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욜수기 yollsugi Nov 03. 2019

페스티벌에 비가 올 수도 있지!

비가 오는 페스티벌도 즐거울 수 있다면

2018년 청춘페스티벌이었다.

토일 이틀 동안 진행되는 페스티벌. 이틀 중 친구들과 일요일 하루만 가기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1일 차였던 토요일 관객 반응이 심상치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토요일에 간 관객들의 인스타그램에 #청춘페스티벌 #청춘페스티벌 2018 #청페 를 검색해보며 "내일 뭐 입고 가지", "내일 친구들과 가서 뭐 먹지", "몇 시에 만나서 가지"

이런 소소하고 잡다한 것들을 논의하며 설렘에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날은 달랐다. 청춘페스티벌 공식 SNS 계정에는 관객들의 분노가 담긴 댓글과 환불 요청이 가득했다.

관객들의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들을 둘러보아도 토요일 1일 차 청춘 페스티벌에 대한 불만사항이 가득한 글들이 즐비했다. 사뭇 놀랐다. 평소 청춘페스티벌의 주최사인 마이크 임팩트가 국내 페스티벌의 운영 면에 있어 성장을 이끌어낸 곳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관객들의 피드백에 적극 대처하는 곳이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청춘페스티벌 Instagram 계정 내 공식 입장 일부 발췌 (현재 게시글 삭제)

원인은 '비'였다. 

물론 더 깊게 파고들면 청춘페스티벌 2018 주최 측의 운영 상 문제들이 있었고, 관객과 소통하는 측면에서 응당 비판받을 만한 점들이 여럿 있었다. 이를테면 관객들의 우천 관련 문의에 명확한 입장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지 않았다던가, 환불과 관련해 공식 SNS 채널에 공지한 내용과 현장 스태프들의 안내, 인포 부스의 안내가 모두 달랐다던가, 이런 부분에서 청춘 페스티벌은 관객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럼에도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비'였다.


국내 페스티벌의 최대 적은 날씨이다. 예측이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페스티벌 시즌이라 하면 산뜻하니 나들이하기 좋은 날씨인 5~6월이 1차 시즌, 여름 분위기에 젖을 수 있는 7~8월이 2차 시즌, 늦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9월 초중이 3차 시즌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기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놀기 좋은 시기, 하지만 반대로 언제든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은 시기이기도 하다.


같은 해, 민트페이퍼 주최 뷰티풀 민트 라이프는 뷰민라 대신 '비민라'로 불렸다.

2017년에도 페스티벌 도중 비가 와서 비민라라는 이름이 처음 붙여졌었다.

하지만 2018년의 우천 상황은 그보다 훨씬 심각했다. 올림픽 공원 일부가 뻘밭 같아 보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사전에는 우천 시에도 정상적으로 진행한다 공지했지만, 현장에서 상황이 너무 악화되자 주최 측은 당일 현장 스크린과 SNS 채널들을 통해 환불 관련 공지를 띄웠다. 토요일 티켓을 전액 환불 처리하고 2일권은 반액환불 처리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전에 우천 소식으로 취소한 관객들의 수수료 또한 지원했다.


필자도 실제로 페스티벌에 가서 비를 맞은 경험많다.

2016년 Ultra Korea(움프)에는 이튿날에 비가 중간중간 계속 내렸다. 막 쏟아지다가, 또 맑아졌다가를 반복하는 날씨였다. 2일 차 헤드라이너였던 Axwell&Ingrosso의 무대가 끝나는 시간대에 갑작스러운 폭우도 왔었다. 물론 그 덕분에 Sun is Shining 곡이 끝나자마자 비가 쏟아져 기막힌 타이밍의 장관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2016 Spectrum Dance Music Festival. 한때 200mm의 폭우를 기록했다.

2016년 스펙트럼 뮤직 페스티벌은 더했다. 2일 차였던 일요일, 일찍이부터 기상 예보로 이 날 200mm의 비 폭탄이 예고되었다. 물론, 그 주에서야(공연 약 3일 전?) 이 예보를 접할 수 있었다. 같이 가기로 한 친구와 필자는 200mm에도 이벤트가 취소되지 않는다면 가는 것이 맞는 것인지를 고민하다가 가기로 결정했고, 실제로 비 폭탄을 맞으며 놀았다. 우비를 입었음에도 안의 옷이 축축해지고, 비가 너무 굵어 무대가 중간에는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되기도 했다.


이 밖에도 18년 움프, 19년 오타디움 등 비와 관련된 페스티벌의 기억은 상당히 많다.

올해 역시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던 스펙트럼 뮤직 페스티벌이 갑작스레 찾아온 태풍의 영향으로 공연 며칠 전 전격 취소가 결정되었다. 관객 입장에서도 아쉬웠으니, 페스티벌만을 1년간 준비해온 주최 측은 오죽했을까!


필자가 방금 언급한 여러 페스티벌들은 뛰어노는 댄스 뮤직 페스티벌, 이 케이스의 경우 비로 인한 타격이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관객들이 비가 와도 놀겠다는 마인드셋을 어느 정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뮤직 페스티벌에는 뛰어노는 페스티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뷰티풀 민트 라이프는 연인, 친구, 가족들과 와서 돗자리를 깔고 앉아 노래를 들으며 노는 페스티벌이다. 청춘 페스티벌 또한 돗자리를 깔고 앉아 게스트 라인업의 토크 콘서트들을 즐기는 이벤트이다. 나들이의 대용인 셈이다. 이런 페스티벌의 경우 기상 상황에 절대적인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놀고 싶어도 비 맞고 앉아서 찝찝하게 놀고 싶어 할 관객이 누가 있으랴.



외국 페스티벌들의 이야기들을 보고 들으며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는 바로 이 기상상황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영국의 가장 큰 페스티벌, 글라스톤베리의 경우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수의 관객이 참여하지만, 이 중 비의 가능성을 배제하고 오는 관객은 거의 없다. 비가 안 오는 상황보다 오는 상황이 더 당연하게 여겨지는 페스티벌이다. 이에 더해 글라스톤베리는 캠핑형 페스티벌. 캠핑이 동반되고 페스티벌 부지가 진흙밭임에도 관객들은 애초에 장화를 준비해오는 센스를 모두 발휘하며 비가 그들의 즐거움을 향유하는 과정에 전혀 방해 요소가 될 수 없음을 몸소 보인다.


국내에서도 필자가 참여한 2017년 지산 밸리 아트&뮤직 페스티벌의 경우 캠핑형 페스티벌인 데다 첫날 비가 왔지만 대다수의 관객들에게 큰 영향이 없었다. 우비를 입고, 일부는 우산을 잠깐 펼치고, 대다수는 신경 쓰지 않고 그냥 놀았다. 필자도 당시에 돗자리를 펴놓고 누워서 비를 맞으며 Asgeir의 몽환적인 음악을 들었다. 조금은 찝찝한 느낌도 받았지만, 여름날 돗자리 위에 누워 비를 맞으며 아이슬란드 분위기의 음악을 듣는 것은 잊지 못할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2017 지산밸리 Fest. 비를 맞으며 누워 있는 중이다.
결국 페스티벌을 주최하는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변수 가득한 기상상황에도 관객들에게 좋은 기억을 선사해줄 수 있느냐와
다양한 관객의 유형에 준비되어있느냐 라고 본다.


즐거운 날과 비 오는 날은 대게 연결이 잘 안 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옷이 젖고, 더러워지기도 하고, 흐릿한 날씨에 기분이 다운되기도 한다고 느껴서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페스티벌 주최사들에서 비가 오는 상황을 걱정하는 일도 없었겠지.


비가 와도 '즐거움'과 '행복'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면, 문제는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쉽게 해결될 수도 있겠다는 인사이트를 이 영상에서 얻었다.

영화 About Time의 유명한 웨딩 씬.

비를 맞으면서도 환하게 웃으며 웨딩 분위기를 만끽하는 사람들을 보라. 페스티벌과 같은 야외 이벤트 기획에 있어 비에 대한 해답을 찾는다면, 분명 더 많은 이들을 페스티벌로 이끌 수 있다.


일종의 체크리스트가 필요할 것 같다.


물론 이에 앞서 우천 상황에 티켓 관련 조치는 어떤 식으로 진행할지 명확하게 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에서는 관객들이 비에 대한 인식이 워낙에 부정적이다 보니, 페스티벌 측에서 대응책을 내놓음에도 "아몰랑, 환불해줘!" 하는 경우도 많다. 환불을 해준다면 페스티벌 측의 브랜드 이미지는 살릴 수 있을지언정, 그 해의 이벤트 준비에 들어간 모든 제반 비용은 모조리 막대한 채무로 돌변한다. 운영 상의 미숙함, 혹은 정말 불운한 경우 이런 기상 상황으로 인해 페스티벌이 전면 취소되거나 대다수 관객에게 환불조치를 해준 페스티벌이 휘청거리고, 급기야는 주최사가 없어지는 경우도 보았다. 

페스티벌의 장기적인 유지를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환불조치가 답이 아님을 관객들 또한 알아야 한다.



지금부터는 철저히 관객, 소비자 입장에서 밝히는 견해이다.

관객들과 페스티벌 주최사 측 모두를 위해서 페스티벌을 기획하는 입장에서 따져보아야 할 것은 '비가 오는 상황에도 관객들이 만족할 수 있는 요소가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지의 여부'라고 본다. 대다수의 관객들은 몇 개월 전에 정해진 페스티벌 일자에 비가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인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페스티벌이 얼마나 관객들을 배려하였는가가 중요하다.

티켓은 어떤 식으로 환불이 되고, 우천 시 일회용 우비를 나눠준다는 등의 공지는 진부하다. 물론 필수적이다.

이마저도 안 하는 페스티벌이 있긴 한데, 언급은 하지 않겠다.


뷰민라, 청페 등의 나들이 유형의 페스티벌이라면, 강수 확률이 어느 정도 있을 때, 일찍이부터 대형 천막을 쳐서 돗자리 존을 보호해 주는 것은 어떨까. 대형 천막이 기왕이라면 페스티벌 이름도 넣어져 있고, 초등학교 운동회든 조기축구회에서든 볼 수 있는 파란색 기본 천막이 아닌 디자인도 신경 쓴 듯한 천막이면 더 좋겠다. 혹시 아나, 천막이 포토부스처럼 작용할 수도 있을지?

비를 역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었다. 국내 페스티벌은 단순 공연 외의 프로그램이 너무 부족하다. 모두가 젖어가며 놀겠다고 작정하는 싸이의 흠뻑쇼도 있는데, 국내 페스티벌에서 비에 무작정 당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비용 투자가 가능하다면, 기본적인 디자인의 티셔츠 굿즈를 제작하여 한 공간에서는 관객들이 그 옷을 입고 비를 맞으며 작정하고 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은 어떨까? 내심 옷을 걱정하는 관객들을 위해 페스티벌의 마케팅 효과도 낼 수 있는 굿즈가 판매/지급된다면, 그곳은 세미-흠뻑쇼가 될 수도 있다.


비긴 어게인의 웨딩씬.

글라스톤베리에서 장화를 신고 뛰어노는 관객들.

날씨가 관계없는 싸이의 흠뻑쇼.

관객들은 어쩌면 많은 것을 바라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아니,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관객들도 과도한 조치를 바라지는 말아야 한다.

이 모든 페스티벌 신을 위해서.


상황의 확실한 인지, 주최 측과 관객 상호 간의 배려, 그리고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는 디테일한 준비. 이것이라면 페스티벌은 비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만든 페스티벌'의 당당한 무게 :존나페 2019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