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보틀과 오타디움의 성공, 이미지메이킹의 필요성
ㅍㅍㅅㅅ 플랫폼의 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다시 말해 청년 세대 사이에서 블루보틀은 일종의 해외의 이색적인 명소이자, 따라 누려보고 싶은 경험으로 은연중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블루보틀의 국내 상륙은 ‘유행하는 이미지’의 상륙과 다르지 않았고, 그 이미지에 서둘러 닿고자 하는 욕망을 폭발시켰다. 즉 이 현상은 문화적 경험 자체 못지않게 이미지의 소유 혹은 이미지에 대한 접촉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성수동에 블루보틀이 상륙한 이래로 몇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블루보틀의 열기가 상당하다. 대기줄을 충분히 예상하고 갔음에도 "아직까지 줄을 이렇게 서서 먹어야돼?" 하고 긴 줄에 혀를 내둘렀다. 그럼에도 줄을 서게 되는 나였다. 나 또한 유행에 편승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여기가 어떤 곳이길래, 무엇이 그 많은 사람들을 이 '블루보틀 신드롬'에 탑승시켰는지 궁금했기에 30분의 줄은 의미있는 기회비용이 되었다.
락페스티벌의 팬들을 비롯 다른 장르의 팬들이 일렉트로닉 페스티벌을 보면서 늘 하는 말들이 있다.
일렉트로닉 페스티벌은 너무 '보여주기식 이벤트'이라는 것. 실제로 외국의 일렉트로닉 페스티벌들에서 Peace, Love, Unity, Respect를 뜻하는 PLUR 문화가 강조되는가 하면, 오전시간이나 낮시간에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각종 액티비티들을 마련해 놓는 것들과는 다르게 우리나라의 일렉트로닉 페스티벌들은 분명 '보여주기식 요소'가 다분히 많음을 인정한다. "이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들으러 온거야,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려 온거야? "라는 생각을 나 또한 많이 했다.
하지만 이를 비판하는 사람들과 나는 약간은 다른 관점에 서 있는 것 같다.
'보여주기식 이벤트'도 스토리와 색깔을 잘 담는다면,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기 위해서만 오는 관객들이 많은 것이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마냥 피하고 배척해야만 하는 현상도 아니라는 것.
그리고 분명 인스타그램에 올리기에, 지금의 페스티벌들은 각각의 고유한 매력과 스토리텔링이 너무나 확립되지 않았다는 것.
기왕 올릴 것이라면, 블루보틀처럼 확실한 매력을 갖고, 확실한 이미지 메이킹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렉트로닉 페스티벌을 가본 사람은 많지만, 여러번 경험한 사람들 중에 매번 오픈 시간부터 가서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굉장히 적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페스티벌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있는 힘껏 페스티벌의 모든 시간을 다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인 앞 타임들이 메인 시간대보다 관객들에게 더 큰 재미를 선사하는 경우들도 많다.
많은 사람들이 저녁에 몰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떻게 보면 저녁으로 갈수록 빅네임 아티스트들이 등장하는 구조가 일렉트로닉 페스티벌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기에 많은 사람들은 낮시간부터 가서 '미리 힘을 빼고 있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듯 하다. 다르게 보면 액티비티의 부재 때문이기도 하고. 앞에서 같이 온 지인들과 술을 먹으면서 흥을 돋우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분명 이는 '늦게 입장하는 관객류'의 목적이 온전히 페스티벌 문화를 즐기는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닌 것에도 기인한다. 저녁시간만 되면 기가 막히게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에 인스타그램을 켠 상태로 메인 스테이지 초입에 즐비하게 서 있는 현상을 쉽게 볼 수 있다. 공연을 찍고 아티스트를 찍고 즐거움과 흥을 찍는 것이 아닌, 스테이지 초입에 그저 서서 왔음을 인증하는 사진들을 찍고 있는 모습 말이다.
일렉트로닉 페스티벌 문화에서 '보여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필연적으로 같이 갈 수 밖에 없는 요소는 맞다. 일렉트로닉 음악들 자체의 근원과 일렉트로닉의 부흥 또한 모두 음악 뿐 아닌 전반적인 '멋'에 상당히 영향을 많이 받으며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왕 보여줄 것이라면, 기왕 와서 인증을 할 것이라면, 그렇게 전반적인 문화 자체에 큰 애착이 없는 관객들까지도 많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이미지 메이킹에 페스티벌들이 힘을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나아가서는 페스티벌을 향유하는 문화가 정말 멋있는 문화로 인식되고, 경관이 아름다운 세계여행을 자랑하듯, 국제적으로 유명한 이벤트나 스팟에 방문하며 자랑하듯, 정말 멋있는 이벤트에 다녀왔다는 벅찬 감정으로 사람들이 '인증'을 할 수 있도록 유도했으면 한다.
이쯤에서 블루보틀에 대한 ㅍㅍㅅㅅ의 글을 조금 더 인용하려 한다.
하나 흥미로운 점은 블루보틀이 표방하는 ‘느림의 미학’을 실제로 이 커피 매장을 찾는 사람들이 체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주로 20–30대로 구성된 방문객들은 커피 한잔을 마시기 위해 기다리는 서너 시간을 별 어려움 없이 견뎌내는 것 같다.
면면을 살펴보면 입장을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는다든지, 음악을 듣는다든지, SNS를 하거나 일행과 대화하며 그 시간을 제법 즐긴다고 한다. 나아가 기다리는 상황을 생중계하며 온라인의 사람들과 그 기다림을 함께 누리는 경우도 있다. 일일이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며, 한 잔 한 잔에 정성을 기울이느라 시간이나 효율성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는 ‘신념’을 가진 블루보틀 커피와 그 방문객들이 묘하게 어울리는 지점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이 새로운 커피 문화에 대한 열광이 다소 기이하거나 과잉된 것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다. 일단 핸드드립 커피 문화 자체가 그렇게까지 새로운 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도 동네 커피점 중 핸드드립을 고수하는 카페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국내 유명 매장이 그런 문화를 이미 도입하기도 했다.
또한 방문객이 정말 그런 커피 문화에 그리 대단한 가치를 부여하느냐고 한다면, 꼭 그렇지도 않을 것이다. 아마 대부분은 서둘러, 남들보다 앞서 블루보틀을 경험한 뒤에는 다시 또 그 몇 시간의 기다림을 감내하러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이 현상에는 단지 블루보틀의 문화 자체와는 다른 요소도 작용했으리라 생각된다.
페스티벌을 성공시키는 데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라인업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매년 바뀌는 라인업보다, 페스티벌만의 색깔, 그 페스티벌만이 연상시킬 수 있는 이미지를 우리가 너무 간과하고 있는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분명 전반적인 씬이 커진 지금, 라인업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이번 UMF KOREA와 5Tardium의 상반된 결과가 이를 반증한다.
라인업 면에 있어서 최근 몇년간 어느 국내 페스티벌에도 뒤지지 않던 UMF KOREA, 비록 올해는 희대의 헤드 3명 중 2명이 공연을 펑크내는 악재까지 겹치며 한국의 FYRE가 되었지만, 분명 예매를 한 대부분의 관객들은 UMF가 그동안 선보여오던 라인업을 기대했을 것이다.
이에 비해 5Tardium은 UMF보다는 훨씬 관객들이 라인업에 대한 기대가 적었다. 매년 그래왔다. 가장 유명한 거물급 아티스트 대신 중간 라인업들을 탄탄하게 채우면서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펜타곤 모양의 스테이지를 만들어 각각의 꼭지점에서 돌아가면서 디제이들이 공연을 하는 특이한 구조를 선보여왔고, 인구대이동마냥 한 팀의 공연이 끝나면 우루루 다음 디제이를 반기러 이동하는 즐거움을 기대하였다. 또한 기존에 오타디움을 방문했던 관객들이라면, 둔두라고 불리는 오타디움만의 대형 조형물(?)을 비롯, 시그네쳐 쇼에서 볼 수 있는 여러가지 볼거리들을 기대하고 재방문하기도 하였다. 오타디움은 다른 페스티벌들보다 이런 점들에 더 치중하였고, 여기에 올해 환상적인 소통과 피드백, 그리고 Illenium이라는 많은 팬들이 고대하던 아티스트의 섭외까지 겹치며 대성공을 이끌어 내었다.
그간의 브런치 글들에서 자주 언급하고 강조하는 부분이지만, 작은 디테일에서부터 쌓기 시작하는 노력과 차별성을 향한 욕심이 관객들에게는 눈덩이 처럼 크게 다가올 수 있다. 블루보틀의 줄을 기다리는 사람이 다른 카페에서의 줄과 블루보틀에서의 줄을 다르게 인식하듯, 오타디움의 관객들도 다른 페스티벌과는 조금은 다른 기대감을 갖고 오타디움을 방문하였다. 하루종일 3일간 하드스타일만 귀에 때려박는 네덜란드의 Defqon과 같은 특이한 페스티벌들도 매년 어마어마한 관객 수들이 방문한다. 간과할 부분이 아니다. 이 페스티벌은 이런게 다르네, 이런 점이 진짜 매력적이네 라고 부를 만한 요소들이 많아지면 그 것이 페스티벌만의 색깔이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유행이자 문화가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올해의 움프에 대한 끔찍한 실망, 오타디움에 대한 거대한 만족, 그리고 블루보틀을 신기하게 보고, 블루보틀의 유행 현상을 흥미롭게 본 생각들이 모여서 소위 '끔찍한 혼종'과도 같은 글이 되었다. 그렇지만 분명 문화는 서로가 서로를 오마주하고 인사이트를 얻어가며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블루보틀의 성공과 오타디움의 성공을 다른 페스티벌들도 흥미롭게 지켜 보았기를, 서서히 전반적인 페스티벌 씬 자체가 문화적인 차원에서 발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