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베티 Dec 24. 2023

다 때가 있는 크리스마스

결혼 전의 크리스마스는 무조건 데이트 아니었나?

스무 살의 크리스마스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똥손똥손 그렇게 똥손일 수 없는 나는 남자친구에게 손수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가 주고 싶었다. 색연필로 색칠도 하고 가위로 쓰고 싶은 단어들을 신문에서 오려서 붙이기도 한 나의 크리스마스 카드는 딱 만들고 나니 마치 연쇄 살인범이 세상에 보내는 경고문을 담은 데스노트와 똑 닮아 있었다. 오려 붙인 신문 속의 단어들이그런 느낌을 주었고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빨간색이 한몫 더 했다. 이런 결과물을 나을 줄 예상 못했던 나의 똥촉이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결혼 한 첫 해의 크리스마스는 잘 기억이 나지도 않는다. 2월 초가 출산예정일이었으니 아마도 배불뚝이 신세로 집에서 남편과 오붓하게 지내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들이 어릴 적 크리스마스는 분주함과 벅찬 행복감으로 가득 차 있다. 미리미리 선물을 사 두는 준비성과 아이들이 잠들고 난 후 몰래몰래 부스럭 거리며 선물을 포장하는 긴장감. 그리고 다음날 세상 더없이 행복한 얼굴로 선물을 뜯어보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 역시 느끼는 최고의 행복!


의외로 나의 어린 시절을 크리스마스 기억 따윈 없다. 종교도 없었고 생일선물도, 어린이날 선물 같은 것도 일절 없었던 가풍 때문에 그 어떤 선물도 받아 본 기억이 없다. 이벤트도 없었음은 물론!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다. 큰아이 학교 스케줄과(학교가 집과 좀 멀리 떨어져 있다 이제 막 시작되는 고3의 학원 스케줄로 인해 12월 내내 나는 이게 내 정신인가 싶은 상태로 살고 있다. 아침부터 서둘러 큰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남편과 딸과 나 셋은 핑곗김에 쇼핑도 했다. 백화점에서 인산인해라는 말을 몸소 체험한 하루였다.


크리스마스트리 없이 맞은 12월은 처음이다. 남편은 ‘둘째가 크리스마스트리 꺼내자는 말을 안 하네…‘라며 서운해하기도 했다. 케이크 없이 보내는 크리스마스도 처음인 것 같다.


하지만 억지로 일을 성사시키지 않으려 한다.

다 저마다의 때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남은 수십 년의 크리스마스를 오늘처럼 무미건조하게 보내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오늘대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생각하고,실로 오랜만에 네 가족이 함께 차를 타고 꽤 오랜 시간 함께 한 것에 그 의미를 두기로 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이거 받고 싶어~~~라고 언급조차 안 하는 이제 다 커버린 내 아이들.

굳이 몰래몰래 산타할아버지가 두고 간 듯 꾸미지 않아도 되는 크리스마스 선물조차 준비하기 귀찮아져 버린 나.

서글픈 마음을 애써 감추며 이렇게 한 자 한 자 적어보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겠다.




작가의 이전글 남겨진 자의 몫이라고만 생각했던 죽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