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B <JOBS 그 첫번째 : 에디터> 큐레이션 두번째 이야기
에디터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를 수집해, 그 중에서 전달할 가치가 있는 주제를 선별하고 그 주제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소재와 도구를 조합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을 합니다.
브런치에 글을 계속 써오며 "과연 내가 에디터라는 호칭을 부여받아도 될만한 사람인가?" 하고 고민하던 내게, "고민 대신에 '에디터'에 대한 사명감을 가져보는게 어때?" 하고 든든한 손길을 내밀었던 것이 바로 이 매거진 B <JOBS 그 첫번째 : 에디터>였기에.
혹시나 프롤로그보다 이 글을 먼저 읽었다면 프롤로그를 먼저 읽고 오는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필자의 큐레이팅을 보고 이 단행본, 혹은 에디팅 EDITING 자체에 관심이 생겼다면 꼭 단행본을 직접 읽어보기를 권한다.
이 큐레이팅이 비단 정보성 큐레이팅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필자가 매거진B를 읽으면서 느꼈던 촉진제의 역할이 되기를 바라며.
매거진B <JOBS 그 첫번째:에디터>은 여러 명의 에디터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에디터로서의 커리어를 다져오며 체득한 인사이트들, 그 인사이트들을 한 권의 책에 담았고, 이를 습득하는 것은 읽는 자의 몫이다.
좋아하는 것으로부터 좋은 것을 골라내는 사람
브런치에 처음 글을 쓸 때는 <기록>이 주 목적이었다.
필자가 공부해온 코딩 학습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필자가 경험한 페스티벌의 정보들을 기록하기 위해.
어느 순간부터는 기록보다 <가치>들을 담고 싶은 생각이 커졌다.
필자가 생각하는 가치들, 그 가치를 '나만의 스토리'로 엮어내보고 싶었기에
가장 좋아하고 관심을 갖던 페스티벌을 매개체로 선택했다.
몸통은 페스티벌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시선이지만,
그 속에는 필자가 사랑하는 페스티벌이라는 문화도 결국 근본적인 배려와 기획이 동반되어야 더 성장할 수 있음을 아주 주관적이고 경험중심적인 시선에서 풀어낸 셈이다.
사랑하는 문화를 지키고 싶고 발전시키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니까!
필자의 가치를 담다보니, <공감>이 고파졌다.
이전까지는 글을 쓰는 행위에만 집중하며 글을 썼다면, 이제부터는 읽는 사람들을 신경쓰기 시작한 것이다. 조회수가 많아야 한다, 공유수가 많아야 한다는 관심사 밖이었다.
아니다, 정정하자면 그것이 핵심은 아니었다.
조회수와 공유수는 필자의 목적을 알아보기 위한 중요한 지표로도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글이 재미있게 읽히느냐"와 "내 글이 흥미로운 콘텐츠이냐"였다.
즉, 필력과 콘텐츠 파워에 대한 욕심이 커져갔다.
어떤 콘텐츠를 다루어야 내 관심사를 담아 자신있게 글을 쓰면서도, 흥미로운 내용을 담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글의 구조와 제목까지도 신경쓰게 되었다.
그러던 중 매거진 B <JOBS 그 첫번째 : 에디터>를 만났으니, 타이밍만큼은 너무도 큰 행운이다.
브랜드 <MR PORTER>를 이끌어간 제러미 랭미드 Jeremy Langmead의 인터뷰가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사실상 책 전체에서 가장 많은 자극을 준 에디터였다.
제러미 랭미드는 에디터EDITOR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에디터는 일반적으로 다양한 정보와 데이터를 수집해, 그 중에서 전달할 가치가 있는 주제를 선별하고 그 주제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소재와 도구를 조합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을 합니다. (중략)
오늘날에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나'를 괜찮게 보는 이들을 확보하기만 하면 되는거니까, 어쩌면 안 괜찮아도 되는 거에요. 결국 개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슈로 귀결되는 거고, 내가 누구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만 명확하게 전달하면 모든 것이 풀리는 거죠. 모든 일의 원점인 '나는 어떤 사람이냐'라는 것. 그것이 성패를 가르는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는 미디어의 본질에 더 가까워진 셈입니다.
- Jeremy Langmead
요즘 유튜브를 통해 많이 조명받는 '크리에이터 Creator'.
보통 Create한다는 것을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으로 많이 생각하는데 진짜 크리에이티브는 에디팅이라는 행위를 통해 나온다고 랭미드는 주장한다.
미디어의 본질, 콘텐츠의 정체성을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이냐'를 나타내는 것에서 풀어가려는 랭미드의 말이 강하게 와닿았다.
고작 3년이지만 소셜 미디어는 급격히 진화했고, 디지털 세계로 넘어온 오프라인 콘텐츠들은 괄목할 만한 변화를 만들었습니다. 과거에 어떤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3분 30초 분량의 영상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그걸 15초 안에 담아야 합니다. 또한 전세계에서 통할 법한 일반 콘텐츠가 아닌, 각기 다른 미디어 플랫폼에 어울리는 맞춤형 콘텐츠가 필요합니다.
(중략) 같은 이야기라도 조금씩 다른 언어와 비주얼을 통해 여러 방식으로 풀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 Jeremy Langmead
기존의 '에디터' 개념이 오늘날에는 큐레이터에 가까워지고 있어요.
제러미 랭미드는 에디터 개념을 큐레이터에 접목시키면서 '이야기꾼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한다.
1. 정보를 알리고 (inform)
2. 마음을 움직이고 (inspire)
3. 보는 사람을 즐겁게 (entertain) 해야 한다는 것.
스스로 느끼기에 나의 콘텐츠들이 과연 이 조건들을 다 만족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세 가지를 계속 신경쓰며 고민하고 있다는 것에는 확신을 갖고 있었기에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었다.
방향성은 잘 설정했구나!
앞서 언급한 기록-가치-공감으로 이어지는 고민의 발자취들이 결국 나도 모르게 에디터이자 크리에이터이자 큐레이터가 되기 위한 길이었던 셈이다.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공감을 이끌어내거나 의미있는 인사이트를 남기고, 그 와중에 글은 재밌어야 한다는 고민 말이다.
에디터라 함은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람이어야 하고,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는 (create) 것은 만들기 이전에 좋은 콘텐츠들을 읽고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콘텐츠가 무엇인지를 알아챌 수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도 콘텐츠의 접근성을 넓혀줄 수 있는 것 (curate).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시대의 변화를 읽는 능력이다.
특히나 요즘은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읽는 것이 '능력'과도 같아졌다.
에디터로 일하는 사람들이 변화에 적응하려면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랭미드는 답한다.
해당 콘텐츠를 왜 만드는지에 대한 확고한 고찰과 방향이 필요합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왜' 만들어져야 하는지 모두가 수긍하고 동의해야 합니다.
과거와 다른 마음가짐을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과거, 에디터란 콘텐츠를 만드는 직업이었고 만든 이가 명석해 보이는 콘텐츠를 만들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요. (웃음)
지금은 자기가 만든 콘텐츠가 상업적으로도 성공할지 분명히 고려해야 합니다. 신흥 플랫폼을 이해하고 이를 빨리 받아들이는 흡수력도 중요하고요.
에디터보다 소비자의 자아(ego)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나 자신'이 아닌 '사람들'에게 관심을 돌리면 그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만들기 쉬워지죠.
- Jeremy Langmead
음악과 문화 관련 콘텐츠에 관심이 많던 필자에게 이 말은 뼈가 있는 말로 들렸다.
'만든 이가 명석해 보이는 콘텐츠'. 유독 예술, 문화 관련 컨텐츠들을 접할 때 많이 갖던 인식이다.
정보성은 뛰어나고, 그 질 또한 양질임을 느낄 수 있지만 너무나도 어려운 문체로 쓰여져 있거나, 읽다보면 '지식 자랑'처럼 들리기도 하는 콘텐츠들. 필자가 콘텐츠를 다룰 때 가장 지양하고 싶은 방향 중 하나였다.
글을 쓰다보니 깨닫게 되었다, 읽는 사람들에게 쉽고 가볍게 읽히려면 아이러니하게도 글을 쓰는 사람은 그 주제에 대해 정말 많이 조사하고 공부하고 숙지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어려운 필체로 쓰여진 글들이 결코 설득력을 안겨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콘텐츠의 상업성'을 고려한다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님을 넘어 필요한 요소임을 몸소 느꼈다.
기존 매체는 '편집'이라는 강점이 있다. 하지만 요즘은 그 강점이 사라지는 추세이다. 상당수의 콘텐츠가 편집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송출되기 때문이다. 출판을 통해서만 나오던 활자 컨텐츠들은 이제 수많은 웹진과 개인 사이트, SNS 등을 통해 훨씬 짧고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 대중에게 전달되었고, 방송사의 정제된 편집으로 송출되던 영상 콘텐츠들은 이제 각종 스트리밍, 라이브 서비스들과 '유튜브'를 중심으로 훨씬 빠른 호흡의 콘텐츠들로 변모했다.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은 제가 경력을 쌓아가는 동안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는 바뀌지 않았어요.
변화하는 흐름 속에서 에디터로서 신뢰를 쌓는 방법에 대해 랭미드는 여러 조건들을 제시한다.
융통성을 가질 것. 새로운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받아들일 것,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존중할 것.
그리고 무엇보다 '흥미로워야 한다는 것'
많은 에디터들이 '스스로 흥미로운가'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있어요. 본인이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합니다. 자신이 만드는 콘텐츠에 믿음이 있어야 하고요. 그것이 한 벌의 바지에 관한 이야기라도 말이죠.
- Jeremy Langmead
신기하다. A.P.C의 창립자 장 투이투에게서도 받았던 느낌이지만, 필자에게 굉장한 자극으로 다가오는 인물들은 모두 '본질'에 집중하고 있다.
에디터의 역할이 변하면서 더 넓어지고, 시대의 흐름은 바뀌어가면서 자기 자신보다 소비자들을 우선시하는 노력도 필요한 중에, '좋은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는 바뀌지 않았다'고 말하는 랭미드. 그렇다, 역시 본질이다.
나는 이것을 제러미 랭미드가 나에게 준 인사이트 가득한 선물이라고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