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아하는 장소, 나만 알고 있는 장소,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장소가 있으신가요?
소위 ‘최애’ 장소가 있나요?
그간 하우머치에서 공간, 장소를 떠올려 본 적은 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장소는 감정을 내포합니다. 그 장소에 갔을 때, 어떤 감정이 드는지가 머릿속에 또렷하게 남기 마련이죠.
그 감정이 좋으면 좋을수록, 명확하면 명확할수록, 그 장소가 나에게 갖는 좋은 인상은 커질 겁니다.
하우머치 필진들에게 ‘최애’ 장소가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의 가치인지 물어보았습니다.
하우머치 시즌2 8번째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진공악단 1,350,000원
영화관마다 다르지만 오전, 그중에서도 조조할인이 종료되는 10:00~11:00 즈음에 영화를 예매하면, 상영관에 혼자 입장할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생긴다.
사실 피크 타임이 아니고서야 다른 사람들의 존재가 영화 감상에 크게 방해되진 않는다. 난 그렇게 예민한 사람은 아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소수라 할지라도 누군가 한 공간에 같이 있는 상황과 오롯이 혼자서 있는 상황은 다르다. 그리고 정말 드물게 찾아오는 이런 행운을 나는 굉장히 좋아한다.
처음엔 이 넓은 장소를 나만을 위해 빌린 것 같은 부자의 기분을 느껴볼 수 있고, 영화를 보면서는 각 장면에 대한 나의 감정을 눈치 볼 필요 없이 밖으로 드러낼 수 있고(속으로 감탄하는 것과 입으로 '와'하고 소리를 내는 것은 분명 다르다), 영화가 끝나고 난 후 까먹기 전에, 대놓고 스마트폰을 켜서 떠오르는 생각을 기록하거나 궁금한 점을 검색할 수 있다.
혼자 있는 상영관이 좋은 건 단순히 영화 감상에 불편함이 없어서만은 아니다. 평일 기준 9000원을 지불하고 약 두 시간동안 혼자 있을 수 있는 (심지어 넓고 온도 조절 장치도 빵빵하게 틀어주는) 실내 공간을 찾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영화를 보지 않고 아무 생각없이 앉아있다가만 와도 충분히 좋다. 실제로 <빅터 영 페레즈>라는 영화를 보면서 그런 적이 있는데, 영화가 너무 재미없어서 한 시간은 딴 짓하고 한 시간은 자다가 나왔다. 영화에 대한 왓챠 평점은 1.5점을 줬지만, 상영관에 있던 시간은 꽤 좋았다. (전반적으로 조용해서 수면에 방해가 되지 않았기에 0.5점을 더 줬다.)
아무때나 이 장소에 갈 수 없어서 아쉽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 글을 쓰며 계산을 해보니 돈을 정말 많이 벌면 그렇게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걸 알았다.
월~목 기준 2D 성인 요금 : 9000원 상영관 평균 좌석수 : 150석
9000원 x 150석 = 1,350,000원
돈을 많이 벌자.
@라파두부 -3,800원
대학교 때 저는 도서관에 가기 싫어하는 학생이었습니다. 앉아서 공부하는 게 싫어서 수업도 일부러 시험 없고 과제가 많은 과목으로 골라서 들었어요. 그런 과목들의 과제를 할 때면 저는 항상 집 앞의 카페들을 전전하고는 했는데요. 스타벅스나 이디야 같은 프랜차이즈도 많이 갔지만, 진짜 힘이 들 때는 '저만의 카페'에 찾아가고는 했답니다.
(카페 사장님께는 죄송하지만) 손님이 별로 없어서 한적했던 그 카페에는 큰 통유리로 된 창 앞에 바 자리가 있는데요. 거기 앉아서 창 밖으로 보이는 백제고분의 풍경과 하교하는 중고등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노트북 화면에 과제가 뚝딱 완성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워낙 자주 가다보니 가끔 알바 분이 과일이나 빵을 주시기도 했구요.
그런 매력이 입소문이 났는지, 요즘 그 카페는 수다를 떠는 아주머니들로 북적북적 거립니다. 예전같은 한산한 매력은 없지만, 여전히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거리는 정겹고 커피 맛은 좋은 그런 곳입니다.
제가 그 카페 사장도 아니고, 감히 카페 앞 바자리의 가치를 매길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저희 동네에 오시면 제가 커피 한 잔 사드리겠다는 뜻으로 그 자리를 -3,800원으로 책정해 봅니다.
@코로나 그만ㅠ 10만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한강진역 근처에 있는 한 카페이다. 2년전에 우연히 공부하기 위해 간 적이 있는데 집중도 너무 잘되고 분위기도 좋아서 한동안 거기만 간적이 있었다ㅋㅋㅋㅋ 심지어 집이랑 학교에서 가까운 거리도 아니었는데 굳이 찾아서 갔었다. 요즘은 예전만큼 열정이 사라져서 최애장소라고 하기는 애매한 면이 있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그 카페만큼 내가 열정적으로 찾아서 어느 장소를 간 경험이 없기에 그 카페로 정했다. 생각한 김에 이번 주말에 한번 가야겠다!
@뭉방구 0원
최애 맛집도 있고, 최애 카페도 있고, 최애 거리도 있는 나는 집순이와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지만, 뭐니뭐니해도 내 방이 최애장소이다. 여기서 말하는 ‘애’ 는 ‘편안할 애’ 이다. 좋아한다는 기준은 참 다양할 수 있는데, 나만의 공간이 내 방은 편해서 좋은 곳이다. ‘가서 가만히 있기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은 따로 있지만, 어딘가에 72시간을 갇혀있어야한다면 난 아마 내 방을 택할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최애장소인 내 방의 금전적 가치는 0원이다. 소중하지만, 내 방은 가장 편안하게 내 본연의 모습대로 있을 수 있는 아마 유일한 공간이지만, 어디든 내 방이 될 수 있고, 내 방은 언제든 나의 것이 아닐 수 있다. 그리고... my own room 이라는 공간에 어떤 자본주의적인 개념을 가져다 붙이고 싶지 않다. 그 순간 최애는 편안하지 못한 곳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이기 때문이다.
@hstone 5000만원
집에서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이 2개 있다. 2-3분정도 빠르지만 언덕을 내려가 인쇄골목과 상가에 붐비는 사람들을 지나가는 길, 조금 느리지만 한적하고 자연을 물씬 느낄 수 있는 남산골 한옥마을을 가로질러 가는 길. 얼핏 들으면 후자의 길이 더 좋아보이지만(내가 그렇게 표현한 것 같기도..) 각자먀의 매력이 있다. 한옥마을로 가면 편의점과 빵집에서 맛있는 군것질을 할 수 없을뿐만 아니라 나의 놀잇거리들과 거리가 멀어진다. 하지만 한옥마을은 20년을 함께해온 집 앞마당과 같이 편안함과 함께 깨끗한 공기를 나에게 선사한다. 아직까지도 한옥마을 길이 더 좋아보인다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최애장소가 어디란 말인가 이야기하자면 언덕길과 한옥마을 길을 고민하는 집 앞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의 시작을 결정하는 그 순간, 그 장소. 선택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기도 하며 첫단추를 끼우는 느낌을 주는 집 앞이 내 최애 장소다. 선택하지 못하고 한 길로만 다녀야한다고 한다면 나는 5000만원정도 받고싶다.
@빵진
우리집 집돌이는 아니긴 하지만 그래도 최애장소인데 집을 빼놓을 수가 없다. 최애 장소인 이유는 단순히 몸과 마음이 어느 순간에도 가장 편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 집에 원래 이사오고 싶지 않아서 그런지 생활을 하면서 이사왔을때 초반의 미운정(?)까지 같이 들어 더 마음에 드는 것 같다. 최애장소인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은 아무것도 할 게 없어 뒹굴거리다가 운동갔다 온 후에 씻고 커피를 내려 마시면서 또 뒹굴거릴 때이다. 날씨가 좋아 거실 창문의 경관이 그림같으면 금상첨화일듯. 하지만 막상 3일 이상 혼자 집에 있으면 몸이 근질근질해서 나가고 싶긴하다. 내 생각엔 싸강으로 폭주하고 계신 교수님들의 과제폭탄을 온몸으로 맞아가는 상황 속에 무의식적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는 욕구가 발현되어 우리집이 다른 경쟁 장소를 물리치고 최애 장소로 뽑힌 것 같기도 하다.
@오춘기 월 30만원
요즘 늘 생각하는 것들 중 하나, ‘공간’에 대한 주제라 반갑다. 사실 지금도 나의 최애 장소는 많지만, 맛집, 카페, 내 방 침대.. 앞으로 생길 나의 공간을, 꿈꾸는 최애 장소로 써보려 한다. 이상하게 최근들어 내 공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누군가는 이런 마음이 들면 독립해야 한다고 하던데, 아직까지 그런 여건은 안되고. 조용한 나만의 공간이 있었음 하는 바람! 부쩍 생각 정리할 것도 많아지고, 할 일도 많아지고 그 과정에 아무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그런 점에서는 집은 적합한 공간이 아니다. 경제적 요건만 갖추면 작업실 하나 갖고 싶은 마음인데, 거창하게 말해 작업실이고 그냥 내 방 하나 더 갖는 거다. 공간이고 인테리어고 내 돈, 내 취향 넣는 거면 애착이 안 갈 수가 없겠지. 내 원룸도 좋고 공동 작업실도 좋고 내 카페도 좋다. 아직까진 언제가 될 지 감이 안오지만, 짬짬히 생각하고 차곡차곡 모아서 실현시켜야겠다. 내 공간에 대한 가치, 하루에 만원, 월 30만원으로 적겠다.
@청춘 150만원
지금까지 시즌 1과 2에 걸쳐 여러 테마로 금액을 정하고 뒷 이야기를 적어왔는데, 이번이 그 중 가장 개개인의 스토리가 묻어나는 주제가 아닌가 싶다. 이번 주제를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머리에 스친, 나의 최애장소는 6개월 동안의 교환학생 생활을 함께 한 기숙사다. 대학에 진학하고 성인이 된 이후로 가장 행복하고 근심없던 평온한 시절을 함께 했으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당연한 듯도 싶다. 평온하다고 잔잔하기만 하지도 않았고, 매일같이 새로운 즐거움이 내 일상을 채우면서도 그 사이사이에는 나 자신을 돌볼 잔잔한 시간도 있었으니 말이다. 지금도 내 방과 플랫을 떠올리면 아늑했던 그 공간에 다시 돌아간 것만 같다. 영화나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처럼 그 공간에서 있었던 일이 재생되는 것만 같고, 그때 들었던 노래나 그 당시 즐겨 뿌리던 향수를 뿌릴 때면 새로운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지금도 문득 막연한 그리움이 사무치곤 한다. 가격을 150만원으로 가격을 결정한 이유는 비행기 표를 대략 왕복 150만원에 끊었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너무 돌아가고 싶고 여행이 너무 가고 싶은데 코로나로 황금연휴에도 놀러가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그네 900원
내 최애 장소는 놀이터에 있는 '그네'고, 나의 최애 장소에 들어오기 위한 입장권은 '900원'이다.
최애 장소가 너무 많아서 고민하다가 선정 기준을 세워보았다. 선호도에 더하여 가격, 접근성을 모두 고려했을 때(즉, 낮은 가격과 비교적 쉽게 갈 수 있는 곳) 먼 나라에 있는 어떤 곳부터 지하철을 타고 1시간을 가야하는 곳 등등 다양한 공간이 있지만, '내 옆에 실질적으로 있으면서도, 자주 찾아도 닳지 않는 가치'를 가진 장소가 어쩌면 '가장' 최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장권이 900원인 이유는, 그네를 타러 오기 전 편의점에서 군것질 거리를 사서 들고 오기 때문이다. 그네에 도착하기 전에, 거의 다 마시거나 먹는다는 게 함정이긴 하지만:) 주로 삼각커피우유에 빨대를 꽂아 마시다가, 그네에 앉는다. 작은 달달구리와 이어폰, 그네가 있으면 내 최애 장소는 완성된다. 참, 대신 시간의 제약이 있다. 꼭 아이들이 떠나간 후의 '캄캄한 밤'이여야만 한다.
그네에 앉아 음악을 듣는 것도, 전화 통화를 하는 것도, 생각을 하는 것도 좋다. 내 힘을 더하지 않고 흔들거리는 그네 본래 속성에만 기대서 살짝살짝 움직여도 좋다. 발을 땅에서 살짝 딛고 일어나 앞뒤로 움직이며 높이 올라가는 것도 좋다. 그네 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마냥 좋기만 하다. 그네가 움직일 때마다, 내 안의 부산스러운 움직임들이 사라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보라빛 짙은 하늘, 하늘을 수놓은 별들, 나와 함께 그림자 놀이하는 나무까지, 그네가 선사하는 풍경도 완벽하다.
밤에 타는 그네는 내 안의 근심을 모두 날리고, 아무 생각 없이 어린이가 될 수 있는 사랑스러운 장소이다.
@타이밍
단순하게 대답하자면,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사람들이 있는 거대한 대형 카페들이다. 카페에서 조용히 책을 읽거나, 다이어리를 쓰거나 내 할일을 하는 것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이건 그냥 단순한 대답이고 좀 더 솔직하고 복잡한 대답을 하자면, 그 장소는 내게 소중한 사람들과 얼마나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좋은 사람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소소한 행복을 누린 장소는 모두 나의 최애 장소이다. 그래서 최애 장소가 주기적으로 바뀌기도 하고, 예전에 좋아하던 장소가 기억이 안날만큼 다른 장소들이 생성되기도 하지만, 장소보다는 함께 하는 사람이 더 중요한 내겐 적어도 최애장소라는 문구는 그런 의미이다.
@노는게제일좋아 24만원
숨겨둔 나의 건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에겐 기회가 된다면 데려가고 싶은 곳이 있다. 내가 예전에 살던 동네에 있는 맥주집인데 사장님께서 직접 만드신 요리로 해외여행을 다녀오셔서 거기서 찍은 사진들, 기념품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며두셨다. 음식은 말할 것 없이 너무 맛있고 체리페퍼가 짱짱짱이다.. 사장님께서 맥주를 좋아하셔서 편의점 네 캔 만원으로 파는 맥주들이 아닌 세계 맥주를 친절한 설명과 어울리는 안주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조명도 아늑해서 지인과 함께 맛있는 맥주를 함께하며 회포를 풀 수 있는 곳. 월급날 다른 곳에서 퍼가기 전에 달려가서 흥청망청 쓰고 싶은 곳. 그곳의 가치는! (24h * 10000) 그러하다! p.s. 궁금하신 분은 제게 연락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