별도로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지만 태평양을 건너, wifi를 타고 엄청난 거리와 보이지 않는 전선망을 건너 글과 글이 오가며 이미 수없이 많은 것들을 공유하는 중이다. 또다시 '글로 만난 사이'다. 깊고 다정한 사이다. 첨삭과 빨간펜과 그 이면의 애정과 존중, '글쓰기'의 덕분이다.


        



 인생에도 이리 첨삭자가 있다면 좋겠다. 나의 하루에 빨간펜을 그어주고, 지지해주고 다독여주며 내일은 요 부분만 이렇게 고쳐보라고 빨간펜 선생님이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내 인생의 빨간펜 선생님의 말을 수도없이 안 듣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지지리도 그 말들을 다 애써 물리치고 귀를 닫고 내 맘대로 다른 글을 써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의 첨삭자의 말을 잘 듣겠다는 각오는 아무래도 무리한 바람인 듯 하다. 내가 누군가의 첨삭을 잘 들을 자신도, 누군가를 잘 인도해 줄 자신도 없다.  

 

 그러나 '글'이라는 세계에서는 조금은 가능할 듯도 싶다. 우리의 글은 곧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삶이 곧 우리의 글이 아니던가. 한두편의 글은, 나의 삶과 무관할 수 있으나 매일 쓰는 글은 나의 삶을 담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글에 스스로 첨삭자가 되고 싶고 누군가의 첨삭을 받고 싶으며, 나의 첨삭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글에 성심성의껏 빨간펜 선생님이 되고 싶다. 글 속에 있는 그들의 삶을 건드릴 수는 없으나, 좀 더 깨끗하고 이해하기 쉬운 그들의 '문장'과 '구조'와 '표현' 속에서 그들의 삶의 이야기가 좀 더 녹진하게 무르익을 것임은 자명하지 않는가.

 

  그렇게 나도 어릴 적 나의 글짓기 선생님처럼 나만의 빨간펜을 장착한다. 내 마음 속 진실의 빨간펜, 공감의 빨간펜, 존중의 빨간펜. 그리고 글로 만나는 그들을 향한 '애정의 빨간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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