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밤호수 Oct 20. 2022

그녀의 전자책 만들기 이야기

진짜 내 이야기로 에세이 쓰기 네 번째 글.

이 매거진의 첫번째 글에서 <내 친구 T의 책쓰기 글감 찾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었다. 책은 쓰고 싶은데(특별히 '책'이다. '글'한편이 아닌), 써놓은 글도 없고, 글감이 없다고 투정부리던 내 친구. 무에서 유를 찾기 위한 생각의 과정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써놓은 글은 많은데 이게 책이 될 것 같진 않다. 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보려고 한다. 블로그에 이런 분들이 많다. 블로그나 다른 sns를 통해 쌓아놓은 글은 많은데, 막상 '책'을 쓴다고 하면 뭘 써야 하나. 지금까지 쓴건 책이 될 이야기는 아니야 라고 생각하는 경우. 그것을 어떻게 책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지. 사실 그게 책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바다. 그러나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짜내면, 그리고 무엇보다 써놓은 글이 '상당히' 많으면 가능한 이야기다. 바로 그 경우 이야기를 한다.




    글은 계속 써왔어요. 블로그에 500일 글쓰기를 하고 있는 걸요. 벌써 200일이 넘게 매일 글을 쓰고 있어요. (지금은 300일도 넘으셨을 것이다)


지난 ‘안녕 나의 에세이’ 2기에 등록하신 '해바라기쌤'의 말씀이었다. 매일매일 글을 쓰다니! (물론 주변에서 이런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냥 아무 글이나 끄적이는 거랑, 본인이 맘 먹고 앉아서 기승전결을 갖춘 한 편의 글을 매일 써나가는 것은 다른 얘기다! 완전히! (존경한다.)

   

    그런데 책을 쓰는 건 또 다른 얘기에요. 전자책을 쓴다니,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써놓은 글도 많은데 어떻게 책으로 만들어낼지도 모르겠고.  

에세이 클럽에서 '전자책'을 만들어보자고 으쌰으쌰를 할 때, 그녀는 난색을 표했다. 책을 내고 싶기는 한데 자신은 그럴 만한 소재도 없고, 무엇을 써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 중에 기우였다. 그녀는 쓸 얘기가 많기도 많았다. 하고픈 이야기가 넘치기도 넘쳤다. 그렇게 자신 안에 소재가 넘치니 <매일 글쓰기>가 가능한 것이었다. 혹은, <매일 글쓰기>를 하다보니 소재 찾는 데에 도가 튼 덕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그녀가 넘치게 해 놓은 이야기는 블로그에 몇 백편이나 있었으니, 문제가 될 게 무엇이겠는가. 그 이야기들을 어떻게 카테고리로 묶어야 할지가 문제였을 뿐이다.

 

    목차를 한번 만들어보세요.   

    목차요? 저는 목차가 뭔지도 모르는데요.  


라고 또 한번 그녀는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블로그 글, 또 그녀가 써내려가는 글들은 큰 의미에서 이미 목차에 의해 흘러가고 있었다. 그 흐름을 잡아내기 위해 에세이클럽의 모든 학생들은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눈을 장착하고 그녀의 작품들을 살폈다. 그녀가 뽑은 글의 제목들을 한 페이지에 놓고 목차화 하는 작업이다. 그렇게 우리는 크게 세 가지 키워드로 글들을 나누었다.


1) 서울로 시집오기까지의 이야기

2) 피아노 선생님으로서의 이야기

3) 그리고 이후 현재의 꿈에 대한 이야기


처음에는 앞에 두 항목의 글이 대부분이었다. 3)을 붙여준 건 회의 끝이었다.

 

- 해바라기쌤 님. 서울로 오고 싶어서 결국 서울로 시집을 오셨고, 피아노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결국 되셨는데, 그 다음 이야기는 없어요?


우리는 그 다음 그녀의 꿈이 궁금했다. 그녀는 눈이 크고 검은 머리가 풍성한 미인이었다. 게다가 줌으로만 만나서 실제로 만난 적은 없었지만 글에 의하면 키가 173에 달하는 늘씬한 몸매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우리의 줌 수업이 시작할 때 때때로 그녀는 '어떻게 하면 사진에 잘 찍히는가'등을 알려주며 우리에게 모델 포즈 수업을 해주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사실은 '큰 키'때문에 평생 컴플렉스였다니. 특히 어린시절에는 동생과 비교당하며 '예쁘지 않다'고 생각하며 자랐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 '시니어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이제는 스스로 예쁘다고 주문을 걸고, 또 모델이라는 새로운 꿈을 향해 나간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우리는 그것을 세번째 챕터에 써야 한다고 졸랐다. 그렇게 그녀의 새로운 챕터가 만들어졌다. 씨니어 모델을 준비하는 50대 여성의 일상! 그 얼마나 궁금한 일인가.


- 해바라기쌤 님은 귀여운 욕심쟁이세요. 그렇게 서울로 올라오고 싶었는데 결국 결혼해서 올라오셨고, 피아노를 그렇게 치고 싶어했는데 결국 스무살이 넘어 시작한 피아노로 학원도 차리시고!

- 욕심쟁이라기보다는 '욕망'같아요. 그녀의 사랑스러운 욕망!

- 이제 미모도 사라질 50대에 혼자서 '매일매일 예뻐지고 있다'니 정말 욕심꾸러기 맞네요!


그녀를 향한 찬사가 쏟아질 때 그 말들은 이미 그녀의 책을 만들고 있었다.

- 욕망덩어리. 그녀의 사랑스러운 욕망. 귀여운 욕심쟁이. 매일매일 예뻐지고 있어요.

   

챕터가 크게 세 개로 결정이 되고, 제목도 쏟아졌다.

챕터 1. 서울로 시집가고 싶었다.

챕터 2. 피아노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챕터 3. 시니어 모델이 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을 꿰뚫는 키워드는 바로 ‘욕망’이었다.

‘욕망’하면 어떤가. 조금은 거칠고 부정적인 느낌이 있을까. 그래서 <그녀의 사랑스런 욕망>으로 제목을 바꾸었다. 그렇게 가제를 정해놓고, 또 크게 세 챕터로 나누어놓고 나자, 군데군데 빈 목차들이 보였고, 집어넣어야 할 이야기들도 눈에 띄었다. 작업은 활기를 띄었다. 에세이 클럽 학우들이 매번 계속된 ‘편집회의’를 통해 열띤 토론을 벌이며 그녀의 글에 생기를 입혀주었다.


마지막 순간. 치열한 제목 접전 끝에 제목은 <57세. 매일매일 예뻐지는 중입니다>로 정해졌다. 그 제목 역시 그녀의 사랑스런 욕망의 일부이다. 챕터 제목도 '욕망'보다는 '소망'이 낫다 해서 바꾸었다.

그렇게 완성된 전자책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여기저기 쓰고 모아둔 이야기들을 몇 개의 빛나는 색실에 연결해 줄줄이 꿰었더니 그녀의 책이 아름다운 목걸이처럼 탄생된 것이다. 물론 해바라기쌤의 글솜씨와 재밌는 글들이 기본이 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녀의 글은 매력적이다. 본인은 아주 진지하고 씨니컬한데 너무 재밌다.)

 

그녀의 아름답고도 사랑스런 ‘욕망’은, 혹은 '소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주욱 계속될 것이고, 이 책의 챕터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그녀는 시니어모델이라는 욕망을 이룰 것이고, 또다른 꿈을 욕망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그때도 매일매일 예뻐지고 있을 것이며, 그 욕망들은 다시 글이 되고 있을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 완성되고 전자책으로 출간된 그녀의 글 목차는 다음과 같다.

<57세, 매일매일 예뻐지는 중입니다>


추천사

프롤로그


1부-소망 하나(서울 여자)

* 서울 아이의 빨간 구두

* 시골 학교 선생님 선물은 날계란과 3단 찬합 도시락

* 아버지와 서예 도구

* 어머니와 술

* 중학교 때 처음 먹어본 김밥

* 성교육이 지나치면

* 번개 치는 날 들판에서

* 서울로 시집가고 싶었다

* 수녀원보다 결혼


2부-소망 둘(피아노 선생님)

* 20대에 피아노 처음 배웠다

* 피아노 선생님이 되려면

* 환상이 깨졌다

* 우리 집은 피아노학원

* 피아노 첫 수강생

* 오르간은 전용 슈즈가 있었다

* 남동생 소개팅

* 은영이는 제주에서 보컬 활동

*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공연

* 80세 친정어머니와 피아노


3부-소망 셋(글 쓰는 시니어 모델)

* 아이 입시에 집착한 엄마

* 택시비 40만 원의 행복

* 말없이 이사 간 이웃집 엄마

* 마음이 아픈 사촌 언니

* 훌라후프로 다이어트하기

* 컴퓨터 울렁증 이야기

* 조급한 블로그 쓰기

* 친구 강아지 병원비(강아지 응급실 입원)

* 외모 가꾸기

* 시니어 모델 도전해 보기

* 블로그 쓰기 멈추지 않기


에필로그


매거진의 이전글 내 최초의 에세이 '일기장'의 진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