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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욜수기 yollsugi Mar 07. 2020

일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욜수기의 짧은 호흡 #5

#Sagerstrong

2016년 12월 15일, NBA 중계화면에 자주 잡히던 노년의 리포터 한 명이 사망하였다.
NBA에서 리포터가 갖는 역할을 계량화시킨다면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할까, 아마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리포터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사망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물결은 아주 컸다.
화려한 패션과 늘 함께했던 리포터. 백혈병과 맞서 싸웠던 리포터. 모두에게 사랑과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 멋진 리포터.

바로 NBA 사이드라인 리포터 Craig Sager 크레익 세이거의 이야기이다.

#Sagerstrong 이라는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검색해보면 295,000여개의 게시물이 나온다.

크레익 세이거 씨가 백혈병 투병으로 인해 리포터로 나서지 못하게 되자, 많은 NBA 관계자들과 팬들이 이 해시태그를 달고 그의 모습을 SNS에 올리며 그에게 힘을 싣어 주었다. 이후 그의 상태가 호전되어 15-16 시즌에 다시 리포터로 복귀하자, 그의 복귀를 축하하고 병을 이겨낸 그의 강인함에 모두가 #sagerstrong을 또다시 외쳤다. 그리고 2016년 3월 병이 재발했을 때, NBA 커뮤니티는 다시 한 번 Sagerstrong의 물결에 동참하며 그의 행보를 응원하였다. 병이 재발했음에도, 늘 그랬듯 화려한 옷과 누구보다 행복해보이는 미소로 NBA 경기장에 매일 등장하여 리포터로서의 본분을 다했던 그였다. 안타깝게도 같은 해 12월 15일, 크레익 세이거는 세상을 떠났다.


NBA 전통의 강팀인 샌안토니오 스퍼스를 몇십년간 이끌어오며, 성적만큼이나 시니컬하고 짧은 인터뷰로도 유명한 그렉 포포비치 감독(Greg Popovich),

유튜브에 그렉 포포비치 감독과 크레익 세이거 리포터의 인터뷰 장면이 하이라이트로 모아져 있을 정도로 둘 사이의 인터뷰는 특유의 케미를 자랑한다.

마침 세이거 씨가 세상을 떠난 날 포포비치 감독 또한 피닉스와의 경기가 있었고, 경기 인터뷰 후 경기내용보다 크레익 세이거의 이야기를 우선적으로 하였다.

이런 날에는 농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린 오늘 아주 유니크하고 특별했던 사람을 생각할 테니까요
To talk about [Sager] being a professional or good at what he did is a tremendous understatement.
크레익은 정말로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직업에 대단히 프로페셔널한 굉장한 사람이었지요.
...[B]ut he was a way better person than he was a worker, even though he was amazing in that regard.
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의 일에도 엄청난 워커였지만, 그것보다도 더 좋은 사람이었다는겁니다.

He loved people, he enjoyed pregame, during games, postgame—he loved all the people around it, and everybody felt that.
그는 경기전, 경기중, 경기후 언제든 자신의 일을 즐겼고, NBA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습니다. 당연히 사람들도 그의 그런 마음을 느꼈죠.

... What he's endured, and the fight that he's put up, the courage that he's displayed during this situation is beyond my comprehension. And if any of us can display half the courage he has to stay on this planet, to live every [day] as if it's his last, we'd be well off.
하지만 내가 그에게 가장 놀랐던 부분은, 바로 그가 발휘한 용기였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그런 어려운 상황을 견뎌내고 이겨내는 용기는 나로서는 도저히 믿기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것이었으니까요. 우리들중 누구라도 그가 이 세상에서 보여준 용기의 반만이라도 발휘할수 있다면, 우리의 삶에서 더 나아가고 좋아질 수 있을겁니다. 모두가 정말로 그를 그리워할겁니다.


크레익 세이거의 타계 1주기였던 2017년, 아내 스테이시 세이거 씨는 스포츠 매거진 <The Players’ Tribune’>에 추모의 글을 올렸다.

지난 1년간, 가는곳마다 사람들은 나에게 와서 “내가 세이거씨와 이런 일이 있었는데등의 말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크레익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제가  이야기들을 몇번이고 들어봤거나, 너무 많이 들어 지쳤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반대였어요.
크레익의 이야기를 듣는 , 그것은 평생을 이야기꾼으로 살아온 그를 추모하는 가장 완벽한 방식이에요. ‘이야기들은 크레익의 연료  자체였죠.

지금 그가 세상에 없을 , 그의 유산은 이렇게 그와 시간을 함께한 사람들 사이에서 일화, 이야기들로 남아있어요. “


아름답고 어드벤쳐스러운 크레익 세이거의 인생책을 읽어나가는 것,
모든 만나는 사람이 각자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그 한 챕터, 한 챕터가 저에게 조금씩 드러나는 것,
이는 정말 아름다운 일이에요.
- Stacey Sager


모두가 크레익 세이거의 이야기를 한다고 그의 아내도 말했고, 포포비치 감독도 말했다. 숱한 NBA 선수들, 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모두는 각자가 크레익 세이거씨로부터 영감받은 바가 있었고, 남들에게도 그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만큼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에서 배울 점이 많은 어른이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그저 NBA를 열심히 시청하는 농구 팬 중 하나였지만, 나에게도 매일 중계화면에 보이는 꽃무늬 옷의 할아버지는 익숙하게 느껴졌다. 매일같이 웃고 있는 선한 표정, 선수와 감독 한 명 한 명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느낌, 그리고 경기 자체를 아우르는 정제된 질문으로 무장한 프로페셔널리즘, 나처럼 그를 몇 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존경의 마음을 갖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Time is something that cannot be bought; it cannot be wagered with God, and it is not in endless supply, Time is simply how you live your life.
시간은 절대 살 수 없는 것이죠, 신에게 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무한한 것도 아니죠.
‘시간’이란 단순히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원래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늘 강조하고, 항상 행복해보이는 모습으로 본업을 다하며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던 그였다. 그런 그도 백혈병 투병의 시간을 통해 어쩌면 본인 스스로 시간의 소중함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화려한 꽃무늬의 할아버지는 독특한 패션으로 선수들에게 “왜 그런 식의 옷밖에 못 입느냐”는 장난스런 구박을 받으며 그를 잘 몰랐던 시청자들에게까지 그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알게된 사람들에게 ‘사랑과 긍정’에 대한 메시지를 일평생 던져왔다.
‘선한 영향력’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유쾌한 포포비치 감독과 세이거 리포터의 인터뷰  가지로  글을 마무리합니다.
번역은 [나무위키의 <그렉 포포비치> 감독] 내용을 인용하였습니다.
무뚝뚝한 감독과 미소 가득한 리포터의 인터뷰면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낄 것입니다.


1.평상시 두 사람의 인터뷰

평상시의 인터뷰는 항상 이런 식이다.
크레익 세이거 : 감독님 3쿼터 초반에 분위기가 좋았는데 그 이유는 뭔가요?
그렉 포포비치 : (시크한 단답) 우린 노력했어.
크레익 세이거 :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마누 지노빌리를 4쿼터 공격때 어떻게 쓰실 건가요?
그렉 포포비치 : (다시 단답) 지금과 똑같이.


2. 크레익 세이거가 처음 백혈병 판정을 받고 리포터로 나서지 못했을 때, 그의 아들, Craig Sager Jr. 가 대신 인터뷰를 하였다.

당일 뉴스 헤드라인을 꽉채운 이 둘의 인터뷰, 따뜻함이 묻어나온다.
세이거Jr. : 정말 반갑습니다, 감독님.
포포비치 : 그래, 너희 아버지 크레익 세이거는 어떠냐?
세이거Jr. : 건강합니다. 3쿼터 끝나고 동점인데 지금 팀의 퍼포먼스를 어떻게 보시나요?
포포비치 : 우린 그렇게 좋은 플레이를 못했지만 댈러스 수비가 좋았다.
세이거Jr. : 곧 4쿼터가 시작되는데 스퍼스에 어떤 게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포포비치 : 우선 상대를 멈추게 해야지. 잘했네. 정말 좋은 질문이었어.
세이거Jr. : 저희 아버지에게 어떤 질문을 해야 하냐고 여쭤보니 “아들아, 네가 하고 싶은 질문해라”라고 하셨어요.
포포비치 : 근데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넌 아주 잘했다. 하지만 난 너보다 너희 아버지가 여기 있길 원해. 이봐 크레익, 우리는 당신을 정말 그리워하고 있네, 당신은 오랫동안 NBA에서 대단한 일들을 해왔어. 난 당신이 코트에 돌아오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네. 자네가 다시 돌아와서 내게 인터뷰하면 친절하게 대답해 주겠네. 빨리 돌아오게, 행운을 비네.

무뚝뚝한 포포비치였기에 더욱 그의 친구 세이거를 향한 애정이 묻어나는 인터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3. 이후 크레익 세이거의 상태가 호전되어 리포터로 복귀했을 때, 포포비치 감독과의 첫 사이드라인 인터뷰이다.

세이거는 복귀 이후 다시 병이 재발했음에도, 한 경기도 빼지 않고 치료를 받으며 리포팅에 나서겠다고 밝혔었다. 대단한 프로페셔널리즘.
솔직히 말하는데, 나는 난생처음으로 이런 어이없는 인터뷰를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게 되었어.
바로 자네가 우리 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지. 복귀를 환영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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