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작가로 가는 길
누구에게나 수필은 심적 나체다.
그러니까 수필을 쓰려면 먼저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미'가 잇어야 할 것이다.
정당한 견해에서 한 걸음 나아가 관찰에서나 표현에서나 독특한 자기 스타일을 가져야 할 것이다.
- 이태준 '문장강화' 중에서
새벽 기상을 하라.
많이 읽어라.
많이 써라.
필사하고 기록하라.
블로그나 인스타를 다니다보면, 공격적인 글쓰기의 습관과 방법들이 많이 제시된다. 읽기만 해도 부담스러운 그런 방법들을 또한 너무나 잘 지켜내시는 분들도 많이 만난다.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인 약 2년 전만 해도 이런 세상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책을 많이 읽고, 이토록 글을 열심히 쓰고, 이렇게 새벽기상을 하고, 필사를 하고, 기록을 하고, 1년에 백 권 이상의 책들을 읽어나가는 줄이야! 상상도 못했던 세상이 있었다.
나는 체질적으로 게으른 사람이다. 성격도 느긋하고, 주로 '대답만 잘 하는'사람이기도 하다. 식구들은 나에게 뭘 시켜놓으면 대답은 어찌나 잘하는지 뭐든지 바로 할 것 같지만 그때뿐이라 한다. 그래서 묻고 또 묻고 채근하고 또 채근해야 일이 끝난다 한다. 나도 안다. 하루의 시작도 그렇다. 새벽같이 일어나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만 아이들이 가고 나면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간다. 운동을 할 때도 있지만 주로 티비를 보거나 책을 보거나 하다가 또 뒹굴뒹굴. 보통 오후 두세시가 되어서야 그날의 일. 글쓰기 블로그 책읽기 등을 하기 위해 테이블에 가서 앉는다. 커피 한잔을 그제서야 마실 때도 많다.
나의 하루가 시작할 때, 한국에서도 소식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미라클 모닝'의 바로 그 시간. 바로 새벽 네 시 반이다. 블로그나 인스타로 새벽기상, 새벽 필사의 흔적들이 올라오고 꿈의도서관 미라클모닝의 알람도 울린다. 대단한 분들이다. 보기만 해도 숨이 가쁘고 내가 대신 졸립다. 오늘도 또 인친들의 읽은 책들의 리스트들이 인스타피드를 가득 채운다. 나도 잠시 읽고 있는 책을 올려야하나 생각하다가, 며칠 전에 올렸지. 그리고 그 책을 지금도 읽고 있지 라는 생각에 접는다. 난 언제나 다양한 책을 읽는 사람임과 동시에 언제나 같은 책을 읽는 사람. 나는 나의 페이스가 있을 뿐. 이라는 생각에 또 한번 생각을 접는다.
블로그를 하기 전, 나의 독서 생활과 나의 글쓰기 생활은 어떠했던가.
그때와 지금. 완전히 내 삶의 패턴과 방향이 180도 달라진 전후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언제나 책 읽는 사람'이었다. 블로그를 하기 전이든 후든 상관없이. 미국에 있기에 다양한 책을 구하기는 힘들었던 영향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책을 반복해서 읽는 성향이기도 했다. 그래서 열 번 스무 번씩 읽은 책들이 많다. 오늘도 한 권의 책을 끝내기. 보다는 이미 읽은 한 문장이나 한 페이지에 꽂혀서 또 하루를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따라서 요즘 트렌드나 추세에는 민감하지 못했고 방대한 양의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책들을 내 식으로 음미하고 소화하는 것에 강하다.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매일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쓰고 싶을 때 쓰지 않는 것은 고통스럽다.
즉 나는 읽고 싶은 글을 읽고, 쓰고 싶을 때 꼭 써야 하는 스타일의 사람이다.
블로그와 인스타 시작 후 보다 많은 '정보의 홍수'와 '트렌드의 세계'를 접하고 난 후, 때때로 글쓰기 강좌나 수많은 자기계발러들을 보면서, 나 또한 방대한 책을 씹어먹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나 또한 매일매일 머리를 쥐어짜고 글을 써야만 하는가 싶다. 글은 읽는 만큼 배출되는 것이라 하지 않는가. 글은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고등학교 때도 취약했던 '엉덩이로 공부하기'를 이 나이 되어서 글쓰기를 위해 해봐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빨리 두 번째 책 세 번째 책 네 번째 책도 내야 하는데 더 많은 양의 글을 매일매일 양산해 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느샌가 내 안에도 조급함이 생겼다.
더 많은 책들을 접하려고 마음이 급해질 때도 있다. 주기적으로 꼭 꼭 읽어주던 책들을 처음으로 멀리하고 있다. 자기 전에 꼭 읽던 시집들을 안 읽은지도 꽤 되었다. 신영복 님의 책이나, 빨강머리 앤, 백석이나 한용운의 시집, 몇 권의 평전들을 늘 가까이 했는데 안 읽은지가 꽤 되었다. 새로운 책들을 읽기 위해서였다. 글도 어떤 식으로든 하루에 하나는 써야 할 듯 싶어 제목이라도 써놓기도 한다. 뭔가 마음의 조급함이 나의 독서생활과 글쓰기 생활의 패턴을 바꾸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내가 좋아하던 한 구절의 글을 발견하고. 눈물이 또르르. 그 순간을 느꼈다. 그래. 이거야. 정말 글이 쓰고 싶어서 써내려갈 때의 기쁨, 숨을 참고 있다가 내쉬는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바로 이거야. 세상에는 이런 독서도 있는 법이야. 세상에는 이런 글쓰기도 있는 법이지. 모두가 그렇게 밥먹듯이 수많은 책의 포식자가 될 필요는 없지. 모두가 그렇듯이 매일매일 글을 쓸 필요는 없는 거지.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고 매일같이 필사를 할 필요는 없는 게지. (물론 한 번도 매일 그래본적은 없지만)
인내와 끈기로 가는 독서 생활, 글쓰기 생활을 위해 내가 나의 패턴을 바꾼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 감사한 일이리라. 그러나 나의 마음 속에서는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가 아닌 '조급함' 때문이었음을, 뒤쳐지면 안된다는 마음 때문이었음을 인정하고 인식한다. 그것이 진실이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니 그에 걸맞아야 한다는 조급함. '에세이 강사'라는 타이틀을 달았으니 뒤쳐지면 안된다는 조급함.
나는 조급한 것이었다.
진짜 작가로 가는 길. 진짜 글 읽는 사람으로 가는 길에는 수없이 많은 길이 있다. 어쩌면 이 시대는 한 가지 길만 자꾸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소화시키기도 전에 읽기를 강요하고, 읽은 후에 다시 소화되기도 전에 배출을 하라는 것. 그래야 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다. 한 권을 백 번 읽고 책 백 권을 쓸 수 있는 사람도 있고, 책 천권을 읽어도 한 권 쓰기 힘든 사람도 있는 법이다. 진짜 나에게 필요한 것에 집중을 하자.
나는 나를 다독인다.
너에게 필요한 건.
한 순간의 감동.
진정 문학을 즐기고 있다는 순간의 반짝임.
그 반짝임 속의 눈물.
순간에의 집중.
그 순간을 통한 글쓰기.
쓰기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위한.
이태준 님이 말씀하셨듯이
'나만의 풍부''나만의 미'를 장착하기 위한 노력.
나의 길을 가자.
나의 글을 쓰자.
오늘도 나는 그렇게 나만을 위한 시간. 나만을 위한 오롯한 순간을 찾는다. 그렇게 갈 것이다.
사실 노력하는 척 한다고 되지도 않을 것임을.
새벽기상. 1년 책 삼백권. 매일 글쓰고 필사하기.
거꾸로 물구나무서기를 해도 어짜피 발끝도 쫓아갈 수 없음을.
나는 이미 알고 있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