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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욜수기 yollsugi Dec 25. 2019

실패하는 삶

2019년 나의 목표는 '실패'였다

2019년 한 해동안 가졌던 생각. 

실패가 목표다.


2018년 말미였나, 팔로우하던 한 지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보았다. 소위 드립들을 스토리에 올리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본인의 그간 실패한 온갖 내역들을 나열하여 리스트화한 스토리였다. 여기에 출전했다가 떨어졌고, 여기에 나갔다가 불합격했고, 이걸 하려다가 실패했고 등등. 

웃자고 만든 스토리였다.


웃자고 만든 스토리에 목적적합하게 난 웃었다.

하지만 웃음 뒤에 큰 자극이 있었다. 머리를 누가 세게 한 대 친 느낌? 일단은 그 스토리를 캡쳐했고, 며칠간 그 캡쳐된 이미지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리고 2019년 나의 목표는 '실패'가 되었다.


실패도 무엇이 되었든 시도하고 열심히 해야 성립할 수 있다. 

20대에게는 실패가 허용된다고 온갖 미디어들의 '청춘지향적' 콘텐츠들에서 '실패예찬'을 하고 있었지만, 그 '청춘스러움' 때문에 실패가 하고 싶던 것은 아니었다. 청춘이니까 부딪히고 실패해봐야 한다는 말은 이제는 너무 설득력이 없다.

이전 글에서도 자주 언급한 바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달려왔던 시험에서 벗어난 후 처음 제대로 나 자신을 마주했을 때, 여지껏 아무것도 해 놓지 않았고,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에, 무엇이 되었든 '실행'에 엄청난 결핍과 욕구를 가졌던 나였다. 

그렇게 "뭐라도 해야 실패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뇌리에 꽂히게 된 것이었다.

MAGAZINE B <JOBS: EDITOR>에서 발견한 문구. 뭐라도 하다보면 실패를 많이 한다. 중요한 건 그게 나쁜게 아니라는 것.


2019년, 가장 많이 들었던 말들이 여럿 떠오른다.

그 중 듣기 좋은 말이라면, "실행력 끝내준다.", "진짜 열심히 산다." 등의 말일 거고
듣기에 마음이 조금 무거웠던 말이라면, "괜찮아, 분명 더 좋은 기회가 찾아올거야"였다.

첫번째 말은, 잘 달려나가고 있는건지, 방향이 맞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내가 '달리고 있긴 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말이었고, 

두번째 말이라면 2019년의 목표였던 '실패'를 잘 해냈다는 말일 것이다.


2019년동안 수많은 실패들을 겪었다. 애당초 내가 겪는 일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실패 또한 크다고 얘기할 수 없다. 혹자에게는 아주 사소한 실패들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 그 횟수는 많았고, 덕분에 이들을 겪으면서 얻은 실패에 대한 인사이트들은 상당히 많다.



일단 실패의 종류는 여러가지다. 그 종류는 어떤 유형의 실패냐라는 것으로 구분되는 듯하다.


1. 2019년 첫번째 실패는 서툼과 시행착오가 합쳐져 이루어낸 실패였다. 

웹 매거진을 펴내보고자 했었다. 

(참고로 웹 매거진에 대한 나의 애착은 1년 내내 이어진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20대의 다양한 감성과 다양한 아이템들을 담아, 개성이 가득하면서도 지극히 평범해서 읽기 쉬운 매거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평소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내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글이 색깔 가득하면서 평범하기도 한 글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내가 읽기 좋아하던 지인들의 글 또한 그런 색채를 띄었기 때문이었다.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든, 인스타그램에 그날 먹은 이야기를 단 몇줄의 포스트로 올리든, 브런치나 블로그를 이용하든, 일상을 드러내길 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주목받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팀원으로 생각해두었던 사람들에게 일일이 연락을 취하여 함께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고맙게도 모두 선뜻 응해주었고, 심지어는 적극적이었다. 나 스스로 이들이 활동을 이어나갈 만큼 매력적이고 신뢰성 있는 코어가 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팀원들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준비한 상태로 기획 초기 단계를 참여하는 것이었다. 

"발로 뛰자", "맨땅의 헤딩"과 같은 원초적인 노력이었다. 

그리고 원초적인 시도는 시행착오들 앞에 무너지기 마련이다. 


의견 차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마땅히 매력적인 대안이 나오지 않고, 애초에 계획하던 바보다 진행속도가 느려지면서, 그리고 무엇보다 각자의 삶보다 우선시될만큼 만들고자한 플랫폼의 그림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약 3~4개월 정도 기획 논의를 하다가 엎어지게 되었다.


모든 초기 활동이 그러하듯, 각자의 삶에 충실해 있다가 다시 돌아와서 재정비해보자는 말만을 남긴채, 첫번째 실패는 끝이 났다. 그 활동을 함께한 팀원들이 나의 글을 재밌게 읽어주기도 하기 때문에, 이 글을 빌려 이야기하자면, 지금도 많은 책임과 미안함이 한 켠에 남아있다. 아마 1년간 많은 경험을 하고 난 이후에, 지금 정도 시기에 연초에 했던 제안을 내가 했더라면, 그 때보다는 덜 서툰 모습으로, 조금은 더 매끄럽게 이어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미안하고 아쉽지만, 매력적인 팀원들이었기에 그만큼 언젠가 이들에게 더 멋진, 더 매력적인 제안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2. 나 자신을 즉흥적인지, 계획적인지를 놓고 판단해본다면, 나 조차도 쉽사리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많은 경우, 장기간의 게획과 단기 스케쥴을 모두 기록하며 계획 속에 활동들을 이어나가려 노력한다. 그러나, 때로는 속된 말로 "꼴리는 대로", 즉흥적으로 일을 벌리기도 한다. 

굳이 스스로 정리해보자면,
시작은 즉흥적으로 하고 그 이후 수습은 계획에 따라 하는 모양새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작정 즉흥적으로 시도해본 '실패'들에 대한 기억 탓이다. 


정말 일하고 싶은 회사가 있었다. 물론 지금도 기회가 닿는다면 그 회사를 경험하고 싶다. 

먼 발치에서 매체들과, 회사의 콘텐츠들을 통해 판단하기에 리더는 엄청난 인사이트를 갖고 있었고,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주관적인 추측만으로는 부족했던건지, 무작정 그 회사의 리더에게 DM을 보냈다. 장문의 DM이었다. 간략히 나를 소개하고, 무작정 SNS를 통해 연락할 수 밖에 없었던 변명과 그 결례에 대한 사과도 포함되었다. 그 뒤에는 이런 컨택을 취한 목적과 열망, 그리고 막연하게나마 나와 같은 대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줄 사항이 있는지에 대한 물음으로 마무리한 '무대뽀식' 컨택이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놀랍게도 이런 경우, 생각보다 많이 연락이 오곤 한다. 

(방금 문장에서 느꼈을 것이다.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을.)

대표님은 생각보다 더 친절하고 섬세했고, 정확히 어떤 내용을 더 원하는지, 전화/DM/Face to Face 미팅 중 어떤 것을 원하는지를 여쭤보시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현재 진행중인 이벤트 준비로 너무 바쁘니, 이벤트가 끝난 뒤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마무리하셨다. 아쉽게도 그 뒤 연락은 오지 않았다. 물론 더 이상 요청하는 것은 더한 결례라 판단하여 나도 컨택을 그만두었다. 결과적으로 대표님과의 대화는 '실패'였다. 

중요한 건, 그 실패가 나는 마음에 들었다는 점이다.


3. 처음에는 시도하기를 실패한 경우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분명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다.

공연 관련 콘텐츠로 이것저것 해 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친했던 친구에게 가벼운 상담을 했었다. 아무래도 응원이 필요했었겠지. 하지만 친구는 "나니까 현실적으로 조언을 해준다"면서 이런 분야는 학위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더 많은 스펙을 쌓아서 소위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목표치를 이룬 뒤,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시도해야지, 지금처럼 하는 건 아마추어에서 못 벗어날 뿐더러 그걸 할 시간이 어딨냐고 했었다. 뾰족한 말이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친구의 말을 듣고 당시에 하려 했던 활동들에 대한 의지가 식어버렸달까. 그 친구의 눈에 시작하기에도 무리가 있을만큼 능력이 없는 상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걸 이겨낼 정도의 의지는 없었고, 그렇게 시도 자체를 실패한 케이스가 있었다. 

말에 눌려 시도하기를 실패한 경우는 남는게 없었을까? 아니었다. 오기가 남았다. 

그 이후의 추진력, 실행력에 부스트를 달아줄 오기가 생겨버렸다.


블락당해보지 않으면 

슛을 넣을 줄도 모른다.


스틸당해보지 않으면

돌파할 줄도 모른다.


패스미스가 나보지 않으면 

패스를 어디로 줘야 우리 팀이 잘 받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수년간 농구를 하며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끊임없는 실패에서 갖게 되는

오기와 열망이었다.








4. 이후 수많은 경험을 하는 중에 하고자 했던 활동에 나를 거부한 실패도 있었고, 하려던 활동을 내가 자발적으로 거부한 실패도 있었다. 

나를 거부한 실패들, 이를테면 책을 출간해보려다 콘텐츠의 깊이나 힘이 약하다는 이유로 결렬된 경우도 있었고, 강연 제의를 받았으나 개인적인 여건 때문에 조율 과정에서 결렬된 경우도 있었다.

내가 자발적으로 거부한 실패들이라면, 제의를 받고 미팅을 했는데 사람의 마인드가 나와 맞지 않다고 느꼈다거나, 내가 들일 노력에 비해 제대로된 처우를 받지 못할 것 같다는 합리적 추측이 들어 거절한 경우들이다.

모든 실패는 아쉬움이 남는다.
신기한 것은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많아지면서
자발적으로 거부한 실패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기회는 계속 찾아오니,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고 싶었던 일이 엎어졌을 때 들었던 말이기도 하고, 반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을 때 들은 말이기도 하다. 일희일비하지말고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지혜로운 조언이다. 상황에 떠밀려 실패가 필요한 순간에 실패를 겪지 못한다면, 선택의 폭은 점점 좁아진다. 연애도 성공과 실패를 여러번 겪어본 사람이 정말 잘하게 된다고, 실패의 경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실패를 겪어가면서 실패를 골라낼 줄 아는 힘이 필요하다.


르브론은 커리어 통산 파이널 성적이 3승 6패다. 준우승만 6번 한 그가 어떻게 최고냐며 까내리는 사람도 있지만, 파이널 실패의 경험이 없었다면, 3번의 우승 또한 없었을 것이다.

브런치에 하나하나 쓰고 있는 글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일부로부터는 "글 정말 잘 읽었다"는 말까지 듣게 되니 내가 쓴 글 하나 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솔직한 심정으로 메인에 걸리는 글들, 그 중에서도 인사이트풀한 글들은 조금 부러운 감정이 들기도 했다. 

"나도 저 메인에 걸려보고 싶다."

메인에 걸리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글을 썼다면 그 사람들의 글은 사람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 글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다 쓰고 나니, 왠지 메인에 걸렸으면 하는 욕심과 소망도 든다.
아직 너무도 많이 부족하기에, 아직 내가 나 스스로를 알아가고 자극해 나가기에도 이르기에, 당연히 이 정도 인사이트로는 메인에 걸릴 수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부러움을 언급하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 이 글은 '브런치 메인에 걸려보기'에 실패한 2019년 나의 의도적 마지막 실패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실패가 가득하니 행복한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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