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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티 Dec 06. 2023

말실수



매년 5월 고등학생인 큰아이는 ‘모교방문행사’라는 나름 큰 일을 치른다.


민족사관고등학교 재학생들은 모두 의무적으로 본인의 모교(대부분 출신 중학교)를 공식적으로 방문하여 후배들에게 학교를 알리고 홍보한다.

학교에서는 특별히 전국 방방곡곡 셔틀버스를 제공해 주고 월요일 하루 수업도 빼주며 민사고의 특별한 한복교복을 입고 자신의 모교를 방문하는 큰 행사이다.




중학교에서 잡아주신 홍보 시간과 귀교셔틀 차량의 시간 사이가 너무 촉박하여 불안한 마음에 아이가 설명회를 하는 후반부 즈음에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자연스레 아이가 말하는 내용이 들려왔다.


자기 딴에는 학교에 더 많은 모교 후배가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했을 말이었을게 엄마인 나는 너무 이해가 되었지만 약간 부적절할 수도, 안 해도 좋았을 말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 시험은 ‘면접이 더 중요해’를 강조하고 싶었을 터인데 자칫 잘못하면 서류성적은 하나도 안 중요해로 들릴 수도 있는 화법으로 말을 하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교실 뒤에서 듣고 계시던 진학 담당 선생님이 내용을 바로잡아 주셨다. 어쨌든 중요한 건 성적이고 학생의 본분을 다 해 열심히 공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 라면서.. 옳으신 말씀이었다.

행사가 끝나고 차 안에서 아이에게 내가 느낀 점을 얘기해 주니 본인도 아차 싶었는지 당황하면서 본인의 실수를 인정했다.

1. 이 행사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굉장히 공식적인 행사이다.

2. 너는 민사고를 대표하는 학생인데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는 실수를 한 것 같다.

3. 처음이라 잘 몰랐겠지만 다음부턴 작은 종이에 포인트만 메모해서 가는 정도의 준비는 하는 게 좋을 것 같다.

4. 하지만 말이란 건 한 번 내 입 밖에서 나가버리면 주워 담을 수 없는 것! 일단 잊어버리고 맘 편히 들어가~ 내년에 잘하면 돼!


아이 역시 이런 큰 행사가 처음이었고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엄마의 설명을 듣고 보니 자기가 너무 준비를 안 한 거 같다며, 내년에는 좀 더 준비를 잘해서 실수 없이 하겠다고 얘기하고 마무리를 지었다.

그렇게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아…. 그렇게 말하지 말걸…’ 이란 말을 되뇌는 아이를 보니 ​약 20여 년 전 일이 생각났다.




대학교 2학년 때 나의 모교 방송국에서 주최하는 ‘대학가요제’에 나가게 되었다.

그때 3명의 심사위원 중 한 분은 유명 작곡가 손무현이었고 다른 한분은 기억나지 않고 또 다른 한분은 우리 과 교수님이었다. 공교롭게도 우리 과 교수님이 방송국 담당 선생님이셨던 것이었다. 난 당연히 그 사실을 몰랐는데 대회 당일날 알고 보니 교수님이 심사위원석에 앉아계신 거였다.


우리 학교 학생들만 대상으로 하는 가요제가 아니라 ‘전국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가요제였는데 내가 대상을 탔다.

수상소감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난 정말 너무 기쁜 마음에 ‘심사위원으로 계신 교수님께 감사드린다’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이 내 입 밖으로 흘러나가자마자 난 후회를 했다.  


아차차…..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버렸구나.. 누군가는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나에게도 하나도 도움 되지 않을 말이었고 교수님에게도 어쩌면 누가 될 수 있는 말이었다. 물론 내가 제일 노래를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ㅎㅎ.


과연 난 그날 그 실수 이후로 좀 더 조심하며 말하는 태도를 가지게 되었을까? ㅎㅎ 자신이 없긴 하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부디 이번의 실수를 거울삼아 한걸음 더 성장한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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