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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생각 Feb 15. 2020

[책리뷰] 외로움으로 사랑을 예찬하는 습지로의 초대!

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치앙마이에서 지낸 지 거의 두 달이 다 되어갈 무렵 만난 책.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중 "세탁기를 돌린 것도 잊고 책에 빠져들 것이다"라는 다소 식상한 문구가 있는데, 심드렁하게 첫 장을 펼쳤던 나는 문장 그대로 잠도 잊은 채 하루 만에 다 읽어버리고 말았다. 아름다운 문장에 눈을 뗄 수 없는데도 이야기의 흐름이 너무 흥미진진해서 손가락이 다급하게 다음 장을 넘겼다. 그렇게 나는 델리아 오언스가 초대하는 습지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져들었다.


노스캐롤라이나의 해변과 습지를 배경으로 미스터리 살인사건과 로맨스가 만나지 않을 것처럼 나란히 달리다가 서서히 좁아지며 마침내 법정에서 만난다. 기우는 줄도 모르게 구부러지다가 어느 순간 어느 지점에서 만나는 두 갈래의 물처럼. 그리고 완벽하게 꽉 닫힌 결말로 끝난다.


아니 오히려 올챙이들한테서 배운 교훈이 더 쓸모 있었다.
앞길을 막지 말아야 해, 눈에 띄지 않아야 해,
양지에서 그늘로 화드득 도망쳐 숨어야 해.


작가가 동물학을 전공하고, 동물행동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분이라 그런지, 자연을 '덕질'하는 사람이 모든 덕력을 끌어모아 완성한 정수를 보는 듯했다. 물론 나 같은 독자는 (자연사랑도 일종의 덕질이라고 볼 수 있다면) 그 덕질의 수혜를 아주 톡톡히 본 셈이다. 자연에 대한 작가의 사랑이 문장마다 넘쳐흐르는 덕분에 곤충과 파충류를 질색하는 나까지도 감화되어 '올챙이라니, 너무 사랑스럽다'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내가 아는 습지 생태계란 우포늪 정도가 전부지만 작가가 사랑을 담아 세세하게 묘사한 덕분에 가보지 않은 습지의 모습과 본 적 없는 다양한 생물을 상상하는 재미도 있었다.


삶을 살아가며 보관할 수 있는 크기로
감정을 잘게 자르는 데는 도가 텄다.
하지만 외로움을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작가는 이 책이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근본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상처 받고 다시는 믿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지만 결국엔 다시 사랑을 하는 이야기.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지만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사람 역시 분명 있다는 믿음에 대한 이야기. 아무리 잘게 잘라도, 자르고 자르다 끝내 바스라진다 해도, 한 번 생긴 것은 부스러기로라도 남는다. 그리고 그 부스러기를 들어 올리는 건 결국 사람일 것이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가 뻔하다고, 촌스럽다고 할지 모른다. 안다. 이야기의 큰 맥락 중 한 갈래와 더불어 주인공들의 말과 행동에는 고전적인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겐 진부하고 촌스럽게 느껴지는 이런 이야기에 마음이 벅차오른다. 결국 사랑은 계속해서 믿는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걸, 그 덕분에 우리 삶은 조금 더 풍요로울 것이라고 말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분명 진짜 사랑을 해봤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사랑이라는 게 잘 안될 때가 더 많아.
하지만 실패한 사랑도 타인과 이어주지.
결국은 우리한테 남는 건 그것뿐이야.
타인과의 연결 말이야.

툭 건들면 바스라질 듯 건조한 게 세상살이라 촉촉한 이야기를 만나고 나면 마음이 한결 단단해진다. 무언가 시작해보기에 좋은 3월을 앞두고 이 책을 읽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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