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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욜수기 yollsugi Jan 27. 2020

에디터이자 기획자가 되고 싶다

매거진 B <JOBS : EDITOR> 그 마지막 이야기, 그리고 츠타야

앞선 두 편의 글에서 매거진 B <JOBS 그 첫번째 : 에디터>를 읽은 뒤 얻은 인사이트들을 다루었다.

브런치에서의 공식 호칭은 '작가'이다.

강연이나 협업 목적으로 제의 메일을 받을 때면, '욜수기 작가님'이라는 호칭을 듣곤 한다.

그럴때마다 과연 내가 이 호칭에 대한 자격이 있는가, 작가라도 불려도 되는가에 대해 고민하곤 했다.

직업이 작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좋아하는 주제들에서 인사이트를 찾아 글을 쓰는 사람일 뿐.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에디터'라는 호칭에 더 가까웠다.

그러나 에디터라고 불리기에도 부족함이 너무나도 많았다. 앞선 글들에서 어렴풋이 밝혔듯 유명 잡지에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에디터들을 두고 감히 내가 '에디터'라는 호칭을 갖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2019년 도합 128편의 글을 브런치에 썼다. 페스티벌에 관한 글, NBA에 관한 글, 넷플릭스에 관한 글 등 주제는 다양했다. 모든 글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라면 '좋아해서 쓰기 시작한 주제들'일 것이다.

글을 한창 써나가던 중 이 매거진 B의 <JOBS 그 첫번째 : 에디터>라는 단행본을 접하게 되었고,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브런치에 글을 쓰는 일련의 활동에 대한 인식에 굉장히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나의 글에 현직 경험에 기반한 전문성은 없지만 관심에 기반한 깊은 탐구가 있었고, 소소한 주제들이 오히려 읽기 편하기도 하다는 점에서 처음 나의 글에 대한 자부심도 생겼다. 동시에 에디터라는 직업에 도전의식을 갖고 이 한 권의 책에서 얻은 인사이트들을 직접 '나만의 콘텐츠'에도 반영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놀랍게도 이 두 편의 매거진 B 큐레이팅 글을 쓴 뒤, 글을 대하는 나의 태도 외에 활동적 측면에서도 변화가 찾아왔다. 그간 에디터라는 호칭을 스스로 말하기 쑥쓰러웠던 이유는 브런치라는 플랫폼 내에서 나만의 아카이브를 쌓는 과정과 에디터라는 호칭이 상응하는지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었는데, 크고 작은 웹진과 유명 플랫폼에서 '에디터'로 제의를 받으며 정체성에 있어 조금 당당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에디터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현재 ODI와 Pikicast에 에디터로 활동중이다.) 


많은 변화가 있은 뒤 매거진 B <JOBS : EDITOR>의 마지막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이 글은 본 단행본 큐레이션의 마지막 이야기로 에디터에 대한 추가적인 인사이트를 다룸과 동시에 

<지적자본론>, <도쿄의 디테일>, <취향을 설계하는 곳, 츠타야>, <츠타야, 그 수수께끼>를 읽고 얻은 

기획자에 대한 첫번째 이야기이기도 하다.



매거진 B <JOBS : EDITOR>에서 워크룸 프레스의 편집자, 김뉘연의 인터뷰를 빼놓을 수 없다.

사진의 가운데 인물이 김뉘연 씨다.

김뉘연씨에 관해 검색하던 중, 김뉘연씨의 소개문구로 '언어를 재료로 작업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었다.

상당히 멋진 말이었다.

실제로 그의 인터뷰에서 얻은 인사이트들을 더한 멋들을 지니고 있었다.


편집이란 '협업을 기반으로 한 혼자만의 작업'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어떤 가치를 중시하냐는 질문에 김뉘연 씨는 답한다.


수동적인 접근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제게는 중요해요.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태도는 그만큼 나도 피해를 받고 싶지 않고, 모두와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면서 번거로운 일이 발생하지 않을 정도로만 사회에 개입하고 싶다는 의미가 있으니까요.


글을 쓰다보면, 에디팅을 하다보면 어떤 주제든 민감한 사안과 입장차를 마주할 때가 있다. 선호와 평가의 경계가 흐릿한 필자의 문화 콘텐츠들이나 평가가 반드시 수반되는 스포츠 콘텐츠들이기에 더욱 어려움을 많이 느꼈다. 글을 쓰는 과정에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하다가 일부 문구를 수정하거나 통째로 내용을 생략하기도 해봤기 때문에 김뉘연씨의 '수동적인 접근'은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다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시 하는 가치라고 밝힌 점은 의외였다.


브루터스 BRUTUS, 그리고 까사 브루터스 CASA BRUTUS의 니시다 젠타의 인터뷰도 인상적이었다.

앞선 글들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들의 메시지들 중 필자의 뇌리에 꽂히는 내용들을 '인사이트 선물'이라고 스스로 칭했다. 책 한 권으로 저명한 에디터들의 철학을 공유받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선물임이 분명하다.


니시다 젠타의 경우, Brutus.jp 웹사이트를 어떤 식으로 구현해 나갔는지에 대해 밝혔는데, 어떻게 보면 다분히 기술적인 내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에디팅의 방향성에 대한 조언으로도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모든 기사를 낱개로 나눠서, 특정 키워드로 연결하는 방식을 추구합니다.

의자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그 디자이너의 출신지인 '캘리포니아'라는 키워드를 클릭하면 캘리포니아에서 제작하는 구두에 관한 기사로 넘어가고, 그 기사에 적혀있는 '컬래버레이션'이라는 단어를 클릭하면 이번에는 애니메이션 업계의 협업에 대한 기사로 방향이 전환됩니다.
별 생각 없이 읽어 내려가던 중에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브루터스>를 편집할 수 있는 형식이죠.
즐겨찾기 페이지에 좋아하는 기사를 저장할 수 있는데, 그걸 한데 묶으면 나만의 <브루터스>가 완성됩니다. 회원가입은 무료, 검색은 유료 회원제로 제공하고 있고요.

에디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얻게 된 점이 있다면, 주제 간 상관관계들과 주제의 지속성에 대해 고민할 때, 그 Categorization의 방향성을 직접적으로 설정함에 압박을 느낄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다.


나라는 코어를 두고 써 내려가는 하나하나의 콘텐츠들은 결국 나만의 가치를 중심으로 묶이게 되어 있다. 브루터스에서 산발적으로 접하게 되는 기사들 중에 소비자들마다 저마다의 브루터스를 형성할 수 있는 것처럼, 결국 쓰는 사람이든 읽는 사람이든 자신만의 가치와 관심사를 중심으로 한 아카이브는 자연히 형성되기 마련이다.

굳이 서로 다른 테마들을 묶으려 하기 보다, 더 큰 틀에서 스스로를 바라보고, 관심사들을 묶을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것이 선행되야 함을 느꼈다. 


니시다 젠타는 에디터의 일을 이렇게 정의한다.

에디터란 다양한 것을 모으고 또 모아서, 그 안에서 좋은 정보를 골라 정리하고,
알기 쉽게 전달하는 직업입니다. 동시에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주어진 기획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아내고 팀을 만드는 능력도 필요하고요.

0에서 1을 만드는 게 아니라, 1을 10으로 만드는 것이 에디터죠.


동시에 젠타는 에디터에게 요구되는 자질에 대해서도 명확히 언급하였는데, 

계중에 "본인의 취향과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쓸데없는 걸 잔뜩 끌어모을 수 있는 인내력과 집중력"에 눈길이 갔다. 니시다 젠타가 여기서 말하는 '모은다'는 행위는 단순한 수집을 넘어, 최대한 많은 것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좋아하는 주제일수록 많이 공부하고, 사방팔방으로 손을 뻗어 '잡식'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니시다 젠타는 말한다. 


호기심을 절대 남에게 전가하지 말라는 것. 

에디터라면 자신의 호기심을 먼저 만족시킨 후에, 그 것을 타인에게 가장 흥미로운 방식으로 전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뒤따라 와야 한다. 


니시다 젠타가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인용한 부분이 있었는데 흥미로우면서도 공감이 가는 말이라 이 글에서도 인용하려 한다.


선과 악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사람은 매력적이거나 지루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렇게 계속해서 에디터는 '매력적'이어야 하고, 누구보다 본인의 취향과 호기심,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집중해야되는 사람임을 강조하였다. 추가적으로 던진 조언은 싫어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 좋아하는 게 많은 사람에게는 지루할 틈이 없다는 것. 

이 말에 니시다 젠타가 제시하는 에디터의 자질은 갖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씩 하고 웃었다. 

이러한 건방진 생각에 스스로 위안을 얻으며 동시에 건방진 생각 자체를 반성하기도 한 필자였다.



필자의 '직업적' 목표는 페스티벌을 제작, 기획하는 헤드가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페스티벌을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비롯된 목표의식이, 점차 글도 쓰고 크고 작은 콘텐츠 제작을 하면서 보니 '기획'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깨달음으로 번졌다. 그렇게 일련의 과정으로 에디팅 활동을 하며 이제는 '에디터'라고 소개할 수 있을 때가 되자 '기획자'에 대한 도전의식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기획에 대한 불씨를 지펴준 건 츠타야와 CCC의 헤드, 마스다 무네아키 씨와 관련된 여러 서적들이었다. 그 첫번째 이야기로 하스다 무네아키의 <지적자본론>에 대해 말해보려 한다.


마스다 무네아키 씨가 강하게 던져준 인사이트는 바로 고객 중심적 사고에 대한 울림이었다.

소비자, 고객의 마인드에서 생각하고 기획하는 것이 중요함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어떻게 보면, 이 인사이트가 평소 필자의 방향성과 같아서 더 와닿았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브런치에 페스티벌 글을 쓰기 시작할 때, 현업에서의 경험이 없는데 과연 이런 글들을 써도 되는 걸까에 대해 계속 고민했었다.

필자가 찾은 해답은 "내가 쓸 수 있는 것을 쓰자. 모르는 내용을 아는 척하지 말고, 겪어보지 못한 내용을 경험한 척 쓰지 말고, 철저히 내가 경험하고 아는 바에 기반해서 써보자."였다.

그렇게 페스티벌을 매번 돈 내고 참여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 지금은 수많은 아이디어들과 페스티벌들에 대한 리뷰, 보완점에 대한 가감없는 의견이 아카이브로 쌓이게 되었다.

철저히 소비자의 입장에서 쓰기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페스티벌을 제작하는 입장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인식'일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기업들에서 A/B테스트를 하고, 시장조사를 하고, 끊임없는 피드백과 개선의 과정을 거치는 것, 스타트업에서 일련의 테스트로 과감한 피봇팅을 하는 것, 이 모두 소비자의 반응에 기초한 결과들이다. 결국 기업들에서 비용을 투자하여 그렇게 알고 싶어하는 '소비자의 가감없는 생각'을 시작부터 담기 시작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글을 쓰는 마음가짐도 훨씬 편해졌던 듯 하다.


'고객 가치'라는 말과 관련하여 말한다면, 나는 '세계 최초의 시도'라는 문구를 거의 믿지 않는다. 따라서 그런 문구를 쫓아다니거나 흉내 내는 일은 절대로 삼가야 한다. 대체로 그 말이 나타내는 것은 상품을 판매하는 쪽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쪽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데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고객의 입장에 서 보면 즉시 알 수 있다. 물론 새로운 물건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누구보다 일찍 신상품이나 서비스를 손에 넣고 싶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고객이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그것이 세계 최초인가, 하는 점보다는 자신에게 얼마나 쾌적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츠타야는 고객에 집중하였고, 고객의 시선에서 모든 문제를 접근하였다. 그 결과, 츠타야는 의도하지 않은 '혁신'을 일으켰다.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보다 쾌적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것이, 결과론적으로는 다른 기업들에서 시도조차 하지 않은 '혁신적인 시도'가 된 모양이다. 

마스다 무네아키에 따르면 기획의 가치란,  '그 기획이 고객 가치를 높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다시 말해 '사람들 눈에 띌 것이다.', '이런 모습을 어필하고 싶다.', '이렇게 하면 이익이 증가할 것이다.'가 아니라, 소비자의 입장에서 정말 편하겠다는 생각에서 시도하는 것. 즉, 고객의 입장에서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확신해서 기획하는 것이 포인트다. 고객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영업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이 증가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 것이다. 


'편하다'라는 단순한 감각. 이를 테면 CCC와 츠타야를 운영하면서 온라인 스토어에 대항하는 오프라인 상점의 방향성을 철저하게 소비자 중심적으로 생각한다. 요즘 같이 인터넷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사회에서 물리적인 장소에 사람을 모으려면 인터넷 상에는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식적으로 도입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공간 디자인에 눈을 돌리고 휴먼스케일을 적극 고려하기 시작한다. 

<휴먼 스케일 Human Scale> : 인간의 체격을 기준으로 한 척도. 인간의 자세, 동작, 감각에 입각한 단위

사람에게 풍경을 느끼게 하는 것은 빛과 눈의 위치이고 거기에 가장 적합한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 건축가나 디자이너의 작업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서점에서는 절대 고려되지 않을 것만 같던 이 건축, 디자인 적 개념인 휴먼스케일을 무네아키는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하다보니 강하게 고려하게 된 것이었다.


<지적자본론>을 읽으면서 끊임없이 페스티벌 시장에 이를 대입하였다.

페스티벌에도 고객 관점에서 피부에 와닿는 문제점들이 수없이 많이 있다. 문제로 인식되지는 않지만 개선 가능한 점들도 너무나 많다. 서점의 새 지평을 연 마스다 무네아키처럼, 디테일에 집중하고, 철저히 소비자의 관점에서 인사이트를 쌓다 보면 분명 페스티벌의 기획과 관련해서도 유례없는 해답들을 찾아 전반적인 문화 발전의 활로를 개척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간 Magazine B <JOBS : EDITOR>를 읽으며 에디터로서 어떻게 좋아하는 관심사들을 다루고 접근하는지를 배웠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며 하기 위한 다음 단계는 기획자의 마인드. 오늘은 그 기획자의 인사이트에 관한 첫번째 이야기였다.  




오늘 정말 존경하던 농구선수인 코비 브라이언트가 사망하였습니다.

코비 브라이언트에게서 얻은 인사이트도 한 편의 글로 쓸 수 있을 만큼 상당했습니다.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o try and inspire people so that they can be great in whatever they want to do

- Kobe Bryant (1978 - 2020)

코비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오늘은 그를 상징하는 Purple&Gold로 글의 마무리를 장식합니다.

제가 얻은 인사이트들을 실천하고 공유하며 코비 브라이언트처럼 누군가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Mamba For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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