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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초병(2)

'인생은 꽈배기 가끔은 꿀꽈배기

by 장정법

《 나를 구해줘, 지옥의 초병 》

상담사가 건네 준 스케치북과 네임펜을 들고 잠시 머뭇거렸다.

뭐라도 상관없으니 당장 머릿속에 생각나는 것, 어떤것이라도 그려보라 말했다.

그러나 막상 그림을 그리려하니 떠오르지 않았다.

사는게 지옥같아 지옥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다시 머리를 긁적이며 상상력을 동원해 지옥의 모습을 떠올리려 애썼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지옥과 천국의 모습이 아닌 삶에 쩌든 내 모습이 마치 지옥 같았다.

네임펜 뚜껑마개를 열어 하얀 도화지 위에 아무거나 생각나는데로 그림을 그렸다.

몇 개의 우뚝솟은 커다란 성곽과 대문 여러개를 그려 넣었다. 그 다음 문 앞 성곽을 지키는 보초 병사를 하나 둘 그려 넣었다.

잠시후 상담사는 그림을 보며 질문했다.

지옥의 초병은 지옥의 문을 지키는 보초병이야지옥의 성은 거대해서 문이 수만개가 넘어그러니 당연히 지옥문을 지키는 병사는 더 많겠지


나는말이야, 지옥의 성 좌측으로 맨 끝에서 두 번째 문앞에 있거든...그런데 밀어내기 근무라서 네가 찾아올 시간이면 이미 중간으로 갔을거야

“이 성곽은 무엇이죠?”

“이 성은 괴로움과 고통, 나쁜기억을 가둬 둔 감옥입니다. 즉 지옥인거죠”

“그럼 성곽을 지키는 뿔 달린 이들은 누군가요?”

“이들은 지옥의 문을 지키는 보초병사입니다. 도깨비인데 사람들은 도깨비라고 하면 악마정도로 생각하는데 여길 지키는 도깨비들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자 때로는 무서운 모습으로 때로는 선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생각해 보세요. 교도관이 교정시설을 지키는 것처럼 말이죠”

내 말을 들은 상담사는 빙그레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순수하고 해맑은 영혼을 가진 요정들이 장작가님 마음을 굳건히 지켜주고 있는 것이네요”

나도 모르게 상담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저녁 귀가하시면 그림 속 주인공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네? 그림과 이야기를 나누라고요?”

“맞습니다. 그림 속 주인공들이 장작가님 마음 속에 살아가고 있어요.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시면 됩니다. 조용한 곳에서 연필과 종이 한 장을 들고 그림 속 주인공들이 작가님께 전하는 말을 종이에 옮겨 적으세요. 그 다음 서로 대화를 나누세요”

미간이 좁혀진 멋적은 표정으로 상담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마음 속 어딘가에 또 다른 내가 살아간다는 것이 어쩌면 허상이거나 미친 소리정도로 들릴 수 있을법한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 어떤 혼란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면 마음은 거센 파도처럼 요동친적이 있었다.

마음 속 누군가 살아 숨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누군가 귓가에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거대한 우주 속 작은 행성이 빛의 속도로 심장을 자극하는 듯 했다.

깊은 심해의 잘 알지도 못하는 생명체의 신비처럼 마음 어딘가 미지의 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이 몸이 하나가 아닌 여러개의 생명체가 공존하며 살아가는 미지의 세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누구냐 넌?’

잠시 깊은 침묵이 흐르더니 드디어 마음이 조심스레 말을 걸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우린...지옥의 초병이다’

망설일 필요가 있었을까 두 눈을 크게 뜨고 그들에게 외쳤다.

“제발 나를 구해줘! 지옥의 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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