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욜수기 yollsugi Jul 16. 2020

제너럴리스트 헨리

욜수기의 짧은 호흡 #12

요즘 주변에 헨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서 보기 좋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그렇다. 헨리가 비긴어게인에서나, 한 번씩 유희열의 스케치북, 나 혼자 산다 등에서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을 할 때면, 그 음악에 완전히 빠져있는 모습이 참 보기가 좋다.

이제까지 가장 많이 돌려봤던 헨리의 영상이라면, 단연 [비긴 어게인 3] 이탈리아에서 헨리가 바다를 등지고 Maroon 5의 Girls Like You를 연주했던 영상이었다. 루프스테이션을 이렇게 맛나게 쓰는 뮤지션은 흔치 않다. 때문에 사람들이 가장 커버를 많이 한다는 Maroon 5의 곡이었음에도,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던 것.


이번 [비긴어게인 코리아]에서도 가장 먼저 보게 된 영상 클립은 헨리의 'Youngblood'였다.

이제까지의 세 시즌이 유럽의 아름다운 거리를 담아내고, 조금은 친숙하고 일상적인 미장센으로 다가갔다면, 이번 비긴어게인 코리아는 그보다 시네마틱한 미장센을 담아내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영상에 담긴 헨리의 첫 무대 'Youngblood'는 영화의 한 장면 그 자체였다.

[비긴 어게인 코리아]의 첫 방송이 마포구에 위치한 드라이브스루 공간에서 진행되었던 만큼, 무대가 중앙에 위치해 있고, 수많은 차들이 둘러싼 장관이 연출되었다.

그 사이에서 시작되는 헨리의 루프스테이션 공연. 기타 사운드로 두 번 반주를 깔고, 비트박스를 입힌다. 그다음엔 키보드, 그다음엔 헨리의 보컬까지. 그때쯤이면 곡이 풍성해진다. 클라이맥스와 브릿지 부분에서는 헨리가 바이올린으로 강렬한 사운드를 더하기도.

루프스테이션은 이렇게 똑같은 구간에 여러 번 각기 다른 소리를 입히고, 이를 녹음, 축적시켜나가면서 음악을 완성시켜나가는 악기이다. 헨리 같이 다양한 악기를 다루고, 같은 악기라도 여러 가지 사운드를 입힐 수 있는 뮤지션이 사용하기에 적격인 악기라고 볼 수 있다.


이 루프 공연의 정점을 찍었던 것이 지난주 방영된 포항 제철소에서의 'Believer' 공연이었다.

벌써 몇 번째 돌려보는지 모르겠다. '북치고 장구 치고'라는 말이 실현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헨리는 혼자서 광활한 제철소를 가득 채우는 음악을 선보였다. 시작부터 이제까지 비긴어게인에서 못 보던 분위기였다. 텍스쳐가 입혀진 타이틀에 시네마틱한 미장센, 제철소라는 배경 때문인지 007 스카이폴의 명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촬영도 풀샷으로 텅 빈 제철소를 담아내다가도, 헨리가 제철소의 통들을 두드리고, 드라이버 소리를 음악으로 만들어낼 때면 그 모습에만 집중될 수 있도록 과한 줌과 아웃포커스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제철소에서 굴러다닐법한 물건들을 이용해서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건 음악을 넘어 예술이었다. 유튜브에 가끔 돌아다니다 보면 Pipe Guy라든지, 길거리 버스킹으로 깡통, 드럼통, 철물 등 일상에서 굴러다니는 소품들을 활용해 예술에 가까운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 영상을 볼 때마다, '너무 길거리 버스킹'이라 그 예술이 과소평가되는 듯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이번 Believer 영상은 헨리의 에너지와 미장센이 더해져 3분 22초의 짧은 영화를 만들어낸 느낌이다. 봐도 봐도 그저 놀라울 뿐이다.

루프스테이션을 보면서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스페셜리스트(Specialist)의 개념이 연상되었다. 

스페셜리스트들은 주목받기 쉽다. 한 가지를 특출 나게 잘하는 것, 한 가지에 몰두하여 성과를 이루어낸 것. 이 사회가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분업과 협업으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여' 공동의 결과를 이루는데 집중해왔기에, 한 가지 역할을 누구보다 잘하는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스페셜리스트가 아닌, 여러 가지를 다룰 줄 아는 제너럴리스트들은 여러 가지를 할 줄 알지만 '애매하다', '특출 난 한 가지가 없다'는 평가를 받기 일쑤였다. 동일한 에너지로 여러 가지 일을 모두 가장 잘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일반적으로 '선택과 집중'이 강조되는 기조가 유지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분명 변하고 있다. 예전보다 제너럴리스트들이 각광받고 있다. 협업의 중요성이 예전보다 덜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분명 '분업'은 예전보다 덜 강조되고 있다. 기업에서도 한 가지 일을 프로페셔널하게 하는 것만큼이나 여러 가지 실무 능력을 갖춘 사람을 선호한다. 쉽게 말해 두 사람에게 A와 B라는 두 가지 일을 시키려 할 때, 예전에는 A를 잘하는 사람 한 명, B를 잘하는 사람 한 명이 각자의 역할을 다해내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면, 요즘은 A와 B, 두 가지를 다룰 수 있는 두 사람이 모여 협업하고,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더 높은 가치를 둔다.

산업이 감히 예상도 못할 속도로 변화해가고, 그에 발맞춰 가기 위해 신사업 확장이나 피봇팅도 쉴 새 없이 이루어진다. 트렌드에 민감해야 하고, 변화에 대응하는 역량이 강조된다. 어느 능력이 주목받고, 어느 능력이 예전보다 중요도가 덜해질지는 아무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때문에, 제너럴리스트들의 가치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다. 여러 가지 일을 다 할 줄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애매한 사람'이 아닌, '모두와 소통, 협업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팀의 중요한 일부로 역할을 다할 것이다.

헨리는 분명 비긴어게인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부르는 가수가 아니다. 키보드를 가장 잘 치는 사람도 아니다. 기타도 마찬가지. 하지만 하림과 함께 비긴어게인에 가장 많이 출연한 뮤지션이 되어가고 있다. 하림과 헨리는 제너럴리스트, 다양한 악기를 연주할 수 있기에, 누구와 합을 맞추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그 색깔에 맞는 공연을 선보일 수 있다. 그럼에도 스페셜리스트들에 비해 제너럴리스트들의 가치를 현저하게 낮게 보는 사람에게 던진 메시지가 바로 '루프스테이션 공연'이다. 혼자서 음악을 완성시켜가고, 혼자서도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루프스테이션, 제너럴리스트의 길을 꿈꾸는 내게 헨리의 루프스테이션은 놀랍고 경이로운 예술이었음과 동시에 아주 든든한 응원이 되었다.

'뭐든지 다 잘하는' 헨리가
앞으로도 무슨 악기이든 '제일 잘하지는' 않더라도
다 음악에 잘 녹여내는 멋진 뮤지션으로
지금처럼 우리에게 많은 공연을 선물해주길 바라고 응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