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나의 유일한 고등학교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면서 몹시 당황한 적이 있었다.
한창 티브이에 나오는 별로 유명할 것도 없는 한 연예인을 언급하며 그녀를 볼 때마다 내 생각이 난다는 것이었다.
외모도 약간 비슷하고 하는 짓이나 성격이 아주 비슷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너무 당황스러웠던 게 바로 며칠 전 남편과 티브이를 보면서 '아우~ 저 여자 요즘 많이 나오던데 너무 별로지 않아?' 라며 뒷담을 했던 바로 그 연예인을 내 친구가 언급했던 것이었다.
정말? 내가 정말 저랬다구?그 얘기를 듣고 몇 시간 정도는 곰곰이 나의 고등학교 생활을 뒤돌아 봤던 것 같다.
아.....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 얼굴이 붉어진 기억이 있다.
오랜만에 만난 동아리 후배 하나가 '누나 원래 그렇게 책 많이 읽고 그랬어요? 안 그랬던 거 같은데... ㅎㅎ'라고도 했다. 이 부분에선 그렇게 당황스럽진 않았다.
그래 내가 대학생 때 책을 읽고 다니는 스타일은 아니었지.. 라며 바로 인정할 수 있었다.
한 2년 전쯤엔 심각하게 이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다. 지금의 내 모습은 과연 진정한 내 모습일까? 남편이 원하는 대로 또는 누구누구의 엄마로서 부끄럽지 않은 정도로 살아가는 내 모습은 진정한 나의 모습일까 하고.
위에서 말한 고등학교 친구가 말한 연예인은 내가 보기엔 튀고 싶어서 과장된 액션을 하는 게 좀 별로로 보이는 캐릭터의 사람이다.
대학생 때는 동아리에 미쳐서 학업을 등한시했다. 우리 학번 친구들은 다른 친구의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으면 나에게 연락을 할 정도로 나는 모임의 중심이었고 앞장서서 노는 아이였다. 수요일 집회 때마다 제일 늦게 새벽까지 있다가 집에 가는 그런 스타일이었다.
그런 내가 일 년 365일 중 360일을 퇴근하고 바로 귀가하는 집돌이 남편을 만나 18년째 살고 있다. 친구를 대체 왜 만나는지 모임을 대체 왜 나가는지 도통 이해를 못 하는 남편에게 애를 맡기고 나가 놀기는 쉽지 않았다.
결혼하고 2주 만에 첫애를 임신했기에 더 그랬을 수 있고 결혼 3년 만에 미국에 가서 한참을 살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회적 활동 이라던지 밤마실 같은 건 거의 상상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런 생활을 십여 년 아니 이십 년 가까이하며 살다 보니 이젠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내 정체성이 헷갈린다.
이십 년을 저렇게 살았고 나머지 이십 년을 이렇게 살았다면 다가올 이십 년은 또 어떻게 다르게 살게 될까? 이렇게도 저렇게도 아닌 또 다른 모습의 내가 어디에선가 튀어나올 수도 있을까?
내일모레 오십 인 내가 (하.. 이 말 정말 싫다) 아직도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게 어이없기도 하지만 솔직히 한편으론 그래 이게 나지, 이게 내 모습이지 하는 생각이 든다.
유년시절 내 모습은 나를 중심으로 내 부모와 형제가 큰 영향을 미쳐 만들어진 나였다면 그 이후부터는 내가 새로 꾸린 가족, 내 남편 내 자식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내 모습이리라.
다만 지난 십여 년간 아이들을 키우며 정체되었던 내 모습에서 벗어나 그 이전 용감하고 활기찼던 나의 모습을 좀 더 끌어오고 싶다. 그렇게 좋은 것들로 만 버무려서 멋지게 꾸려가는 삶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