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이었다.
시댁은 대가족이지만, 제사가 없는
의외(?)의 여유가 있는 설날 아침을 맞는다.
모닝커피로 여유로운 설날 아침을 시작하려는데,
전주 큰형님의 전화 한통!
"어~~막내니? 성혁이 이제 일어나서
애들 데리고 곧 건너갈 거야.
가스불 놀리지 말고~"
"네! 형님~~."
뭐 여기까진 늘 다 알아듣는 말들이었다.
"갈비찜은 올렸어?"
"네. 형님~~! 둘째 형님이 미리 올려놓으셨어요."
두 번째 미션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말들.
"조기새끼 기름에 튀겨내고,
꼬막 삶아 간장으로 찌끄려놔~"
"네? 형님~
네...네..."
일단 전라도 말들 중 못 알아듣더라도
"네"로 대답한 후 남편에게 통역을 부탁하면
미션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찌끄리다는 도통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큰형님~~ 꼬막을 어떻게 하라고요?
찌그러뜨리라고요?"
옆에서 듣고 계시던 큰아주버님이 웃으며 그걸 못 알아 듣냐고 놀리셨다....
결혼 14년차...
왠만한 전라도의 언어를 이젠 소화했다고 자부했으나, "찌끄리다."라는 동사 앞에 다시 겸손해졌다. 이 좁은 땅에서 내가 아직도 다 알아듣지 못하는 어휘와 동사들이 있다니!
"찌끄리다."는 꼬막을 삶아 양념장을 잘 뿌려놓으라는 말이었다.
충청도 친정아버지 덕에 대구에서 자랐지만, 경상도 사투리보다는 억양이 약한 충청도 말투가 늘 익숙했다. 그래도 생활권이 경상도였으므로 경상도 언어와 충청도 언어는 이해가 되었다.
결혼을 한 뒤로는 이제 전라도 언어까지 익혀 삶에서 조금씩 사용 중이다. 그러다보니 방언에 대해 조금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고 자부하며 어느 지역권 사람들을 만나건 그 지역의 방언을 사용하며 친밀함을 내보였다.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전혀 다른 방언을 사용하는 세 지역의 언어 사용은 인관 관계를 맺는데도 좋은 도구가 되었으며, 글을 쓰고자 하는 나에게 너무 좋은 언어적 도구가 되어주었다.
“찌끄리다”라는 동사를 이해하지 못해 시작된 설날 아침의 언어 사색...
그리고 언어로 세워가는 매 순간의 삶에서 겸손을 다짐하며 나는 꼬막을 삶아 양념 간장을 아주 잘 찌끄려놓았다.