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지옥의초병(1)

'인생은 꽈배기 가끔은 꿀꽈배기'

by 장정법

《 레트로 스타일 》

변화되는 세상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것일까?

인스타그램 피드나 네이버 웹툰을 보면 신기한 문명의 도구를 잘 활용하여 그려진 온갖 색상 가득 멋들어진 그림, 귀엽고 아기자기한 그림체가 가득하다. 이런 21세기 창작의 르네상스 흐름 속에 범접하지 못하고 고대 인류처럼 살아가는 나의 두 손엔 일본산 샤프펜슬과 지우개, 네임펜이 전부다. 물론 이런 도구를 사용 할 만한 스케치북 같은 A4용지 한 묶음도 내곁을 지켜준다.

종이위에 비뚤비뚤한 그림을 그려놓았으나 누구에게 보여주기엔 아직 부족한게 많아 보인다.

나와 생김새가 비슷한 캐릭터를 그려 놓고 어릴적 먼저 떠난 강아지(뽀삐)의 형상을 되새겨 믹스견 한 마리도 그렸다.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라고 창작의 기쁨을 표현한 신(神)도 자신이 직접 모든 피조물을 창조했을 때 짜릿한 감정을 매순간 이렇게 표현하였다.

나 역시 그림으로 생명체를 창작해 놓으니 제법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혼자 아무에게 보여주지 않는 나만의 서툰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벌써 5년이 흘렀다.

“요즘 세상에 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나요?”란 질문을 받을때면 고대 원시본능과 함께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광채가 찬란하고 맑은 영롱한 눈빛으로 돌변하기 일수였다.

아이패드나 와콤을 써보라는 어느 출판사의 권유에도 나만의 좁은 소견에 사로잡힌 아집으로 버티며“레트로 스타일입니다.” 라고 말하며 출판 계약 직전 자릴 박차고 일어섰다.

집에 돌아와 감정적이었던 나를 크게 뉘우치며 만화를 그리는 작가의 유트브와 인터넷 검색해 보며 긴 한숨을 내 쉬었다.

마치 커다란 모니터 앞에 중세 르네상스 화가들 처럼 쓱쓱 그려넣고 틀린 그림을 다시 원래 상태로 만들어 놓더니 방금전보다 훨씬 깔끔하게 그림을 완성시키는 창작기술에 왠지모를 경외감이 생기고야 말았다. 더욱이 신문명을 간직한 기계의 높은 가격에 입이 벌어지고 난이도 높은 기술 앞에서 서툰 내 감성은 모래성이 파도에 휩쓸려가듯 무너져 갔다.

살짝 물어뜯은 사과그림이 그려진 모니터 앞에 자릴 잡고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그림을 그려 보았다.

전자펜 촉을 따라 움직이는 딱히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게 만드는 정교하고도 깔끔한 야릇한 느낌이 손 끝에 전해졌다.

‘요즘 사람들이 그리는 그림이 이 모니터 안에서 탄생하는거였구나’

신기한 듯 그림을 지웠다 그렸다 반복했다.

하지만 그려놓고도 뭔가 익숙하지 않은 촉감에 긴 마음의 무게감이 오기 시작했다.

‘연필은 내 밥벌이의 도구다. 글자는 나의 실핏줄이다. 연필을 쥐고 글을 쓸 때 나는 내 연필이 구석기 사내의 주먹도끼, 대장장이의 망치, 뱃사공의 노를 닮기를 바란다. 지우개 가루가 책상 위의 눈처럼 쌓이면 내 하루는 다 지나갔다.’ 라고 말한 김훈 작가의 말들이 머릿 속에 맴 돌았다.

나 역시 구석기 고대인류였지만 연필로 그리고 지우개로 도화지에 꾹꾹 눌러 그린 그림이야 말로 진짜 만화라 생각하니 무릇 용기가 생겼다.

하얀 도화지 위에 수놓을 연필은 나에게 삶의 고백이었고 지우개는 고해성사와 같았다.

이후 하얀 백지에 끄집어 낸 도깨비 이야기를 좀 더 잘 그려서 SNS(인스타그램)에 올려보기로 했다.

정성스럽게 종이에 그린 그림을 핸드폰 사진기로 찍어 원본을 필터로 채색한 후 스캔하여 이틀에 한번 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사람들이 그토록 집착한다는 팔로우란 것을 처음 알게되면서 내 만화가 인기가 없다는 촉이왔다. ‘깨달음이 곧 극락이다’란 불경의 명언처럼 이제 깨달았으니 그림을 접고 원래대로 글이나 쓰시지 그게 극락일세 하는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신문명을 그린다고 그렸지만 난 아직 고대문명, 고대인류였어’라고 한숨을 내쉬며 맥주 한 캔을 벌컥벌컥 목 구멍 속으로 흘려 보내는 찰나 어디선가 미세한 음성이 들려왔다.

(캔맥주에서?, 아니다 이것은 분명 마음에서 들려 오는 소리일 것이다)

‘동굴 속 벽화를 그린다고 생각하며 그려라 어쩌면 너의 동굴로 들어오는 너와 비슷한 구석기인들이 이를 지켜보고 평안을 얻으리니..’

마음 속에 들리는 메아리가 사실일까? 나와 닮은 구석기인들이 내 그림과 글을 읽어줄까?

이처럼 나와 비슷한 구석기인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큼 기쁜일이 어디있을까.

그러고보니 그 많았던 1977년생 여자아이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이며 그 시절 만화방을 들락거린 말썽꾸러기 나의 친구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아갈아가는 것일까?

이들을 내 벽화 속 동굴로 초대하고 싶어졌다.

이런저런 생각과 상상 끝에 몇 시간 전 SNS에 올린 서툰 레트로 만화의 ‘좋아요’가 순간 100명을 넘어 버렸다.

생각보다 구석기 동굴벽화를 좋아하는군

마음 속 지옥의 초병들이 무엇을 전해줄지 내심 기대하며 오늘도 서툰 솜씨를 뽐내듯 도화지에 만화 한 컷을 그린다.

그리움은 그림이 되고 그림은 그리움이 되는 그 날을 위해..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지옥의 초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