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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욜수기 yollsugi Sep 10. 2020

걸그룹도 스타트업이 있다?

팀명은 API, 타이틀 곡은 Hello World. 심지어 IT 세계관.

인스타그램을 보던 중 스토리를 넘기다가 스파르타코딩클럽의 광고가 맞춤 광고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이게 뭔가 싶었다. 스파르타코딩클럽에서 코딩교육 광고를 하는데, 그 광고를 하는 걸그룹 이름이 API라. 우연의 일치를 이용해 말도 안되는 마케팅을 펼치는 교육업체와, 이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인 기획사 간의 합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말을 아꼈지만,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마케팅을 하는 걸까라며 궁시렁댔었지.


하지만 그로부터 약 한 달뒤, 이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본격적으로 이 걸그룹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알아보지도 않고 무작정 광고 하나 보고 오해를 한 것에 대해 걸그룹 API와 스파르타코딩클럽, 기타 관계자 분들께 죄송하다는 말을 전한다.


오늘의 글은 걸그룹 API에 대한 내용이다.


걸그룹 API는 Awesome Pretty Idol이라는 뜻으로, 다소 오글거리기도 하고 직관적인 걸그룹 이름이다.

우리가 예상한 그 API (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의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겨냥한 것이 맞다. 

이 걸그룹은 스타트업 걸그룹이라고 불린다. 그 이유는 기획사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기획사는 없고, 걸그룹에게 투자해주고 지원하는 엑셀러레이터만 존재할 뿐이다. 그 외 모든 것은 API 멤버 다섯 명이 총괄한다.


원래는 홀리데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했던 걸그룹, 그러나 어느 순간 회사가 망해버렸다.

다른 팀이었다면, 해체 수순을 밟고 다른 소속사로 옮겨 연습생 생활을 이어가거나,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이 일반적이었을 것.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법무사와 상담 후 법인을 만들고, 현재 이들의 엑셀러레이터로 있는 정상교 대표의 자문으로 '걸그룹 스타트업'이 된 것.


정상교 대표가 엑셀러레이터 역할을 맡으면서 내건 조건은 두 가지였다고 한다.

팀 명을 API로 바꿀 것, 그리고 타이틀 곡 이름을 Hello World라고 하는 것.

벙찔 정도로 신선하다. 실소가 나올 정도이다. 뭔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이 백그라운드를 들었음에도 "이런 컨셉질을 한다고? 엄청난 도박인데?"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이것 만으로 성공이 아닐까.


수없이 많은 수의 아이돌 팀들이 생기고 없어지고 한다. 신인 아이돌에게는 그룹을 알리는게 최우선이고, 한번 대중에게 이름이 각인되기만 하면 어느 정도의 성과는 보장되는 시장 시스템이다.

문제는 그 '알린다'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서 그렇지.

API의 전 이름도 홀리데이, 사실 대형 기획사가 아닌 이상 뜨고 알려지기에는 무리가 있는 지극히 무난한 이름이다.


누군가는 노이즈마케팅을 한다. 

누군가는 양으로 밀어붙이며 온갖 행사를 다 잡고 이름을 알리기 위해 아이돌을 혹사시킨다.

누군가는 문제의 소지가 있는 마케팅과 컨셉으로 프로모션을 하기도 한다.


그에 반해 이 걸그룹 API가 잡은 컨셉은, 적어도 아이돌,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는 너무도 니치하고, 또 니치한 마켓인 IT업계와 IT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것. 이름과 타이틀곡명이 모든 설명을 대체한다.

나부터 최소한 한번이라도 이제 API라는 걸그룹이 미디어에 나오거나 광고에 나오면, "어? 쟤네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약 한 달 전의 나처럼 아직도 API가 스파르타코딩클럽에서 만들어낸 말도 안되는 노이즈마케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처럼 백그라운드를 알게 된 뒤 생각이 달라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지를 넘어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것만으로도 아이돌 시장에서는 괄목할 만한 성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미 니치마켓을 타겟팅한 전략은 유효하다고 보는게, 벌써 비즈니스/트렌드 관련 유료 텍스트 플랫폼 아웃스탠딩에도 이 API 관련 글이 올라왔고, API가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도 점차 주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IT기업이 즐비한 판교에서 버스킹하는 걸그룹

유례없는 IT 세계관을 구축해나가고 있는 걸그룹

코딩교육회사의 광고를 하는 걸그룹

그리고 팬페이지를 노션페이지로 직접 만들어 운영하는 걸그룹.

(노션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이들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소개하고 소통하려는지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노션으로 구성된 팬페이지에는 팬과 소통할 수 있는 모든 자료가 갖춰져있다.
심지어 QR로 소셜 미디어 랜딩을 시도한다. 전략에 박수..


역시나 제일 놀라운 건 (주)걸그룹에이피아이가 그냥 적은게 아니라는 것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 싶을 정도로 굉장히 '덕후'스럽지만 이들을 응원하기로 했다. 

전에 없던 혁신적인 시도는 응원받아 마땅하니 말이다.

세상은 어떻게 바뀔지 모르고, 어디서 어떤 터닝포인트가 발생할지 모른다.


혹시 아나, 훗날 많은 아이돌 그룹이 중소기획사로부터 벗어나, 자기결정권을 가진 채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받고,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는 활동을 해나가는 문화가 생겨날지.

그런 문화가 생겨난다면, 그 시작을 알린 API는 전설의 걸그룹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엘론 머스크를 우습게 보았듯, 세상이 틱톡을 우습게 보았듯. 

이들의 무모해보이는 시작이 결국엔 '위대한 시도'로 남을 수 있길 바란다.



이 글은 API 노션 페이지, 유튜브 채널, 그리고 아웃스탠딩 아티클 <노션도 주목한 세계 최초의 걸그룹 스타트업, 'API' 이야기> 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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