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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욜수기 yollsugi Oct 30. 2019

'내가 만든 페스티벌'의 당당한 무게 :존나페 2019

언더그라운드 씬의 보물, 존나페 2019 프리뷰 되겠습니다

프롤로그

국내 페스티벌들을 다니다 보면 비슷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보통 페스티벌의 기억이 페스티벌의 콘셉트적인 측면보다 라인업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마틴 개릭스가 왔었던 페스티벌"

"오데자가 왔었던 페스티벌"

"메이저레이저가 왔었던 페스티벌"


페스티벌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국내 페스티벌들에 대해 아쉬움이 늘 남는 건 이 때문이다.

페스티벌의 기억에서 디제이 및 아티스트들의 모습을 지우고 나면 남아있는 공백이 너무나 크게 느껴졌던 것.

물론 국내 페스티벌들의 수도 많아지고 있지만, 운영과 콘셉트에 관련한 퀄리티 차원에서도 국내 페스티벌은 빠른 속도로 많이 성장 중이다. 올해는 잘 된 페스티벌과 안 된 페스티벌이 극심하게 갈린 해가 아니었나 싶다.

언급은 따로 더 안 하겠지만, 이제까지의 글들에서 많이 언급했듯 안된 페스티벌들은 관객을 기만하는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반면, 잘되었던 페스티벌은 그간 페스티벌 베뉴로 굳건히 이용되어 오던 잠실 종합운동장의 부재를 난지 한강공원과 서울랜드 등으로 대체하며 각각의 색깔에 맞게 좋은 기억들을 안겨주었다. 페스티벌마다 색깔이 더 뚜렷해지고, 관객들의 기대가 커짐에 따라 단순한 무대 외적인 부분들에서 만족할 수 있도록 준비한 점들은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규모가 큰 페스티벌을 유치할 때, 그 큰 틀에서의 구성이 어느 정도 스테레오타이프를 따라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점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간에 써왔던 글들에서는 디테일적인 부분에서 페스티벌들에 원하는 점들을 이야기해왔다.


요즘 비단 일렉트로닉 씬, 페스티벌 씬을 떠나 전반적인 인디 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때문에 유튜브와 SNS를 통해 인디씬 내의 다양한 음악과 영상, 및 아티클들을 접하고 있는데, 그러던 중 필자에게 작년에 엄청난 임팩트를 안겨주었던 페스티벌이 올해도 느지막이 다시 열린다는 게시글을 보게 되었다.


언더그라운드의 매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페스티벌이랄까,

방대한 양의 국내 디제이 라인업으로 무장했지만, 라인업을 제하고서도 페스티벌의 색깔이 엄청난 매력을 지닌 페스티벌. 그 페스티벌이 늦었지만 다시 돌아온 것이 너무나 반가워 정말 오랜만에 페스티벌 소개글을 쓰게 되었다.

사진 출처 : Mixmag Korea


서론이 길었다.

그렇다. 오늘은 2019년의 마지막을 언더그라운드 감성으로 멋지게 장식할, 그렇지만 페스티벌 이름은 다소 과격한 존나페(ZNF. 존나정말 열받아서 내가만든 페스티벌) 2019의 프리뷰이다.


When: 2019. 11. 16

Where: 성수동 S-Factory 일대

그 멋지고 과격한 이름, 존나페 2019이다.



2018년 존나페의 단상

작년에 이 페스티벌에 많은 기대를 품고 갔었다. 작년이 3회였는데, 페스티벌의 콘셉트부터 라인업, 그리고 마케팅까지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먼저 페스티벌의 콘셉트는 언더그라운드 향이 가득 나는 이 느낌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존나페의 수장, DJ Bagagee Viphex 13의 말을 빌려 말하자면 1회는 분노에 차서, 2회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진행했던 페스티벌이었다고 한다. 1회가 열렸을 때부터 존재는 알고 있었으나, 필자는 3번째로 열렸을 때 처음 이 존나페에 참여하게 되었다. 3회에 이르러서야 존나페를 처음 경험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앞선 2년보다 레지스탕스적인 색채가 조금 무뎌지고, 대신 언더그라운드만의 매력을 알리려는 긍정적인 바이브가 다량 추가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결정적으로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것은 바가지 님의 진심이 담긴 페스티벌 론칭 글이었다. 여타 다른 페스티벌과는 다르다. 일종의 출사표를 길게, 그리고 아주 Genuine 하게 적어놓았다. "고작 이벤트 따위가 이렇게 인간적이면서 마음으로 다가올 수 있다니!" 여기에 매력을 느껴 바로 티켓팅을 했던 기억이 있다.

분명 페스티벌이 갖는 현재 씬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저항정신 그리고 계몽운동으로서의 성격은 유효하지만, 지속 가능하며 유기적인 페스티벌로 발전하기 위한 방향은 최초 기획할 때의 열 받음 보다는 1회, 2회를 진행하면서 느끼고 모였던 긍정적인 에너지들을 더 부각시키고 싶어졌거든요.
(중략)

첫째로, 로컬 만으로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음악 페스티벌을 떠올리면 항상 해드라이너가 누가 오는지, 어떤 화려한 연출과 멋진 무대가 기다리는지가 기존의 패러다임이었다면, 그런 패러다임을 거부한 유명한 해외 해드라이너도 없고 골판지로 만들어진 초라한 티켓부스부터 보이는 존나페 이지만, 우리가 매주말 클럽에서 만날 수 있는 형,누나, 동생과도 같은 친근한 로컬 디제이들 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멋진 축제를 함께 할 수 있다라는 용기를 얻었습니다.

둘째, 유기적이며 자생할 수 있는 페스티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존나페는 극소수 인력에 초저예산으로 기획되며 진행되는 페스티벌이기에, 미흡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예상을 넘어서서 몰려온 관객에 대응하지 못했고, 스피커 고장에 대응하지 못했고, 운영에 심각한 인력부족을 겪는 상황들이 속출하였습니다.

-DJ Bagagee Viphex 13

진실된 말들에 나 또한 깊은 신뢰를 얻었고, 라인업과 스테이지 발표가 함께 하니 기대감은 더욱 커졌다.

"한국을 빛낼지도 모르는 100명의 디제이"라는 슬로건은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한편으로는 존나페만의 자신감이 느껴졌고, 국내 페스티벌 이름을 패러디한 스테이지 이름들에는 B급 감성과 '가벼운 레지스탕스' 색채가 녹아들어가 있었다.

스테이지 이름들이다. 훨큰돔, 울트-라면, 스펙트럭, 옷타디움 등. 자세히 보면 다 스테이지를 칭하는 것도 아니다.
ZNF 2018 라인업 . 국내에 소위 '음악 좀 틀 줄 아는' 디제이들 이름이 상당히 많이 보인다.

실제로 가보니, 일반적인 국내 페스티벌과는 예상했던 만큼 많이 달랐다. 아주 많이.

성수동 S-Factory가 주는 특유의 예술적인 분위기와 루프탑이라는 공간, 그리고 여기저기 아날로그 감성으로 덮인 존나페만의 디자인. 이 모든 것이 섞여 "와 여기 정말 특이한데, 참 좋다"라는 말을 자아냈다.

성수 S-Factory 입구에는 레지스탕스를 연상케 하는 새빨간색 포스터가 덕지덕지 붙어있고,

티켓 부스는 죄다 종이박스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티켓 부스 안에는 이 페스티벌의 창시자이자 대표, DJ 바가지 님이 앉아있었다.

늘 그렇듯 환한 미소와 함께.


페스티벌 내부에 들어가면 S-Factory라는 공간이 주는 아름다움이 최대로 발휘되어 있다.

작년 성수동 Breezeway Music Week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 공간은 정말 Chill 한 곳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곳이다. 여기저기 사진을 마구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싶게 만드는 이 곳에, 국내에 내로라하는 DJ들이 각자가 사랑하는 장르와 스타일의 음악을 틀고 있다.



이 정도면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 법한데?


예전에 필자의 브런치에 디제잉과 EDM 씬과 관련해 남긴 글이 있다.

(가벼운 에세이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대중적인 아티스트들과 다르게 DJ들을 좋아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어떤 명확한 이유에 근간한 것인지를 제대로 설명하기가 늘 어렵다. 하지만 디제잉을 배우면서 가장 크게 얻었던 것 중 하나는, DJ라는 직업이 음악을 들음에 있어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어마어마한 노력을 투자한다는 점이다.

처음 시작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기 위함에서 시작하더라도, 사람들이 모르는 노래들을 큐레이팅하고, 분위기에 맞는 노래들을 선곡하고, 전반적인 셋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음악을 들어야 하는 법이다. 그래서 혹자가 "넌 일렉트로닉 음악을 좋아해서 DJ들을 좋아하니?"라고 물을 때면 꼭 명확히 대답하려 한다.

DJ는 본인이 좋아하는, 그리고 사람들이 좋아할 그 어떤 장르, 어떤 스타일의 음악도 틀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장담컨데,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어떻게 DJ들이 구성해서 선보이는지, 그리고 DJ가 쉽게 예상되는 일렉트로닉 장르 외에도 얼마나 다양한 음악들을 녹여낼 수 있는지를 가장 잘 체감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 곳,
존나페이다. 국내에서 말이다.


물론 이렇게 이야기하니 필자가 일렉트로닉을 안 좋아하는 양 비치기도 할 것 같은데, 필자는 일렉트로닉 음악을 사랑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어 약간 정정하자면, 사람의 측면에서 DJ를 논했다면, 음악적인 측면에서는 일렉트로닉 음악이라는 것이 얼마나 수많은 세부 장르들을 지니고 넓은 스펙트럼의 다양한 음악을 담고 있는 장르인지 또한 널리 알리고 싶고, 존나페가 그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작년에 이 페스티벌에서 인상 깊었던 또 다른 점 중 하나가 바로 '마음만 스테이지'였다.

처음에 스테이지 소개를 보고 도대체 [마음만이라도 참여해보는 텔레파시 스테이지]는 무슨 의미일까 굉장히 궁금했는데, 실제 페스티벌에 가보니 스테이지가 저렇게 되어 있었다. 아마 컨택이 되었지만 불가피한 사정으로 참여하지 못한 디제이들이 저 판자에 사진으로 함께한다는 뜻이었던 듯하다. 너무나 '허접'하게 만들어져 있지만 그 안의 정성과 인간성이 돋보여 이 페스티벌, 뭔가 달라도 정말 다르다고 느끼게 해 준 요소였다. 디제이가 직접 만드니, 페스티벌을 이끌어나가는 디제이의 심정을 더욱 파악한 것이 아닐까.


올해는 88명의 디제이들이 참여한다고 한다.

올해의 출사표에 따르면 이번 콘셉트는 학교. 학교 콘셉트를 최대한 살려보기 위해 폐교부터 연수원, 모델하우스 등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장소를 물색해본 듯하다. 돌고 돌아 작년의 S-Factory로 다시 돌아왔지만 이 공간 자체가 워낙에 훌륭한 공간이기에, 존나페만의 B급 디자인으로 꾸며질 올해의 공간이 벌써부터 기대가 많이 된다. 반으로 나누어 반마다 다른 장르의 음악을 튼다는 구상도 좋은 아이디어 같다.

올해의 출사표이다

한번 가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을 때 보게 되는 것이 가격이다.

놀랍게도 존나페의 가격은 작년에도 10000원이었고, 올해도 10000원이다.

티켓 구매대행 사이트의 수수료 가격이 크게 느껴지는 정도의 가격이다.


과격한 어감의 페스티벌 이름이지만, 결국 본질은 '좋아서 하는 페스티벌',

그 무엇보다 순수한 비전을 담은 페스티벌이다.

필자는 올해도 이 페스티벌에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참여할 생각이다.

올해도 한 손엔 카메라로 페스티벌의 아름다움을 담고, 한 손에는 폰으로 샤잠 어플을 켜 둔 채 디제이들이 틀어두는 음악들 중 꽂히는 음악들을 모조리 담아갈 것이다.

그리고 남은 신체의 각 부분들로는 온몸으로 흥을 표현하며 11월에 걸맞지 않은 춤을 출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년에 필자가 인스타그램에 게시한 존나페 홍보글을 끝으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작고, 아날로그하고, 완성되지 않았지만, 여기에서 오는 언더그라운드만의 멋을 느끼고 싶다면 이번 11월, 이 페스티벌로 한 해를 마무리해보는 것은 어떨까.


존나페 2019의 성공적인 유치를 응원한다.

작년 인스타그램에 올린 홍보 글. 좋아서 만든 페스티벌인 만큼 나도 단지 좋아서 홍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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