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기생충 팀이 [1917], [조커], [원스 어폰어타임 인 할리우드] 등 수많은 대작들을 제치고 오스카 4관왕의 기염을 토하는 그 장면을 영광스럽게도, 실시간으로 보았다.
벅차오르는 순간이었다.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 및 댓글들에서 '국뽕'을 외쳤다.
모두가 찾고 있는 '주모'는 이미 너무 많이 불려다녀서 자리에 없다더라.
나도 주모를 외치며 '국뽕'에 한 껏 취했던 시청자 중 한 명이었으나, 오늘 같은 날은 이 표현보다는 뭔가 더 격식있는, 조금 더 담담하면서도 멋진 표현이 없나 고민하기도 했다.
그도 그랬던 것이, 아카데미 시상식을 이렇게 생방송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했던 것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는데, 내가 알던 수많은 해외 영화인들 사이에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팀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이질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이질적이고,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벅차고.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시상식 초반, 남우조연상을 발표하는데, 후보군에 오른 세 명의 배우가 알 파치노, 톰 행크스, 브래드 피트였다.
"무슨 이런 시상식이 다 있나." 하며 경외로움만 느끼고 있었다.
언론들에서 기생충은 작품성과 흥행에 비해 아카데미에서 상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예측한 것을 많이 보았다. 때문에, 나도 큰 기대를 하고 보지는 않았고, 그들의 노고와, 제작진, 배우들의 기대가 너무 헛되이 느껴지지는 않도록 본상 하나 정도만이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Team Parasite는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 최우수작품상을 모두 휩쓸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기억에 남은 장면은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한 장면.
타란티노 감독, 마틴 스콧세이지 감독, 그리고 다른 두 감독을 모두 치켜세우며,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는 모습에서 굉장히 값진 가르침을 받은 기분이다.
특히 마틴 스콧세이지 감독의 말을 인용할때는, 통역의 말을 빌리면서도 가장 중요한 'the great 마틴스콧세이지의 말이다'라는 문장은 직접 영어로 말하는 진심이 담긴 모습.
HUMBLE. 겸손하다는 뜻의 댓글들이 외신은 물론 해외 커뮤니티 댓글들에 도배되었다.
정상의 자리에 올라 경쟁자이자 동료이자, 선배이자, 스승인 감독들에게 아낌없는 존경을 표현한 것은
그만큼 봉준호 감독이 지금까지의 과정을 거쳐오는 동안 진심으로 그들에게서 많은 배움을 얻고, 진심으로 그 과정 하나하나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마틴 스콧세이지의 말이 오늘 하루 언론에서 끊임없이 재조명되고 있는데, 아마도 한동안 나의 머릿속에는 그 한 마디보다 이 전반적인 장면이 남아있을 듯하다.
본인에게 깊은 영감을 준 그 한 문장을 본인의 감독인생동안 숱하게 되뇌이며 노력했을 봉준호 감독의 진심어린 수상소감 전체가 나에게는 깊은 울림을 주었다.
어디에서든 멋진 사람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니, 정말 많은 인사이트들이 찾아온다.
오늘 시상식도 단순한 '국뽕 충전'의 이벤트가 아닌, 나에게 많은 울림을 주는 시상식이었다.
2. 이제는 완전히 나의 사적인 이야기.
봉준호는 어렸을 적부터 대단한 영화감독이 되기를 꿈꿨다.
몇 년 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하여, 배철수 님이 이러다 나중에 오스카나 골든글러브 받는 거 아니냐고 묻자, 그럴리가 있냐며 손사래를 치던 그였다. 당연히 인생의 목표에 이런 상이 자리하고 있지는 않았겠지만, 이 상을 받을 만큼 멋진 작품을 만드는 멋진 감독이 되는 모습은 그의 머릿속에 있었을 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어로만 된 영화가 오스카에서 상을 받았다. 그것도 4개나.
BTS 열풍부터 오늘의 봉준호까지, 한국 문화의 힘이 나날이 증가하는 것 같다.
풀이 증가하면 그만큼 꿈을 바라보고 달리는 이들에게는 기회도 많아지는 법이랬다.
봉준호는 32살에 데뷔했다.
26살의 내가 지금 또래 친구들이 대기업들에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조급함을 느끼면서도, 조금씩 천천히 꿈을 향해서 단계를 밟아가는 데에는 오늘과 같은 장면들의 공이 상당히 크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준비를 착실히 해나간다면.
나도 멋진 사람이 되지 않으라는 법이 없다.
관건은 코비의 말을 빌려, 무한 Keep Going이다.
오늘 아카데미 시상식 중 나왔던 코비의 모습
나의 꿈은 훗날, 벨기에의 투모로우랜드, 영국의 글라스톤베리처럼 페스티벌 하나만 보고 대한민국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꿈꾸는, 그런 이벤트를 만드는 것.
지금은 전혀 가능성이 없어보이는 꿈만 같은 일에 한 단계씩 가까워져가는 것.
공책에 한 칸 한 칸 그림을 그려가며 꿈을 키워나갔던 어린 날의 봉준호 감독처럼,
몇십년이 지나 지금 이 순간을 되돌아봤을 때, 이 작지만 단단한 꿈이 현실로 이루어져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