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상생각 Feb 19. 2020

하필, 식물인 이유

누구에게라도 삶에는 생기가 필요하다

 

 나는 식물파괴자다. 초록빛 싱그러움에 반해 이름까지 지어가며 매일 돌봤는데, 그 애정이 과했던 건지 내가 데려온 식물들은 종류를 막론하고 하나같이 생을 마감했다. 어릴 땐 식물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랬다 쳐도, 대학생 때 ‘폴론’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돌보던 선인장마저 죽어버리자 식물파괴자라는 별명에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폴론의 죽음 이후 나는 내 인생에 식물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엄마와 달리 돌보는 재주가 없는 나에게 올 식물만 불쌍할 테지.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인 건 TV나 식물이나 매한가지라 여겼다. 그러다 졸업 후 서울에서 직장과 집을 구하고 나서 깨달았다. 삶에 있어 TV와 식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같지 않았다. 


 첫 회사의 출근이 갑작스럽게 정해진 탓에 급하게 회사 근처에 방을 구했다. 재개발구역 안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오래된 주택들 사이에는 빛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이후에 돈을 조금 모아 더 나은 곳으로 이사를 가긴 했지만 빛이 들지 않는 반지하 신세인 건 여전했다. 사회초년생의 지갑으로 구한 서울의 내 공간은 딱 그 정도였다. 몇 안 되는 짐을 풀고 내 몸을 뉘이면 꽉 차는 어두운 방. 여유공간이 없어 내려놓지 못하는 여러 마음을 끌어안고 살던 그즈음부터 나는 다시 식물을 갈망했다. 

 

 이상했다. 하필 식물이라니. 나는 식물 말고도 없는 게 많았다. 누가 돈을 줄 테니 필요한 걸 마음 놓고 사라고 말한다면 나열할 수 있는 물건이 수도 없었다. 게다가 식물을 돌보는 재주마저도 없는 나였다. 그런 내가, 꼭 필요하지도 않은 식물이라니. 

 

 본가 아파트의 베란다에 엄마가 꾸려놓았던 정원이 떠올랐다. 본가 아파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사 온 지금의 집으로, 내 기억 속 여러 채의 우리 집 중에서도 처음으로 여유공간이 충분한 곳이었다. 그리고 이전의 어떤 집보다도 해가 가장 잘 들었다. 그런 집에 도착해서 엄마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베란다에 식물을 사다 놓는 것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없는 게 많았지만, 식물 먼저.


 엄마가 아무리 바빠도 때에 맞춰 물과 영양제를 준 덕에 식물들은 언제나 초록빛 생기를 머금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종류 또한 늘어 베란다는 식물로 꽉 차서 작지만 풍성한 정원이 되었다. 시키는 대로 화분의 빈 영양제 통을 뽑아내던 나는 햇빛이 내리쬐는 베란다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며 물을 뿌리던 엄마 뒷모습에 비친 생동감을 느꼈다. 그건 이전의 어느 집에서도 본 적 없는 충만한 모습이었다.


 TV는 얼마든지 다른 것들로 대신할 수 있다. 게다가 그런 것들은 햇빛과 물 같은 보살핌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그늘진 모퉁이에 욱여넣기도 편하다. 하지만 삶에 생동감을 채우지는 못한다. 작은 테이블에 새겨진 식물 그림이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해 줄지언정 식물의 생명력을 대신할 순 없는 것처럼. 


 누구에게라도 삶에는 생기가 필요하다. 식물파괴자의 집에도 해가 들고 화분을 한 두 개쯤 둘 공간이 있어야 하는 건, 그래서다. 누가 알까? 그런 집에서라면 식물파괴자라는 별명을 벗어던지고 나도 식물도 행복한 나날을 보낼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의 이전글 [책리뷰] 외로움으로 사랑을 예찬하는 습지로의 초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